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 사상서『장자』
『장자』는 4세기 중국 주(周) 나라 시대 장주(莊周: 일명 장자)의 저서로 처음 52편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내편(內篇) 7, 외편 15, 잡편 11, 도합 33편이 있다. 내편은 자저(自著)이며, 외편과 잡편은 문하생들의 편인 듯하다. 뒤에 존경하는 뜻에서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고 하였다. 내편이 장주(=장자)의 근본사상을 기술한 것이고 외편과 잡편은 내편의 뜻을 부연한 것으로서 그의 후학들이 연구 발전시킨 것이라 하며, 노자와의 절충이나 다른 사상과의 교류 등을 엿볼 수 있다. 대략 전국시대 말기(BC 3세기 말)에 완성한 것으로 추정되며, 원문의 분합은 그 뒤에도 이루어졌고 오늘날의 33편으로 정착된 것은 진(晉)나라 곽상의 주석본이 나온 이후의 일이다. 곽상의 주석본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완본의 기본자료이며, 그 뒤에도 당나라 성현영의 <주소>와 송나라 임희일의 <구의> 등 많은 주석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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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先秦)을 대표하는 굴원(屈原)의 시와 아울러 최초의 문장의 대가인 장자는 원래 문체가 어려운 데다가 공자를 악평해서 유가에서 버림받은 바 되었다. 또한 <논어><맹자>와 같은 석본도 흔치 않아서 난해한 것으로, 일반에게 많이 보급되지 못했다. 그러나 중국 역사상 춘추에서 전국까지의 사회는 혼란에 빠진 동시에 사상계도 혼돈 상태에 들자 장자의 사상은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장자는 전국시대 송나라 몽, 즉 오늘의 하남성에서 태어나 잠시 칠원이라는 아전 벼슬을 지낸 일이 있으나, 곧 사색과 유랑으로 들어갔다. 일찍부터 고래문헌을 두루 섭렵한 장자의 박식에 대하여 석학 사마천도, 그의 학문은 거칠 것이 없다고 했다. 현대의 중국 석학 임어당도 ‘장자라는 뛰어난 두뇌를 가진 사람이 나타나 여러 가지 유머 사상과 문장을 자유로이 전개했다. 장자는 중국 유머리스트의 선조다.’라고 한 바 와 같이, 그의 풍자ㆍ골계의 언사는 언제나 상대자의 급소를 찌르고, 때로는 상대자가 석학일지라도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다.
장자의 사상은 본래 그의 출생지인 지금의 하남성 북부가 주(周) 민족에게 정복된 은(殷) 민족의 고지를 풍토적 기반으로 해서 성립되었기 때문에 지배자로서의 철학이 아니고, 피지배자의 생활의 지혜로서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시 말하면, <논어>나 <맹자>가 정치이론서임에 대해 『장자』에는 구(懼)ㆍ민(悶)ㆍ상(傷)ㆍ환(患)ㆍ비(悲)ㆍ탄(歎)ㆍ화(禍)ㆍ해(害) 등의 문자가 많이 보이는 것은, 뒤에 개인적인 구제의 서(書)로 발전하여 역경과 불우한 생활 체험자들의 환영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편, 불교철학과 결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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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자연'으로 대표되는 장자의 이 저서를 읽으면 그가 태고의 원시시대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양의 사상가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18세기에 한 것과 비교하면 매우 앞선 선각자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자연 그대로의 원시 상태는 약육강식의 장이 있을 뿐, 절대로 평화롭지 못했다.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순진했던 소년들이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 처하게 되자 그들 개개인의 삶은, 동물의 그것과 다름없는 투쟁의 연속인, 금방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이것이 인간이 살아가는‘실존적 현실’인 것이다. 가난한 삶을 맛보지 않았던 장자는 순진한 낭만주의자였는지도 모른다. ‘무위자연’의 삶이란 공상적 유토피아에 불과할 뿐 실생활에 적용시킬 수 있는 실용주의적 처방은 되지 못한다.
초(楚)의 위왕(威王)이 장자의 어진 이름을 듣고 사자를 보내어 재상 벼슬을 주려 했을 때다. 그때 장자는 사자에게 코웃음을 치며,
“그렇다. 천금은 큰 이득이다. 경상(卿相)은 훌륭한 지위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그대는 아직 제향(祭享)에 희생되는 소를 못 보았는지 모르지만, 수년간 잘 기르고 고운 의복을 덮고 잘 먹이다가 제향이 되면, 태묘(太墓)에 끌려가지 않을 수 없다. 그때가 되어서 소와 같은 큰 짐승은 그만 두고 살아있는 대지라도 되었으면 하고 소원하여도 쓸데없는 것이다. 지금 그대가 나를 초빙함은 이와 똑 같다. 빨리 가라. 우리는 차라리 더러운 속에서 유희하며 스스로 쾌락하기를 원하지, 나라를 가진 사람을 위하여 속박되고 싶지는 않다. 인생을 두고 나는 벼슬을 안 하고 지내련다.”
라고 한 것은 자신의 처세술로, 벼슬을 싫어하면서 벼슬을 제상에 올려놓은 제물로 비꼰 것도 통렬한 풍지이려니와 상대방의 급소를 찔러 더 이상 말을 못하게 한 것이다.
초나라 위왕에게 보였던 장자의 초연한 행동은 일단 고위직의 벼슬을 살다보면 언젠가는 귀양을 가게 되거나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는데도, 기를 쓰고 벼슬을 탐했던 조선시대의 선비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현재에서도 마찬가지다. 권력자에 충성(?)하며 무리한 정치활동으로 민의를 거슬리다가 정권이 바뀌면 예외 없이 감옥으로 가는 요즘의 정치인들이 그렇다. 장자는 이 책에서 공자를 비웃는 말을 자주한다. 벼슬을 구걸하러 대륙을 떠도는 공자가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비루먹은 개 같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그러나 정치가 일종의 ‘필요악’임을 감안할 때, 장자의 정치무용론은 소박한 이상주의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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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삶은 범인이 따라갈 수 없는 초월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한 것은 공자와 맹자의 사상이 있었기에 노자와 장자의 사상도 빛이 날 수 있었던 점이 아닌가 한다. 모두가 장자와 같은 '무위자연'의 삶을 살아간다면 그 사회는 퇴락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과학적 발명이나 발견은 가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와 장자의 사상을 단순하게 비교한다면, 공자는 도덕을 강조했고 장자는 본능을 강조했다고 판단된다. 이 때문에 중국 사상의 역사는 유가와 도가의 양립구조 속에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원주의의 유연성을 수용하며 상호조화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는 학문을 숭상했으나 사상적으로 다원화를 이루지 못한 조선시대를 상기시킨다. 그들은 성리학이 아닌 새로운 조류의 사상은 '사문난적'이라 하여 배척했다. 조선은 오로지 성리학만을 주장했고 타 사상을 거부하며 이전투구하다 수많은 전란을 겪었고 끝내 나라를 통째로 일본에 바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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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에는 세속적인 도덕과 윤리를 비웃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해서 읽는 이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그 중 하나가 "사과 한 개를 훔치면 도둑이 되지만, 나라를 훔치면 왕이 된다"는 말이다.
그는 꿈을 가지고 여러 이야기를 하였다.
어느 나라의 왕은 매일 밤 꿈속에서 거지가 된다. 그런데 그 나라의 어느 거지는 매일 밤 꿈속에서 왕이 된다. 두 사람의 운명은 서로 똑같다고 볼 수 있다고 장자는 주장했다. 이것은 '꿈과 현실의 불가분성을 주장하는 듯하다. 즉, "꿈이 없는 현실은 무의미한 것이고, 꿈과 현실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심리학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성찰로 보인다. 장자는 현실과 꿈의 구별이 의미 없음을 비유를 통해 말하곤 했다.
“나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다. 그런데 꿈을 깨고 나니 나비가 아니라 장자였다. 내가 꿈을 꿔서 나비가 된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을 꿔서 내가 된 것인가?”
그래서 그런지 『장자』라는 책이 사상서라기보다는, 자유로운 사고로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던 사상가의 장르 없는 문학 작품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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