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파울즈 장편소설 『콜렉터(The Collector)』
영국 소설가 존 파울즈1(John Fowles, 1926~2005)가 1963년 발표한 장편소설로 그해에 윌리엄 와일러 감독에 의하여 영화화되어 칸 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콜렉터'라면 잘 몰라도 '미란다'라고 하면 보지 않았더라도 금방 떠오르는 연극이 있다. 아! 야한 연극.
한국에서 이 작품은 연극으로 소개되었다. 연극 제목을 '콜렉터'로 하지 않고 '미란다'로 했기 때문인데 야한 소설 같지만 그렇지 않다.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근거한 고도의 장치를 가진 심리소설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나비수집가이자 사디스트인 ‘프레드릭’과 결코 마조히스트로 길들여지지 않는 여성 ‘미란다’와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사디스트는 여자에게 육체적 학대가 아닌 정신적 학대를 하고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그녀를 끝없이 사랑하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시청 세무과에 근무하고 있는 프레드릭은 나비 수집광이다. 그는 아름다운 미술대학생 미란다를 짝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소심한 상류계급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여 그녀 주변에만 맴돈다. 그런데 그는 그녀를 인간이 아닌 또 다른 종류의 나비로 생각할 뿐이어서 그녀를 본 날에는 관찰일지에 기록하곤 한다.
그는 돈을 걸었던 축구경기에서 예상치 못한 거액의 상금을 타게 되고 그 돈으로 교외에 있는 오래된 집을 구입한다. 그 집에는 외부세계와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이중의 지하실과 넓은 정원이 있다. 그는 그곳을 잘 꾸며서 인간나비를 가둘 궁리를 한다.
프레드릭은 마취제를 사용하여 그녀를 채집하는데 성공한다. 그날 이후 미란다는 지하실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계속해서 일을 꾸미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프레드릭은 그녀를 풀어줄 날짜를 약속하지만 그것은 술수에 불과했다. 약속한 날짜가 오면 미란다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혼 신청’을 하기 때문이다. 계속 탈출을 시도하는 미란다는 육체적인 유혹까지 시도하지만 모두 실패하고 끝내는 급성폐렴에 걸리고 만다. 도망가기 위한 술수로만 생각한 프레드릭은 그녀의 고통과 도움 요청을 묵살한다. 나중에 그녀가 중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되나 그녀는 병세가 악화되어 결국 죽고 만다.
손수 만든 상자 속에 여자의 시체를 넣고 땅에 파묻은 그는, 며칠 전 시내에서 보았던 미란다와 머리카락 색깔과 머리 모양이 닮은 또 다른 나비인 ‘마리안’을 채집하려 길을 나선다. 미란다가 있던 방은 이미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어 마치 새로 꾸민 방처럼 보였다.
이 소설 콜렉터는 우리나라에서는 미란다라는 이름으로 더욱 유명하다. 호사가들 사이에서 여자연기자의 완전 누드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대부분 원작의 내용을 모르더라도 미란다하면 괜스레 야한 생각을 품게 된다. 이 소설 콜렉터는 요즘말로 "엽기"스럽지만 야한 소설은 아니다. 연극으로 각색될 때 관객 동원을 위해 야한 연극으로 탄생한 측면이 있다.
콜렉터는 흥미진진하다. 사랑하는 방법에 있어 인간다움을 상실하고 오직 소유만이 있을 뿐인 나비 채집가에게 납치된 아름다운 여성 미란다. 이 소설로 존 파울즈는 영문학의 위대한 전통을 가장 확실히 재창조할 작가로 인정받았다는데 콜렉터는 시대의 충격이라 불리어지며 찬사를 받았다.
그녀가 학교 기숙사에서 돌아와 집에 머물 때면 거의 매일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집이 시청 부속실 바로 맞은편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여동생은 이따금 젊은 남자와 함께 집을 들락거렸는데 나는 그것이 싫었다. 서류정리 등의 일에서 벗어나 잠시 한가해지면, 나는 창가에 서서 유리창 너머로 길 아래를 내려다보곤 했다. 그때 처음에는 X로 표시했는데, 나중에 그녀의 이름을 안 뒤에는 M으로 적어 넣었다. 7쪽
♣
프레드릭의 병적이며 사디스틱한 행동의 원인을 살펴보면 그의 유년기에 일종의 외상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두 살 되던 해에 자동차 사고로 죽었는데, 아버지는 살아있을 때는 늘 술에 취해 있었다. 아버지로 하여금 술을 마시지 않고선 견딜 수 없게 만든 것은 어머니였다. 외국 사람과 도망을 가버린 어머니는 화류계 출신으로, 오직 편안한 생활만을 원하는 여자였다. 그 이후로 프레드릭은 고모 집에서 성장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주인공의 원래 이름은 프레드릭이다. 납치 후에 이름을 묻는 미란다에게 그는 생전의 고모부가 그에게 장난삼아 붙여주었던 별명인 ‘곤충왕 퍼디난드’를 기억해 내고는 그 이름을 말한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나오는 남여 주인공의 이름이 미란다와 퍼디난드이다. 작가는 이 이름을 사용하여, 이 작품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처럼 행복한 결혼으로 끝맺게 될 것이라는 상상을 독자에게 암시하려는 복선을 깔았는지도 모른다. 미란다는 오히려 자기를 납치한 프레드릭을 <템페스트>에 나오는 괴물의 이름인 ‘칼리반’으로 부르고 있다. 그래서 미란다는 이 이상한 ‘사디스트’를 괴물로 간주하여 끝까지 반항하다 폐렴으로 죽는다. 미란다는 마조히스트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프레드릭의 지하실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다.
- 1926년 영국 남부의 엑시스 주에서 태어났다. 전쟁에 징집되었다가 종전 후 4년 동안 옥스퍼드 대학을 다니면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고, 자연스럽게 카뮈와 사르트르, 누보로망에 큰 영향을 받았다. 1950년에 프랑스어로 학위를 받았고, 그 후 여러 곳에서 교편을 잡았다. 프랑스와 그리스 등지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다가 1950년대 중반에 귀국한 뒤 대학 강단에 서는 한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63년 발표한 처녀작 『콜렉터』는 국제적인 명성을 작가에게 안겨 주었고, 다음으로 소개된 『마법사』(1966) 역시 걸출한 상상력과 혁식적인 기법으로 히피 세대들의 필독서로 떠올랐다. 〈더 타임즈〉는 장문의 서평을 통해 그를 '전후에 등단한 작가들 가운데 가장 독창적이고 장래가 촉망되는, 그리고 위대한 영국 문학의 전통을 가장 확실하게 재창조해 나갈 수 있는 작가〉라고 평했다. 존 파울즈의 모든 소설들 가운데 가장 큰 찬사를 받은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전후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소설로 불리며, 1969년 실버펜상과 1970년 W. H. 스미스 문학상을 수상하고, 2005년에는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영문 소설〉로 선정되었다. 존 파울즈의 주요 작품들로는 『아리스토스』(1964), 『마법사』(1966), 『프랑스 중위의 여자』(1969), 『에보니 타워』(1974), 『난파선』(1975), 『다니엘 마틴』(1977), 『섬』(1978), 『나무』(1979), 『만티사』(1982), 『구더기』(1985), 『벌레 구멍』(1998)이 있고, 오랫동안 공개가 예고되었던 『일기』도 2003년에 출간되었다. 그는 2005년 11월 5일, 향년 79세로 타계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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