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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안톤 체호프 단편소설『슬픔(憂愁, Rо́ре)』

by 언덕에서 2016. 1. 30.

 

안톤 체호프 단편소설『슬픔(憂愁, Rо́ре)』 

 

 

 

 

러시아 소설가·극작가 안톤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 1860∼1904)의 단편소설로 1885년에 발표되었다. 체호프는 무려 800여 편의 소설을 썼는데 그 대부분은 무척 짧은 것으로 그 속에는 함축성 있는 인생의 단편이 반짝이고 있다.

『슬픔』은 국내에서 체호프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단편으로 역자에 따라 '애수’, ‘우수’, ‘비탄’ 등의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우리는 흔히 아주 답답할 때 그리고 이런 심정을 그 누구에게도 전하지 못할 때 홀로 끙끙 앓으며 “누가 내 속을 알겠느냐”고 하소연한다. 또 겪어본 자만이 안다 하기도 하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신실한 친구 한 사람만 있어도 그 인생은 풍요로운 것이라 하기도 한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슬픔』은 누구에게도 자신의 슬픔을 풀어놓을 수 없는, 그리하여 자신의 슬픔을 그 어디에서도 풀길이 없는 가엾은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은 살면서 위로받고자 한다. 즉 인간은 살아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이끼 끼는 그 아프고 시리며 가시지 않는 어떤 것들을 풀어내기도 해야 하는 존재이다. 그것은 때로 스트레스 같은 것일 수도 있고, 한스러움이나 슬픔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쉽게 치유되지 않는 정신적 외상이나 마음의 상처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살면서 쌓아가고 기록해 나가기도 하지만 때때로 그것을 허물고 또 지우기도 해야 한다. 바로 이 허물고 지우는 과정이 자기 해소의 과정이기도 하다. 삶은 자기 축적과 자기 해소를 반복하는 노정인지도 모른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885년 제정 러시아. 모스코바에서 마부로 일하고 있는 ‘이오나 포타포프’는 슬프다.  사랑하는 아들 ‘쿠지마 이오느이치’가 전쟁터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하고자 한다.

 젊은이가 물을 마시고 싶듯이 그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들이 죽은 지 이제 곧 일주일이 되지만, 여태 그는 아무와도 상세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차근차근 자세히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데…, 아들이 어떻게 병에 걸렸으며 어떻게 괴로워하다, 죽기 전에 무슨 말을 했으며 어떻게 죽었는가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는 누군가에게 장례식과 병원으로 죽은 사람의 옷을 가지러 갔던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시골에는 딸 아니시아가 남아 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 그의 말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제 그는 그저 길 위의 사람들, 안면 없는 사람들(마차의 손님들)을 향하여 말을 건네지만 그의 말을 들어줄 사람은 없다.  그의 마차를 탄‘장교’도 ‘세 사람의 젊은이’(키가 크고 마른 두 사람, 곱사등이)도 그의 말을 애써 들어주지는 않는다.

 "이 수천 명의 사람 중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단 말인가!“ 

 그러나 군중은 그의 비탄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날 뿐이다. 슬픔은 끝없이 밀려온다. 이오나의 가슴이 터져서 슬픔이 쏟아져 나온다면 그것은 온 세상을 가득 채울 만큼 크지만, 지금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낮에 불을 켜고도 보이지 않는 하찮은 껍데기에 숨어 있는 것이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자는 사람들뿐 그의 대화 상대는 어디에도 없다. 마지막으로 혼자서는 풀 수 없는 슬픔과 고적함을 독백하듯 말에게 중얼거릴 뿐이다. "그래, 말아, 쿠지마 이오느이치는 죽었단다. 오래 살라고 했는데 헛되게 가버렸단다. 지금 네가 망아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보자. 그러면 너는 그 망아지의 어미가 된다. 그러나 갑자기 그 망아지가 죽었다고 해봐. 슬프지 않겠니?”

 

◇연극 단원들과 함께 한 체호프

 

 

이 작품은 소설의 기법 중 '극적 제시'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작가는 마부 이오나의 감정을 직접 분석해 보이거나 논평하지 않는 대신 이오나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예컨대 작품 서두에 이오나가 눈을 잔뜩 뒤집어 쓴 채 마차에 앉아 있고 말도 역시 그러한 상태로 꼼짝 않고 있는 것을 묘사한 다음 손님이 행선지를 말하며 거듭 불러야 이오나와 말이 움직이고, 게다가 제대로 길을 들지 못하는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이오나가 무엇엔가 침잠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오나의 슬픔은 작가에 의해 설명되는 것이 아니고 독자가 이오나의 행동이나 대사를 통해 추리해 나가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극적 제시의 방법은 소설의 기법을 가리키는 것이며, 극적 소설이란 소설 유형의 하나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둘 사이에 필연적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작품 속에 개입해서 상황이나 사건의 의미를 직접 설명하는 대신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극적 제시 방법의 하나이다. 희곡의 기본적인 특징이 서술자의 부재임을 생각해 보자. 반면 극적 소설이란 행동 소설과 성격 소설이 종합된 것으로 인물(성격)과 사건(행동) 사이의 긴밀한 관련성을 특징으로 하는 소설 유형이다. 이 작품 『슬픔』은 극적 소설은 아니지만 극적 제시의 방법을 쓰고 있다.

 

 

그는 혼자 있을 때면 아들에 관해서는 생각해선 안 된다. 아들에 대해서 누구에게 이야기를 할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이 생각하거나 그의 모습을 그려보는 건 무섭고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얼마 전에 외아들을 잃은 늙은 마부 이오나는 그 슬픔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동정을 구하고자 한다. 그래서 손님을 태울 때마다 그는 아들의 죽음을 말하고자 하나 진지한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결국 실패하고 만다. 숙소로 돌아와 동료 마부에게도 말을 걸어 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끝내 자기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이 없자 그는 자기 말에게 아들이 죽은 사연을 털어놓는 수밖에 없다.

동물에게 인간적 교감을 추구하는 이러한 반어, 또는 희비극은 인간이 본래 고독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작품은 체호프의 독특한 해학과 비극적 정조가 혼합된 초기 작품의 하나이다.

이 작품은 마부 이오나의 고독과 우수를 통해 메마른 세상에서 겪는 인간의 비애를 짙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얼마 전에 외아들을 잃은 늙은 마부 이오나는 그 슬픔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동정을 구하고자 한다. 그래서 손님을 태울 때마다 그는 아들의 죽음을 말하고자 하나 진지하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끝내 자기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이 없자 그는 자기 말에게 아들이 죽은 사연을 털어놓는다. 동물에게 인간적 교감을 추구하는 이러한 반어는 인간이 본래 고독한 존재라는 이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고 있으면, 이와 더불어 체호프 특유의 비극적 정조가 인상적으로 제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