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 단편소설 『바비도』
김성한(金聲翰.1919∼2010) 의 단편소설로 1956년 5월 [사상계] 34호에 발표하여 제1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이 작품은 교회의 횡포에 대항하는 가난한 재봉 직공 바비도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의 양심과 정의 그리고 신앙의 문제를 그리고 있다.
중세의 영국을 배경으로 1410년 권위적인 교회 체제에 대항하다가 이단으로 몰려 사형 당한 '바비도'를 통하여 자신의 신념을 당당히 지켜 나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바비도 자신이 스스로 내면에 대해서 말하는 듯이 서술하여 생동감을 더해 준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다.
『바비도』에서 작가는 역사적인 연관성 속의 인간의 삶이 아니라 역사를 벗어난 보편적 인간의 신념을 강조하고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의 역사를 빗댐으로써 바비도 개인의 양심만이 부각되고 있다. 그 결과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상황이 밀착될 수 없다는 점이 이 작품 『바비도』의 한계로 보인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5세기 초, 헨리 4세 치하의 영국 교회는 위클리프의 영역 복음서를 읽는 것을 금지시켜 성경을 독점해 왔다.
교회의 부패가 극에 달하자, 사람들은 이단으로 규정된 위클리프의 영어로 번역된 성경을 몰래 읽으며 교회가 성경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성경을 읽는 영국 백성들 사이에 성직자와 교회에 대한 불신은 날로 커져간다. 이제 불신과 냉소의 집중 공격을 받은 교회는 이단 분형령(異端 焚刑令)과 스미스필드 사형장을 방패로 삼아 교회의 권위를 지키려 했다.
재봉 직공 바비도는 영역 성경 비밀독회(秘密讀會)에서 돌아와 깊은 생각에 잠긴다. 교회의 사제들은 성경의 해석을 독점하고 평범한 빵과 포도주를 성찬이라고 하면서 온갖 구실을 붙여 제 뱃속만 차리기에 급급한 현실이 환하게 보였다.
자신의 권위가 훼손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교회 세력은 백성들을 의식화하는 영역 복음서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순회 종교 재판소를 열어 저항 세력을 처단하고 있다. 바비도는 성경 모임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조차 재판정에서는 죽음이 두려워 그들의 깨달음을 거짓이라 회개하여 목숨만 부지하려는 비겁한 모습에 분개한다.
바비도는 진리를 독점하려는 교회 세력들에게서 거대한 위선을 보았고, 급기야 교회 조직과 자신의 차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힘이 있고 없음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그는 분을 참지 못해 어느 귀족이 주문한 옷에 오줌을 갈긴다.
재판정에서 사교는 겉으로 온유한 체하며 바비도에게 죄과를 인정하고 뉘우칠 것을 요구하나, 바비도는 이 더러운 세상에서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며 스스로 ‘인간 폐업’을 선언한다. 즉, 더러운 세상에 맞추어 더러운 인간으로 살기를 포기한 것이다.
형장에는 바비도의 분형을 구경하려는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약한 군중들은 세상에 대한 그들의 원망과 증오를 바비도에게 모조리 퍼붓는다. 그들은 바비도에게 발길질을 하고 침을 뱉으며 욕설을 한다. 이때 태자 헨리가 나타나 바비도에게 말을 건넨다. 그는 바비도를 구해 주겠다며 죽기 전에 죄를 씻을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바비도는 태자의 조부가 저지른 반윤리적 행위를 들어 태자를 비꼰다. 또, 세상사의 부조리와 모순을 지적하며 지옥에서 먼저 기다리겠노라고 빈정댄다.
사형대에 불을 지피는 순간, 태자는 돌연 불을 끄고 바비도를 내리라고 명령한다. 이제라도 바비도를 살려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비도는 자기의 길을 가겠노라고 밝히며, 태자는 진정한 양심과 정의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다시 스미스필드의 상공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연기와 더불어 바비도는 분형을 맞는다.
중세 유럽에서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신앙인은 모두 이단이라고 해서 철저히 색출하고 가혹한 형벌을 가했다. 종교개혁 이후 흑백논리는 더 강화되어, 지역에 따라서는 그리스도교 신자에 대해서도 신앙의 방법이나 표현까지도 문제를 삼았다.
작가 김성한의 초기 작품들은 주로 1950년대 한국의 역사적, 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1950년대의 한국 사회란, 한편으로는 일제 치하에서 손상된 민족정기를 회복하고 6ㆍ25 동란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으로 말미암은 사회적 부조리를 제거하고 근대적 시민 사회를 건설하여야 했던 책임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을 위시한 새로운 외세의 유입으로 인해 그 역사적 과제가 심각하게 왜곡되기 시작한 시대였다.
이런 사회 상황은 초기의 우화 소설에서부터 권력과 정의, 권력과 양심의 대립이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후기 소설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들 속에 일관되게 펼쳐져 있다.
이 작품은 이러한 15세기 초 영국의 부패한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고 그 시대 교회 조직과 제도의 횡포에 대항하여 진정한 신앙,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를 지키고자 한 재봉 직공 바비도의 삶을 통해 현대라는 시대 상황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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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분명히 당시 사회에 있어서 국시를 어긴 역적의 인간적인 탐구라 말할 수 있다. 당시 죄인으로 죽어간 ‘바비도’야말로 의인이라는 작가의 해석을 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역사적인 사실에 의거하여 그 당시의 위장된 인간의 규범을 비난하고 있다. 소위 권력을 쥔 사람들은 항상 권력을 우지하기 위하여 그들을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15세기나 20세기나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단순한 삶을 거부하고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죽음을 택해야 하는 ‘바비도’의 고민, 그것은 존재 자체에 회의하고 있는 모든 현대인의 고민이다. 진리를 위해 죽음을 택하는 ‘바비도’의 행위는 제자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독배를 든 기원전의 소크라테스의 엄숙한 모습마저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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