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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정비석 단편소설 『성황당(城隍堂)』

by 언덕에서 2016. 7. 26.

 

 

정비석 단편소설 『성황당(城隍堂)』

 

 

 

정비석(鄭飛石, 1911∼1991)이 지은 단편소설로 1937년 [조선일보] 신춘현상문예에 1등으로 당선되어 1월 14일부터 26일 사이에 발표되었고, 1945년 [금룡도서]에서 간행된 단편집 <성황당>에 수록되어 있다. 1939년 방한준에 의하여 동명으로 영화화되었으며, 1980년에는 정진우에 의해 <뻐꾸기는 밤에 우는가>라는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토속적이고 원시적인 어느 산골을 무대로, 원시적인 자연 세계를 통해 인간의 본능 및 원시적인 욕정을 그린 정비석의 대표작이며 출세작이기도 하다. 정비석이 대중소설가로 전향하기 이전의 순수소설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작품은 건강한 원시주의에 대한 예찬을 그리고 있으며, 비합리적 사고, 자연 친화, 원색과 성욕 등이 순이라는 작중인물을 통하여 소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작품이 우수한 단편으로 간주되는 이유는 작가 정비석이 건강하고 신선한 원시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것을 제시함에 있어 의도적으로 효과 있는 기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즉, 중요한 장면마다 자연물이나 자연현상이 묘한 조화를 이루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이 작품은 강한 애욕의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하여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영화 <성황당>, 1939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깊은 산속에서 숯을 구워 생계를 꾸려가는 현보의 아내 순이가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인위적인 규범과 무관하게 살아온 때 묻지 않은 인물로 인간 본연의 성정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즉, 모든 일을 성황님으로 숭앙되는 자연의 영험한 힘의 은덕으로 여기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어느 날 현보를 도와 숯가마에 불을 때던 순이가 더위를 참지 못하여 옷을 벗고 개울에서 목욕을 할 때, 전부터 순이를 노리고 있던 산림간수 긴상이 그녀의 옷을 감추고 협박하지만 그녀는 이에 단호히 대항한다. 이에 앙심을 품은 긴상은 현보를 산림법 위반으로 고발하여 잡혀가게 한다.

 그날 밤 긴상은 자신의 육욕을 들어주면 현보를 풀어주겠다고 순이를 유혹한다. 이때 전부터 순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칠성이 찾아와 그 두 사람은 순이를 사이에 두고 격투를 벌인다. 며칠 뒤 긴상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도망쳤던 칠성이 나타나 현보가 3년은 감옥에서 지내야 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와 도망칠 것을 종용한다.

 그가 가져온 분홍 항라적삼과 수박색 목메린스 치마에 마음이 끌린 그녀는 칠성을 따라나선다. 그러나 30리쯤 갔을 때 산을 떠나 살아야 한다는 사실과 현보에 대한 그리움, 무엇보다도 성황님의 벌에 대한 무서움 때문에 도망쳐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에는 현보가 와 있었다.

 

영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1980년

 

 이 작품은 토속신앙과 원시적인 본능세계를 자연을 무대로 신선하고 조화롭게 묘사한 작품이다. 두메산골에서 숯을 굽는 생활과 토속신앙, 성적인 분위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이 당시 왜 주목을 받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30년대에 유행처럼 번졌던, 암울한 현실과 지식인의 갈등과 고뇌를 그린 내용에서 벗어나 순박하고 토속적인 원초적 생명력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냇가에서 목욕하는 '순이'는 자연의 한 부분으로 승화되고, 나무와 짐승과 꽃들은 인간과 함께 숨 쉰다. 문명에 전혀 때 묻지 않은 인물들이 벌이는 본능적 애정은 자연적 배경과 조화되어 자연스럽게 발산된다. 이러한 주제의 측면에서는 1928년에 발표된 영국 작가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1885.9.11∼1930.3.2)의 장편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Lady Chatterley's Lover)』을 연상시키는데,  작가는 로렌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순이'에게는 법도, 경찰서도 아무 의미가 없다. 그녀가 비록 흰 고무신과 항라 적삼에 마음이 끌리긴 하지만 삶의 터전은 여전히 숯가마와 성황당이다. 시집 대대로 이어져 오는 성황당에 대한 신앙은 '순이'에게 절대적 힘을 발휘한다. 흰 고무신을 사 준 것도, '현보'를 경찰서에서 내보내 준 것도 모두 성황님이 도운 것이라고 믿는다.

 작가의 초기 작품에서 보이는 토속적인 세계와 그 속에서 사는 순박한 인간상이 이 작품의 중심을 이룬다. 문명의 유혹을 거부하는 '순이'의 행동의 이면에는 인간과 일체가 된 자연이 작용한다. '순이'는 이미 숲 속의 한 그루 나무, 하나의 바위가 되어 버린다. 

 이 작품은 자연 속에 묻혀 사는 ‘순이’라는 인물이 겪는 사랑과 자연에의 순응을 다루고 있다. 이와 같은 작품 성향은 당시 일반화되었던 모더니즘적 소설이나 지식인의 고뇌를 다룬 소설의 유형과는 크게 차별화된 것으로 원시적 자연의 신성함과 건강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소설 창작에 있어서 이와 같은 경향은 지속되지 못하고 자연과의 교감과 예찬은 후일〈산정무한〉과 같은 수필을 통해 표출되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