본문 바로가기
한국 현대소설

이혜경 단편소설 『틈새』

by 언덕에서 2016. 8. 16.

 

 

이혜경 단편소설 『틈새 

 

 

이혜경(1960~ )의 단편소설로 2006년 37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다. 2006년 발간된 소설집 <틈새>의 표제작이기도 하다. 작가는 "살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위기의 순간, 그런 순간은 어떻게 찾아오고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를 그려보고 싶어 '틈새'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틈새」에서는 가전제품 애프터써비스 기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의 중고등학교 동기동창인 영석은 육사를 나와 승승장구하다가 큰빚을 지고 소도시인 고향으로 돌아와 우주슈퍼를 차린다. 살림을 하던 아내 재희가 어느날 갑자기 단란주점을 차리고, 급기야 이혼 선언을 한다. 아내의 이혼 요구로 괴로워하던 주인공은 성공가도를 달리던 영석이 기수련을 표방한 사이비종교단체에 재산을 털린 사연을 듣고, 안온하고 평화로웠던 자신의 삶이 맞이한 틈새를 돌아본다.

 아주 평범한 사람에게도 생사의 기로에 선 위기의 순간은 한 번쯤 찾아올 수 있다. 언제까지라도 지속될 수 있을 것 같은 안온한 일상 밑에 사실은 허방들이 감춰져 있는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그'를 삶의 끝자락으로 내 몬 '아내의 바람'은 허방의 한 예에 불과하다. 그의 삶에 균열을 일으키기 위해 동원한 소설적 장치일 수도 있다.

 

소설가 이혜경(1960~)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시골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주인공 '그'는 군 제대 후 가전제품 대리점 운전기사로 취직했다가 우직함이 눈에 띄어 제품 수리 기술자가 될 수 있었다. 십여년이 지난 지금 그는 노련한 기술자가 됐고 은퇴 후에는 가전제품 대리점을 내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대형 가전 마트가 곳곳에 생겨나고 제품의 기술회전이 갈수록 빨라지는 판국에 소규모 대리점은 중고품 전시장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그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아내는 어느날 일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아내의 첫 사업은 카페 운영. 곧 단란주점이다. 친구들과 함께 예고 없이 찾아 갔을 때 아내의 옷차림은 여느 마담처럼 노출이 심한 차림으로 남자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아내가 의심스러운 행동을 자꾸 하기 시작했다. 그럴 즈음 친구가 인근 도시에서 아내의 외도 현장을 목격했다고 알려준다. 용서한다고 했으나 이혼을 요구한다. 

 충격과 절망에 빠진 그는 자살하기 위해 농약을 구입한다. 결행 전 그는 육사를 졸업하고 잘나가다가 어느날 갑자기 낙향해 슈퍼를 차린 중.고 동창 영석을 만난다. 영석은 퇴근길에 마주친 기 수련 모임 포스터에 사로잡혀 인생을 1백80도 바꾼 경우다. 그는 자살해야 할 지 영석처럼 살아야 할 지 알 수 없다. 그는 죽음을 결심한 후 생의 고삐를 잡아챈 듯한 득의를 느낀다.

 바로 그 날. 종묘상 간판의 그림을 보게된다. “그건 새의 날개가 아니라 떡잎이었다…. 날아보지 않겠느냐고 날개를 퍼덕이던 새는 대지를 뚫고 나오는 새싹이었다. 다시 보면 새였다. 날아오르는 새,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새순, 그 틈새기에 끼인 채”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

 

 

 

 화자는 고향 읍내에서 가전제품 수리 일을 천직으로 알고 사는 소박한 남자다. 어느 날 아내가 아이 다 키웠으니 가계를 거든답시고 술집을 차리더니 그예 바람이 나고, 막무가내로 이혼을 요구한다.주인공은 낯선 분노가 치민다. 종이를 꺼내 세로금을 긋고 왼편에는 ‘살아야 할 이유’, 오른 편에는 ‘죽어야 할 이유’를 적어본다. 막상 적고 보니 간명하다. 왼편에는 ‘성우’(아이 이름), 오른편에는 ‘다 끝난다. 울분도, 두려움도.’

 그는 종묘상 간판에 그려진 새의 날개를 보며 자살 결의를 더욱 다진다. 자살용 농약을 사 들고 습관처럼 친구에게 들른다. 육사를 나와 출세 가도를 달리던 친구는 어느 날 낙향해 초라한 구멍가게를 열고 있다. 그는 친구가 쇠락한 이유를 묻지 못했던 것이다. 친구의 설명 역시 어이없을 만치 단순하다. 사기를 당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내가 찾던 길이 있다는 확신이 전류처럼 몸을 훑었어. 넌 그런 적 없었냐?” 그에게도 있었다. 

 

 

  '틈새'가 "우등생(영석)이었든 열등생(그)이었든, 누구나 일상의 지뢰를 밟을 수 있다는 점을 그린 소설이다. 우리는 타인과 다른 집단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무서워하고 경계한다. 우리는 경계를 허물지 못하더라도, 울타리에 틈새를 만들 수 있다. "문학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 다른 집단을 이해함으로써 서로의 차이를 넘나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작가의 생각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여기서 ‘틈새’는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이것과 저것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무수한 갈래들일 수도 있다.

 작가는 ‘틈새’의 또다른 이름인 일상의 경계와 ‘금’, 거기서 비롯되는 폭력성과 소외성에 천착한다. ‘우리’라는 울타리와 경계에 속하지 않은 ‘타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타인이 느끼는 소외감을 섬세하게 읽어내며 보듬는 작가의 시선은 일방의 편을 드는 대신 결국 우리는 모두 ‘섬’처럼 존재한다는 사실을 쓸쓸하게 환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