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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양귀자 단편소설 『숨은 꽃』

by 언덕에서 2016. 5. 6.

 

양귀자 단편소설 『숨은 꽃』

 

양귀자(梁貴子.1955∼ )의 단편소설로 1992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작가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은 일종의 자전적 소설로 작가는 이 소설에서 '세상 속에 묻혀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인간다운 아름다움을 갖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 『숨은 꽃』은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의 귀신사를 무대로 삼고 있다. 그러나 청도리에 귀신사는 없다. 전주에서 모악산의 서북쪽 허리를 딛고 지나는 712번 지방도로를 30분가량 타고 달리면 이르게 되는 청도원 마을 앞에는 국신사(國信寺) 입구임을 가리키는 팻말이 서 있다. 절 뒤편 팻말에 적힌 바에 따르면 절의 이름은 국신사 구신사(狗信寺), 구순사(狗脣寺), 귀신사(歸信寺) 등으로 다양했지만, 귀신사(歸神寺)로 불린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작가는 `돌아가 믿는다'는 뜻의 귀신(歸信)을 `신이 돌아온다'는 뜻의 귀신(歸神)으로 잘못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 작품은 자전소설의 범주에 속하는 작품이어서 읽기에 친근하다. 여로형(旅路型) 정석에 따라 서술되어 또한 안정감이 있다. 소설이란 어떤 유형으로 쓰여야 하는가의 전범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런 의미에서 『숨은 꽃』은 마치 작가 자신의 체험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기행문 같은 소설이다. 작가의 예리하면서도 따스한 시선 속에는 한없는 미로 속에서 헤매던 소설 속의 '나'가 귀신사에 다녀오면서 겪은 일, 그리고 거기에 얽힌 여러 가지 기억들이 녹아들어 있다.

김제 귀신사 대적광전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귀신사(歸神寺)는 우선 이름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영원을 돌아다니다 지친 신이 쉬러 돌아오는 자리. 이름에 비하면 너무 보잘것없는 절이지만 조용하고 아늑해서 친구는 아들을 데리고 종종 그 절을 찾는다고 했다.”

 소설가인 나는 어느 날 3년 전 중단한 단편소설을 다시 쓰기로 결심한다. 작가의 고백이나 기도 같은 것이 단편이라 생각했던 나는 번번이 마음속의 말 때문에 손을 멈춰 버리게 된다. 나는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도착한 곳은 귀신사(歸神寺). 아무것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텅 빈 적요를 찾아 떠난 나는 보수공사를 하느라 어수선해진 것을 보고 실망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섬마을 교사시절, 담임을 맡았던 숙자의 오빠 김종구를 만난다.

 숙자의 무단결석으로 만난 첫 만남, 배 위에서 평화스럽게 잠자고 있던 그, 온통 안개로 자욱한 길잡이 잔치에서 혼신의 힘으로 징을 울려대던 모습 등이 떠오른다. 그는 귀신사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 보수공사를 자청했다고 했다. 나는 김종구의 세상사는 이야기, 그리고 그의 아내가 연주하는 단소가락, 그 소리를 듣고 눈물 흘리는 김종구를 본다.

 이튿날 나는 세상에 숨어사는 거인의 초상화 숨은 꽃의 꽃말을 소설로 그려보기로 하고 그들을 떠나온다.

 

 귀신사에서 우연히 만난 김종구는 반가워하며 자신의 집에 '나'를 초대한다. '나'는 김종구의 집에서 그의 아내 황녀의 단소 소리에 푹 빠져들게 되고, 아내의 단소 가락을 음미하던 김종구가 흘리는 눈물에서 진실한 인간 내부의 단면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의 내용이 전개될 때마다 화자가 과거 바닷가 중학교에서 근무하며 지켜보았던 김종구에 대한 몇 가지 기억이 펼쳐진다. 김종구는 염소고기를 장만해 놓고 정신없이 젓가락을 들이미는 사람들 사이를 말없이 빠져나갔으며, 안개 자욱하던 날, 바다에서 헤매고 있는 배들을 선착장으로 불러 모으기 위해 맨 나중까지 남아서 누구보다 열심히 우렁찬 징소리를 울리기도 했다.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순간에도 김종구는 진정한 선(善)을 자신의 삶 속에서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종구와의 재회 후 기차 속에서 떠올리는 화자의 상념들로 이 소설은 결말을 맺는다. 작가는 아직도 삶의 미로 속을 헤매고 있으며, 출구에 대한 좀처럼 풀리지 않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로에서 출구를 잃은 나, 아침저녁으로 먹히고 아침저녁으로 우는 시인의 뜸부기, 안개 속으로 사라진 김종구, 자신의 꽃말을 암호로 만든 지브란, 그리고 의사의 바느질, 설명되어지지 않는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뚫으라는 것인가. 어디서부터 어디를. 나는 짓밟힌 귀신사에서 본, 모래 더미에 파묻힌 이름 모를 꽃을 생각한다. 그 숨어버린 꽃 속으로 삼투해 들어간다."

 

 

 우리의 삶은 사각형으로 닫힌 복잡한 미로 속을 끝없이 헤매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출구는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외부의 현상에 사로잡혀 아무리 헤매 다닌다 해도 닫힌 미로 속에 출구가 있을 턱이 없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삶의 주체인 우리는 세상 도처에서 감추어져 있었던 숨은 꽃들을 찾아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위선과 거짓의 가면을 모두 벗겨낸 그 곳에서 원시적인 생명력을 지닌 꽃 한 송이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다른 세계로 향하는 투명한 문이 하늘을 향해 열리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평면적인 미로에서 벗어나 시야를 드높은 창공으로 향하게 하고 그속에서 삶의 이치를 깨달아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