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사상가 『순자(荀子)』
중국 고대 사상가 순자(荀子, B.C.323?-B.C.248?)의 저서로 순자의 사상을 기록한 책이다. 제자백가 철학 전체를 망라하여 선진 사상계의 대단원을 장식한 명저지만, 오늘날 한국에 번역된 「순자」중 양질의 것은 고사하고 완역본조차 찾기 힘들다.
소개한 김학주 교수 역 [을유문화사] 「순자」, 신동준 역 [인간사랑]「순자론」이 완역본이긴 하나, 전자는 김학주 교수의 여타 번역서와 비교하면 의아할 만큼 질이 떨어진다는 평이다. 한자어를 그냥 음역한 부분이 많아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이 보기엔 어렵다. 이 책 이외에 16편씩 1,2권으로 분권하여 [한길사]에서 출판한 이운구 역 완역본도 있다.
그 옛날 인도의 어떤 국왕이 흰 코끼리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왕은 이 코끼리로 하여금 흉악한 죄인을 밟아 죽이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끼리 우리에 불이 나서 코끼리를 다른 곳으로 옮겨놓아야 했다. 새로 옮긴 곳의 근처에는 절이 하나 있었다. 그리하여 코끼리는 날마다 스님들의 경 읽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코끼리는 밤낮 없이 경 읽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자연히 감화가 되어 마음이 온순해지고, 자비심을 갖게 되었다.
얼마간 세월이 흐른 뒤 어떤 사형수를 관례에 따라 코끼리 우리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코끼리는 그저 코끝으로 죄수의 몸을 스치고 핥기만 할 뿐 밟아 죽이지를 않았다.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왜 코끼리가 죄인을 밟아 죽이질 않느냐?”
이상하게 생각한 왕이 그 까닭을 묻자, 신하가 대답했다.
“아마 코끼리 우리가 절 근처에 있어서 환경의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도살장 근처로 옮겼으면 합니다.”
왕은 즉시 신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도살장의 잔인한 광경을 보게 된 코끼리는 며칠 되지 않아 죄수를 무참히 밟아 죽였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의 본성이 천성적으로 선하다든가, 악하다는 것으로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과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서 선악의 행위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 附法藏因綠傳 弟六
오늘 소개하는 책과 별 관련 없는 이 설화는 환경과 교육이 짐승(코끼리)의 행동을 좌우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짐승도 이와 같은데, 하물며 인간은 더욱 더 그렇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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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잊혀진 사상가 순자 다시보기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설로 널리 알려진 순자는 공자가 창시한 유학을 현실적·객관적 입장에서 체계화하고 이론적으로 재정립하여 경학과 경전의 전수 면에서는 맹자보다도 그 공이 훨씬 큰 전국 시대 최고의 사상가이다.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하여 이단시되었지만 유가의 큰 틀을 벗어나지는 않은 순수한 유학자였다. 그는 맹자와 마찬가지로 선왕, 성인 그리고 시·서·예 등의 경전을 존중하고 묵자·양주 등 그 시대 다른 학파들을 비판하면서 공자의 사상을 드러내려 하였다. 하지만 그 비판의 대상에는 공자의 정신주의를 계승한 자사와 맹자까지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맹자가 후세 유가들에 의해 정통으로 자리 잡은 반면 순자는 "엄혹한 법치의 선구자(蘇軾)"라는 혹평을 받으면서 유가의 도통에서 배제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에게 '이단'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순자가 맹자처럼 시종 인의와 왕도만을 철저히 떠받들지 않고 예의1(禮儀)와 법도2(法度)를 중시하고 패도3(覇道)도 어느 정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순자가 인의·왕도 이외에도 예의·법도·패도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약육강식의 싸움으로 어지러웠던 전국 시대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2.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순자는 만물 생성의 근원이자 인간 도덕의 근원으로 여겨 오던 하늘[天]을 자연의 실체로 간주하고 인간이 그것을 다스리고 이용해야 한다면서, 백성을 귀하게 여기고 나라를 부강하게 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처럼 그는 인간을 세계의 중심으로 인식하고 그 의지적 실천에 주목한다.
순자의 사상 가운데 후세 유가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아 온 것이 <성악설>이다. 그의 성악설 속에는 인간 의지에 대한 확신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는 "사람은 나면서부터 귀와 눈의 욕망이 있어 아름다운 소리와 빛깔을 좋아하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지나친 혼란이 생기고 예의와 아름다운 형식이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인간의 자연적이고 이기적인 욕구를 악한 본성이라 보고, 악한 본성 때문에 생기는 다툼과 사회적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예와 법을 강조하였다. 그는 '예와 법'을 인간을 변화시키는 교육 수단으로 본 것이다.
3. 하늘이 아닌 인간 중심의 철학
순자 사상의 골자는 성악설보다는 '제천론(制天論)‘ 또는 ’재천론(裁天論)‘에 있다. 그는 인간의 속성 가운데 최대의 결점은 ’미신 숭배‘라고 주장했다. 순자는 누구나 당연한 것으로 믿었던 ’경천외명(敬天畏命 : 하늘을 공경하고 천명을 두려워 한다)‘ 사상을 인간의 우매한 타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간주하여 배척하였다.
순자는 자연(또는 절대자)에 복종하기보다는 현실을 더욱 편리하게 개조해나가자고 주장하였다. 그는 인간의 욕망을 중요시하여 '인간은 원래 선하다' '인간은 양심이 있다'는 등 근거 없는 미신적 낙관론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을 직시하여 그에 맞는 실제적 처방을 내려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연히 교육을 중시하게 되었고, 따라서 성악설의 진정한 핵심은 부정적 인간 인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한 인간 의식의 개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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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근대 철학의 창시자인 데카르트는 인간에게는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양식4(良識)'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성론을 완성시킨 칸트도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도덕률'이 마음속에 있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 모두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어린아이들의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이 무척이나 잔인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린아이들은 곤충이나 물고기 등을 잡아 죽이는 것을 유달리 좋아한다. 장난감을 주면 잠시 가지고 놀다가 결국에는 부숴버리기 일쑤다. 그림책도 다 읽으면 곧장 찢어버린다. 겨우 걸음마를 시작했음에도 이유 없이 자신보다 몸이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아이도 수없이 많다
이러한 측면은 영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윌리엄 골딩이 쓴 소설 <파리대왕(Lord of fly5>을 읽으면 보다 극명히 깨달을 수 있다. 무인도에 고립되어 야만 상태로 돌아간 소년들의 원시적 모험담을 통해 인간내면에 잠재해 있는 권력과 힘에 대한 욕망을 우화적으로 그려낸 우화풍의 이 소설은 인간악의 일면을 압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작가가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인간의 사악함을 서술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린 소년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닌 점은 분명하고 인간의 본성은 나이와 관계없이 사디스틱하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사디스틱한 본성을 타고 태어났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약육강식의 장인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사디스틱해야 하기 때문이다.
맹자가 주장한 성선설(性善說)은 그의 희망사항에 불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맹자는 "우물에 빠져죽기 직전의 어린애를 그냥 내버려둘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그런 광경을 목도한 사람은 누구라도 그 아이를 구하려 할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성선설을 주장한다. 그러나 사람을 치어 죽여 놓고도 그냥 도망가는 '뺑소니 운전사'가 너무 많은 요즘 맹자의 주장은 '그저 희망사항'이라는 것을 재차 느끼게 된다. 얼마 전에는 자신의 전화를 늦게 받았다는 이유로 대학병원의 인턴의사가 동료이자 연인인 여자 인턴의사를 몇 시간 동안 가둬놓고 마구 폭행한 기사를 보았다.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성선설이라는 볼투명한 개념은 엉터리임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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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의 탁월성은 그가 교육의 중요성을 인정한 점이 아닌가 한다. 그런 점에서는 인류 탄생 이후 가장 훌륭한 사상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성악설을 내세우면서 "선한 인성이란 것은 인위적인 것이다"라고 말하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간은 원래 악하게 태어났지만 교육을 잘 베풀면 선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의 교육을 직, 간접으로 받게 되고, 뒤에 가서는 아버지의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그 이후에 학교 교육이 이루어져 자신의 인성을 키우게 된다.
순자는 실존적 양식을 갖고 냉정하게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였다. 창조주의 은혜에 의해 인간이 선천적으로 ‘양식’을 갖고 태어났다고 주장한 테카르트에 비해 순자가 탁월한 점이다.
그는 주장한다. 교육에 의해 인간의 인성이 바르고 선하게 변하면, 그때가서 ‘인정승천(人定勝天)’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즉, 주어진 운명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 사람이 지켜야 할 예절과 의리. [본문으로]
- 법률과 제도를 아울러 이르는 말. [본문으로]
- 인의(仁義)를 가볍게 여기고 무력이나 권모술수로써 공리(功利)만을 꾀하는 일. [본문으로]
- 뛰어난 식견이나 건전한 판단. [본문으로]
- 핵전쟁의 위험을 느낀 영국은 25명의 어린 소년들을 핵전쟁으로부터 안전한 장소로 옮기려 했으나 소년들을 태운 비행기가 그만 바다에 추락한다. 랠프ㆍ잭ㆍ피기 등의 소년들은 무인도에 상륙한다. 이들은 구조를 기다리며 랠프의 지휘에 따라 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구조되려면 바닷가에 오두막을 지어야 한다는 랠프와 사냥을 해야 한다는 잭은 사사건건 대립하고, 결국 잭과 로저는 갱단을 만들어 무리를 이탈한다. 짐승을 찾아나선 사이먼이 잭 일당에게 살해되고, 섬에 괴물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소년들은 안전을 위해 잭의 갱단으로 들어가고 결국 랠프와 피기만 남는다. 문명세계의 사회관습은 붕괴되고, 인간 본성에 잠재한 권력욕과 야만성이 드러나면서 섬은 지옥으로 변한다. 광기에 찬 잭과 로저는 점점 더 포악해지고 피기마저 죽임을 당한다.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랠프와 소년들은 가까스로 영국 순양함에 의해 구조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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