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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정이현 단편소설 『어금니』

by 언덕에서 2016. 4. 12.

 

정이현 단편소설 『어금니』

 

 

정이현(鄭梨賢, 1972~ )의 단편소설로 2007년 발표된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에 게재되었다해당 단편집에는 이효석문학상과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타인의 고독> <삼풍백화점> <오늘의 거짓말등을 비롯한 총 열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서른네 살의 이혼남이 전처와 함께 키우던 강아지를 누가 맡아 기를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며 시작되는 <타인의 고독」이 시대 중상류층의 삶을 대변하는 지역에서 성장한 여주인공의 삶을 보여주는 <삼풍백화점>, 어린 시절 화려한 보이소프라노였으나 현재는 별 볼일 없는 지방 합창단에서 일하는 남자의 하루를 다룬 <그 남자의 리허설>, 1991년에서 기억이 멈춰버린 동창과의 당황스러운 재회를 그린 <위험한 독신녀>등 우리의 지극한 일상을 정이현 특유의 경쾌한 문체를 통해 감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단편소설 「어금니」에서 주인공은 마흔아홉 번째 생일날, 아들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아간다. 스무 살 대학생인 아들은 옆자리에 미성년자인 여학생을 태우고 달리다가 교통사고를 내었고 미성년 여학생은 즉사했다. 주인공의 남편은 아들이 과음한 상태로 음주운전 중이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죽은 여학생의 할머니와 합의를 하는 등 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처방들을 한다. 주인공 또한 아들이 그 여학생에게 돈을 주고 성관계를 가지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 작가 소설의 강점은 빨리 읽힌다는 점이다. 끝까지 재미를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소설을 읽는 재미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특히‘세대적 공감’에서 오는 재미라고 해야 할 것이다. 3, 40대들 개개인이 지나왔을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모습들의 구석구석을 짚어내는 소설집 속의 이 소설 『어금니』는 빈익빈부익부 구조가 빚어내는 참담한 몰인간성을 보여주고 있다. 가진 자 또는 사회지도층들이 보여주는 도덕적 해이나 학연, 인맥 등으로 꾸려지는 물신주의의 타락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참담함을 안겨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는 강남에 사는 부유층 중년 여성이다. 남편은 대기업의 중역이고 외아들 현우는 시외에 있는 과학기술대에 입학했는데 부부는 자가용을 선물했다. 생일을 맞이해 남편과 최고급 일식집에서 외식을 하려는 계획인 나는 하필 그날 어금니 진료를 예약해 버렸다. 치과의사는 어금니 부식이 심해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쓸 만큼 쓴' 어금니를 빼라고 권유한다.

그렇게 그날은 평상과 다름없는 날이었는데, 임플란트 수술 날짜를 잡으려는 순간, 아무런 불행의 전조도 보이지 않았던 아들의 교통사고 소식이 들려온다.

 고속도로에서 과속으로 빗속을 달리다가 미끄러져 사고를 낸 것이라고 경찰은 말한다. 아들은 허리를 다쳤으나 다행히 부상이 심하진 않았지만, 옆에 타고 있던 미성년 16세 여중생은 그만 즉사하고 만다.

남편은 신속하게 돈으로 모든 것을 무마하여 사태는 신속하고도 안전하게 수습된다. 경남 M시에 사는 여중생의 가정은 남동생과 할머니 세 명이 사는 조손 가족이다. 남편은 여중생의 가족에게 그 지방의 큰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 많은 양의 위로금을 건네주며 손쉽게 합의를 받아낸다.

 남편은 부검조차 막아내는 수완을 보였다. 죽은 여중생을 부검했더라면 남편이 어떻게 손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사고 당시 아들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0.38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화위복이 되어 이것으로 아들의 병역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그런 사고를 내고도 천연덕스럽게 만화책을 보며 웃음을 짓고 있는 아들을 보며 주인공인 '나'는 그래도 자신이 아들 편이라는 생각을 가진다. 이러한 스스로를 용서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자책과 함께, 나는 어금니가 아프지만 남편과 함께 1999년산 사토 탈보를 꺼내어 마시며 한우 꽃살을 먹는다. 

 

 

 

 강남 부유층 부모는 대학생 외아들이 음주운전을 하다가 미성년자 여학생을 죽인 걸 덮어버린다단편소설집의 표제 '오늘의 거짓말'은 우리 사회가 거대한 거짓말로 구성된 모래탑임을 증언한다.

 단편소설 「어금니」는 인과적 질서에 바탕을 둔 통합체적 소설 쓰기를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어금니’는 안정된 현실에 갑작스레 닥치는 환멸감을 상징한다.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인간관계를 자신의 권력에 의해서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서는 윤리가 들춰내는 괴로움에 침묵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소설의 모든 서사는 주인공의 정직한 욕망을 은폐하며 질주한다.

 「어금니」의 주인공은 아들의 장래를 위해서 타인의 죽음과 아들의 부도덕함을 추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소설 내내 그녀가 닳아빠진 어금니를 뽑지 못하고 인공 치아를 새로 박지 못하듯이, 그녀는 정직한 욕망으로 드러나는 환멸을 회피하지 않는다. “아마도 나는, 나와 영원히 화해하지 못할 것이다.”(「어금니」, 94쪽)라는 문장에서 ‘가진 자’만의 자기 합리화를 위한 비겁한 윤리가 드러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며 부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년 여성이다. 겉으로는 평온하고 남부러울 것 없이 화목해 보이지만, 그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어금니의 부식과도 같은 부유층의 부패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번듯하게 자란 대학생 아들이 미성년자인 소녀를 옆자리에 태운 채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내서 결국 동승자를 죽이게 되는 사건에서 주인공은 평온한 일상의 뒤편에 음험하게 도사린 균열과 위기의 실체를 여러모로 보여준다.

 여중생의 죽음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는 아들은 물론이고 자식의 잘못을 나무라며 벌을 받게 만들기는커녕 돈으로 모든 것을 무마하고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려 하는 남편의 모습이 그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주인공인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남의 자식은 어떻게 되더라도 내 자식만 괜찮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러한 가족들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려는, 속으로는 죄책이 조금 일지만,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러한 삶을 살아가려 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현대 사회의 어쩔 수 없는 '체념적인 부조리'를 느끼게 만든다.

 

  1. 1972년 서울 출생으로 성신여대 정외과 졸업, 동대학원 여성학과 수료,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했다.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말하자면 좋은 사람』 등이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