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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철학서

플라톤 철학의 정수 『국가론』

by 언덕에서 2016. 4. 22.

 

 

 

플라톤 철학의 정수 『국가론

 

 

 

 

 

 

 

화이트헤드는 서양철학사를 가리켜 ‘플라톤의 각주’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서양철학사는 플라톤의 영향권 아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대화편’ 가운데 하나인 『국가론』은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저작물이다. 형이상학에서부터 정치학, 윤리학, 심리학 그리고 예술학에 이르기까지 서양철학의 모든 분야에 가지를 뻗고 있는 플라톤 철학의 정수가 담긴 책이기도 하다. 서양철학의 근원이 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으므로 각종 추천도서 리스트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국가와 권력을 만들어온 인간사회는 그에 대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플라톤은 한 사람이 재산과 권력을 동시에 갖지 못하게 충고를 했다.

 플라톤은 아테네의 영향력 있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정치에 뜻을 두었다. 20세에 스승 소크라테스를 만나 지혜에 눈뜨지만, 정권을 쥔 자들에 의해 소크라테스가 사형 당한다. 이후 플라톤은 정계 진출의 꿈을 접고 철학자의 길을 걸으며 인간의 올바른 삶과 국가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 등을 고민하게 된다.

 이 책『국가론 (Politeia)』은 그 탐구의 결과물로서 정의로운 국가 건설에 필요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즉,『국가론』은 무엇이 잘사는 것이고 훌륭한 삶인가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래서 서양철학사는 플라톤 철학에 대한 각주의 역사라는 말이 나온 듯하다.

 이 책은 국가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와 불의 중 어느 쪽이 유익한가, 정의란 강한 자의 이익인가,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철인(哲人)으로서의 왕은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하는가, 정치인은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 불의한 정체(政體)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개인과 국가는 어떤 유사성이 있는가, 문학과 예술은 검열되어야 하는가, 진리란 무엇인가, 철학이란 무엇인가, 혼은 불멸하는가, 여자도 통치자가 될 수 있는가, 사유재산은 언제나 바람직한가 등에 대한 플라톤의 의견을 정리하고 있다.

 



 

 특히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이 동굴에 비친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동굴의 비유’와 『반지의 제왕』이 영감을 얻은 ‘귀게스의 반지’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다.

 이 책은 주로 ‘정의’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정의에 관하여’란 부제가 붙여지기도 한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이 세상에 한 번도 실현된 적 없고 앞으로도 실현되기 어렵겠지만,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정치체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시원이라 할 수 있다. 몇 년 전 세계를 강타한 마이클 샌들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이 책에서 힌트를 얻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말하는 이상국가는 논란의 소지가 적지 않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그의 공산주의적 사유방식이다. 권력이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란 이유로 사유재산을 불허하고 가정 해체를 주장하는 등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황당한 주장들이 있다. 그 때문에 플라톤의 『국가론』에 의혹을 품는 사람들도 있다. 또 질서만을 강조하고, 시인마저 추방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그부분은 개인의 창의성이나 변화에 대해 무식하기 짝이 없는 면모를 나타낸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과연 실현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과연 이상국가의 본모습일까?

 

 

 

 

 

 플라톤이 줄곧 주장한 것은 ‘이데아’였다. 이데아는 감각적으로는 접촉할 수 없는 무형의 실재(實在) 또는 본체(本體)이다. 가장 이상적이며, 불변하는 진리의 궁극에 서 있는 관념적 본질이다. 그것은 나중에 가서 헤겔과 데카르트와 칸트의 ‘이성 만능주의’로 발전하는데 확고한 근거를 만들어 주었다. 플라톤의 관념 제일주의는 이상적인 선(善)이 바로 이데아이며, 인간은 오직 이데아를 목표로 살아가야 한다는 ‘도덕 노예’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

 그가 후대에 남긴 가장 큰 병폐는 그의 ‘이상국가론’이다. 그는 고매한 철인군주가 독재정치를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국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철인 독재론’은 후대에 와서 많은 독재자들이 자신의 독재정치를 합리화하는데 사용되었다. 그 결과, 러시아의 스탈린이나 중국의 모택동, 북한의 김일성 등은 다수의 정치철학적 저서를 남겼다. 또한 그것을 추종하는 어용 정치이론이 신성시되어 민중들을 옭아매는 역할을 해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플라톤이 주장한대로 숨막히는 ‘통제’만이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는 주장은 후대에 가서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라는 저서와 강유위의 <대동서(大同書)>라는 저서로도 구체화된다. 우리가 ‘지상낙원’이라는 의미로 쓰고 있는 ‘유토피아’라는 말은 사실 좋은 뜻을 가진 말이 아니라 끔찍한 뜻을 지닌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1,000년 이상 지속된 서구 중세기 암흑시대를 지배한 기독교 이데올로기 확립에 결정적인 이론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당시의 스콜라 철학자들이 기독교 독재를 합리화하기 위해 정립한 ‘기독교 철학’의 기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神)이 곧 이데아라고 주장했다.

 역사학자들은 지적한다. 예수가 남긴 얼마 안 되는 언행들을 갖고 깊이 있는 철학이나 이데올로기를 만들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성서 고고학자들의 주장을 따른다면, 예수가 전도한 기간은 고작 1년 정도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교부철학자들은 기독교에 플라톤 철학의 외피를 씌웠다. 플라톤이 상정한 ‘궁극적인 본질’로서의 이데아를 하느님(神)과 동격으로 설정해놓고 기독교 철학을 재단했던 것이다. 그 결과, 플라톤은 역사 이래 최고의 철학자로 숭배되었고, 그 영향은 지금까지도 미치어 “서양철학은 모두 플라톤 철학의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는 황당한 신화를 만들게 되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이래서 무섭다. 그 시대에서는 그럴 수 있는 이유가 있었지만 역사가 진행되면서 확대, 재생산되면서 문제를 양산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플라톤의 사상을 정리한다면 인식론적, 존재론적 관념론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모든 감각적 대상은 지극히 변덕스러운 것이라고 보아 경멸하고 있다. 그는 '참다운 지식'을 발견 가능하다고 믿었다. '참다운'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플라톤 이후 지금까지도 '확정된 진리'는 발견되지 못했다. 그리고 '진리'는 항상 상대적이고 유동적이지 않는가? 그의 사상이란 것도 절대주의를 버린 현대적인 시점에서 볼 때는 지극히 공상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