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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임철우 단편소설 『붉은 방』

by 언덕에서 2016. 5. 18.

 

임철우 단편소설 『붉은 방』

 

 

임철우(林哲右.1954~ )의 단편소설로 1988년 발표되었다. 1980년대의 폭력적 사회상을 극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임철우는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개도둑>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대학교 복학생이었다. 당시의 열흘간의 체험을 도저히 잊을 수 없다고 어느 글에서 밝힌 적이 있다. 소설 소재는 대부분 '분단체제로 인한 폭력과 광기'이며 그 바탕에는 '자기반성의 부끄러움'을 담고 있다.

 작가에게 80년대는 폭력의 시대였다. 그래서 그의 소설적 관심은 체제와 이데올로기의 폭력, 그리고 그것들에 의해 동요되는 개인들의 모습에 깊이 사로잡혀 있었고, 때문에 그의 소설에는 분단체제와 광주항쟁과 일련의 시국사건 등에 직접 간접적으로 관계된 인물들이 나타난다. 『붉은 방』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데 『붉은 방』에서 드러나는 직접적인 폭력은 최달식이 오기섭에게 가하는 고문이다. 소설에서 임철우는 고문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이렇게 사실적으로 묘사될 수 있었던 것은 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붉은 방'이라는 공간 속에서 최달식이 오기섭에게 가하는 폭력은 밀폐된 공간에서의 권력이 힘과 폭력에 있음을 보여준다. 80년대에 그러한 무한 폭력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데올로기에 있다.

소설가 임철우(1954~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오기섭은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했다가 보충수업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밤 아홉 시가 되는 숨 가쁘게 반복되는 일상생활에 불만을 품고 있는 고등학교 선생이다.

 그는 오늘 아침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빠듯한 시간에 허둥거리는 자신의 꼬락서니를 한심하게 여기면서, 전세금 걱정에 울상 짓는 아내를 뒤로 한 채 버스 정류장으로 가던 중 뜻밖의 변을 당했다. 낯선 두 사나이에게 납치당한 것이다.

 납치되는 도중 창 밖을 보며 오기섭은 자신에게는 이렇듯 놀라운 일이 일어났음에도 모두가 그대로인 세상에, 이렇게 쉽게 자신과 세계가 단절될 수 있다는 것에 놀란다. 아득한 절망감과 함께 자신의 자질구레한 일상에 대해 절실한 애정을 확인하게 된다.

 영문도 모르는 채 끌려 간 오기섭은 유치장에 와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군대 동기인 서정민의 부탁으로 수배 중이던 이상준이라는 자를 자신의 집에서 재워 준 것 때문이었다. 그는 붉은 방으로 끌려가 최달식에 의해 신문을 받으면서 자신이 야만과 폭력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절감한다.

 최달식은 빨갱이에 대한 깊은 한을 가진 자이다. 6․25사변으로 어린 시절에 그의 부모를 제외한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비극을 겪은 그는 체험 또한 남다르다. 증오에 찬 아버지가 인민군을 죽이는 장면을 똑똑히 본 것이다. 그는 그때의 핏빛을 잊지 못한다.

 결국 경찰이던 그의 아버지는 폐인이 되어 생을 마감했고, 어머니는 노망이 들어 지금껏 그에게 괴로움을 주고 있다. 그는 아버지만 아니었다면 자신도 남부럽지 않게 성장했을 것이고, 자신의 가족도 행복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뇌막염으로 죽은 아들 한수 역시 아버지 때문이라고 생각할 만큼 커다란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피의 지옥, 붉은 방에서 피의 응어리를 간직한 최달식에 의해 오기섭은 철저히 파괴된다. 굴욕감과 끝없는 고문에 의해 오기섭은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나, 그와 동시에 강렬한 생의 욕구를 느낀다. 결국 각본대로 자술서를 쓴 오기섭은 깊이 모를 절망감과 엄청난 분노를 간직하게 되고, 이미 자기 자신은 존재할 수 없음을 느낀다.

 증오를 품고 살아가는 최달식은 붉은 방에만 들어오면 쾌감 같기도 하고, 통증 같기도 한 현기증을 일으킨다. 이 방의 아늑함을 좋아한다. 붉은 방에서 악인을 멸해 달라고 기도하는 최달식은 신의 은총이 방 안에 가득함을 느낀다.

 

 

 

 

 

 이 작품은 분단문제에서 파생된 폭력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보이지 않는 배경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당시의 폭력과 광기, 그리고 그러한 체제에 대한 개인의 무기력을 붉은 방이라는 공간을 통해 극적으로 표현했다. 주제의 심각함에도 작가 특유의 탁월한 서정적 문체가 빛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체제와 이데올로기의 폭력, 그리고 그것들에 의해 동요되는 인간의 모습, 즉 그로 인해 심리적으로 손상 받고 육체적으로 마모되는 과정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다.

 특히 『붉은 방』은 분단 문제로부터 파생된 폭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수의 지배자들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량학살 할 수도 있다는 살벌한 이데올로기와, 동시에 "사회정의 구현"이라는 도덕적 엄숙주의가 그 이데올로기의 전면을 완벽한 위장으로 치장하고 있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현재와 과거, 개인과 사회, 실존적 고뇌와 공동체적 실천, 그리고 상이(相異)의 문제에 대해 임철우는, 당대의 폭력과 과거의 폭력, 개인의 파멸과 사회의 부도덕함의 관계를 상기시킨다. 이 소설은 체제의 폭력 앞에 두려워만 할 뿐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작품 속 형사인 ‘최달식’은 교회에서 ‘집사’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는 만큼 신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하지만 ‘최달식’의 일상 속의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은 기독교에서 가장 멀리해야 하는 대상인 ‘사탄’을 닮아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의 교리와 ‘최달식’의 ‘엄청난 증오와 적개심으로’가득 찬 모습은 모순적이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이념인 ‘빨갱이는 모조리 원수들이다’과도 모순적이다. 폭력적인 일상을 보내다가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올리면, 찌무룩하던 기분도 훨씬 나아질 것이’라는 독백은 모순의 끝을 보여준다. 이 모습은 1980년대, 민주주의 운운하면서 실상은 폭력적이었던 사회를 보여준다. 폭력적인 모습을 작품은 기독교라는 종교적인 신성함을 통해 더 극대화 시키고 있다.

 ‘붉은 방’이란 공간적 배경을 통해 세계와 자아와의 단절과 붉은 색이 주는 부정의 이미지를 최대한 살리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동질성 있는 아픔을 보여준다. 나아가 주인공들의 내면에 담긴 피해 의식의 역사적 의미를 끈질기게 추적한 『붉은 방』은 1980년대의 감수성을 대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