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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김노 창작집 『중국 여자 한국 남자』

by 언덕에서 2016. 3. 2.

 

 

김노 창작집 『중국 여자 한국 남자』 

 

 

 

 

 

2000년, 신동아 논픽션 최우수 당선작 '길림댁은 등나무처럼 살고 싶다'의 작가 김노1의 첫 창작집이다. 이 책에는 신동아 논픽션 당선작인「길림댁은 등나무처럼 살고 싶다」외에 여러 가지 문학상을 수상한 중단편 아홉 편이 실려 있다. 중국 교포인 작가의 암울한 서울 생활을 소재로 하고 있다. 수록된 10편 공히 중국 교포 그리고 이주노동자라는 사회적 약자들의 형언하기 어려운 고통의 기록이어서 읽는이로 하여금 놀라움과 숙연함을 자아낸다. 

 약 10년 전의 일이다. 부산항 페리 부두 근처의 먹장어 구이로 유명한 식당에서 지인과 저녁식사를 하던 참이었다. 음식을 나르던 서빙 아주머니의 말씨가 특이해서 생각 없이 한마디 했다.

 “길림성에서 오셨나 봐요?”

 순간, 아주머니의 표정이 굳어버렸고 이후에는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닙니다.”

 한마디를 하고선 급히 자리를 떴는데 추가 주문을 하느라 벨을 누르니 다른 아주머니가 나왔다. 심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성희롱을 한 것은 더 더욱 아닌데 뭔가 상대방에게 괴로움을 준 것 같은 느낌이어서 계속 기분이 찜찜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랫동안 궁금했던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아주머니의 어투가 특이했는데 함경도 사투리 같기도 하고 평안도 사투리 같기도 했지만, 또 다른 사투리 즉, 한국에서는 듣기 힘든 사투리였다. 결론적으로 그 아주머니는 한국에 취업 온, 중국 동포 즉 조선족이었고 체류 기간을 넘긴 상태였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손님인 내가 ‘길림성에서 왔느냐’는 질문을 하자 경찰이나 법무부 공무원인 줄 착각하고 안절부절못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 책 속의 10편의 이야기 속에도 비슷한 장면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표제작인 『중국 여자 한국 남자』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중국 교포인 송희는 미망인 상태에서 아들 근식을 중국 친정에 두고 서울에 와서 일하다 허가된 체류 기간을 넘긴다. 한국에 와서 식당일 등으로 돈을 벌었지만 블로커에게 진 빚을 갚기에 급급했다. 그 당시 단속에 시달리던 송희에게 다가온 한국 남자 남편은 그야말로 불법체류의 구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결혼생활은 쉽지가 않다. 남편은 가부장적이기 짝이 없어 그녀를 종부리듯 하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폭언과 폭행을 서슴지 않는다. 전처 자식인 정아 역시 그녀에게 새엄마 대우를 하지 않으며 ‘중국아줌마’로 부른다. 뿐만 아니라 시어머니 및 시댁 친구들도 중국교포라는 이유로 야만인 대하듯 하는데 시댁의 제사 때는 마치 하녀처럼 부린다. 남편은 매월 3만 원의 용돈을 주며 가계부를 잘 적지 않는다며 폭언과 폭행을 가하기 일쑤다. 송희는 중국의 친정에 연락하거나 작은 선물을 보낼 때도 남편이 준 돈이 아닌 결혼 전 자신이 번 돈을 써야 한다.

 중국에서 찾아온 친구 진숙의 부탁으로 불법체류자로 구속된 진숙의 여동생을 만나러 간 송희는 그곳 수사관으로부터 중국 교포 불법체류자들은 '쥐새끼'라는 모멸 섞인 말을 듣는다. 시댁의 제사에서 송희는 시어머니를 비롯한 시댁 식구이 중국산 우황청심환이나 고사리나물의 저급함에 대한 말을 듣다가 나름의 반론을 펴다가 그로인해 시댁 식구 앞에서 남편으로부터 폭행당할 뻔하기도 한다. 남편과 시댁식구들은 자기들이 제공한 아파트에 송희가 편히 사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한다고 말하며 툭하면 중국을 후진국이니 못사는 나라니 하며 송희에게 모욕을 가한다.

 이후 송희는 중국 내 조선말 잡지사의 원고 청탁을 받고 틈을 내어 과거부터 소질 있던 글쓰기를 시작한다. 그전에 남편 형우는 송희가 보여준 그녀의 단편소설을 읽은 후 비웃고 평가절하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며칠 후 중국 잡지사에 보낼 원고 봉투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남편 형우의 폭행은 시작된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허구이고 중국생활 습관과 한국생활 차이를 사실적으로 적었을 뿐이라는 송희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폭력은 계속되어 그녀는 피를 흘린다. 뜯긴 머리카락들이 여기저기 흩날리는 가운데 발길질에 정신을 잃은 그녀는 곧 아득한 나락으로 빠져든다.

 

 

 '중국교포'란 중국에 살며 국적이 중국인 한국인을 말한다. 중국에서는 '조선족'이라 부른다. 구한말에 조선이 외세의 침략을 받으며 국권이 흔들리고 나라 사정이 어려워지자 많은 한국인이 새로운 생활 터전을 찾아 만주2와 시베리아 지역으로 떠났다.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더 많은 한국인들이 만주로 이주하였다. 일제에 농토를 빼앗기고 일자리를 잃은 농민이 유랑민이 되어 만주로 갔다. 이들은 만주에 살며 독립운동을 열심히 도왔다.

 마침내 광복이 되고 일제가 물러났지만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뉘고 이념과 체제가 다른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섰다. 중국 교포 가운데 일부는 북한으로 갔고 나머지는 중국에 남았다. 지금 중국에는 200만 명 정도의 교포가 산다. 중국 교포는 국적이 중국이므로 이들을 한국으로 오게 할 수는 없다. 중국에서 소수 민족으로 사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세월이 흐르고 교포 3 ~ 4세가 태어나며 이들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고 중국인이 되고 있다.

 한편, 한국 정부가 중국에 독립운동가 후손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여 중국 교포가 여러 가지 비자를 받아 한국에 취업하는 길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한국에서 주로 임금이 적은 육체노동에 종사하므로 한국에서의 삶도 고되다. 또 일부 중국 교포가 보이스 피싱 같은 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들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이 따뜻하지만은 않다. 게다가 중국 교포 오원춘, 김하일, 박춘봉 등의 토막 살인사건은 그러한 시선을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2010년 12월에 강미순이란 탁구 선수가 한국 국가대표가 되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 선수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화제가 된 것은 이 선수가 중국 교포 출신이기 때문이다. 강미순은 중국 흑롱강 성에서 태어나 탁구 선수층이 두꺼운 중국에서 2부 리그 6위를 할 정도로 탁구를 잘했다. 그녀가 한국에 와서 실업팀에서 뛰다가 마침내 국가대표가 되었다. 강미순은 앞으로 중국 교포 3 ~ 4세가 한국 사회와 어떻게 융합할지를 제시하는 좋은 모델이다. 

 

 

 

 

 소설가 김노의 이 창작집에는 1편의 논픽션과 9개의 픽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논픽션은 2000년 월간 신동아 논픽션 최우수 당선작 『길림댁은 등나무처럼 살고 싶다』이고 나머지는 조선족으로서 한국사회에서 냉대받아왔던 작가의 경험으로 창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참으로 불편하고 힘들어서 여러번 읽는 것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김노 작가가 “한국에서의 결혼은 결코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가 없었고, 오로지 가사노동과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순종적인 여성으로밖에 아무런 존재 의미가 없었다”고 작가의 말에서 첨언한 점은 더욱 그랬다.

 책 말미에서 문학평론가는 "우리 사회 밑바닥 생활에 숨겨진 이야기를 겉으로 드러내 고발하는 그것으로써 인간 부조리와 사회 불합리를 간접 비판하고, 그 곳에서 짓눌려 신음하는 약자들의 삶을 그려내어 조용하게 폭로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고 적었다. 또한 “주인공들과 대척관계에 있는 우리의 ‘현실’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하며 특히 인간 삶의 조건이나 양태, 다시 말해 인간존재 양식에 대해 새삼 심각하게 생각하게 한다”고 덧붙였는데 이는 한국인의 중국 교포에 대한 근거없는 인간 차별과 전형적인 천민자본주의의 대표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가난에 찌들리던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같은 민족, 동포를 노예 대하듯 이렇게 우월하게 대하게 되었는가를 반성하게 된다.

 OECD 선진국의 경우 남녀차별과 남성의 권위주의가 적다고들 지적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공히 남녀평등의 수준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과 관계없이 어느 나라든 교육수준의 정도에 따라 남녀평등이 이루어지기 마련이고 인권이나 인간에 대한 배려가 높아진다. 우리의 교육수준이 높다고 한들 무엇하겠는가? 이 책은 중국교포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인종차별과 저급한 문화수준이 상세하게 나열되어 있다. 이 책은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속살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책을 사랑하는 이는 물론이고, 사회학 및 중국 교포 문학에 관심있는 분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1. 1956년 중국 길림성에서 태어나 우리의 고등학교 교육 정도를 마치고(1974년), 4년 후에 결혼했으나(1978) 8년 만에 남편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 비운을 맞는다(1986년). 그로부터 3년 후인 1989년에 부모님의 고향이 있는 고국, 한국으로 들어왔다가 1992년 재 입국하여 한국 남자와 재혼하여 21년을 함께 살았으나 더 이상 노예가 되지 못하고 이혼하여 비로소 자유인이 되었다(2013). 불비한 조건 속에서 1990년도부터 수필 수기 중단편 등을 창작하기 시작하여, 수필「낯선 고향길」로 제1회 동부문학상을 수상하고(1995),「나의 서울생활」로 한국일보 여성생활수기 부문 우수작을 냈으며(1995),「어머니의 작은 소망 하나」로 '행복의 샘' 창간 6주년 기념 나의 어머니 수기 공모 당선작을 냈다(1998). 그 후 단편「한심한 세상」으로 중국 장춘에 있는 조선족문예지 '장백산'에서 '모드모아문학상'을 받았으며(2000), 같은 해에「중국 아내」로 제3회 남양주 신인문학상과「길림댁은 등나무처럼 살고 싶다」로 동아일보 신동아 논픽션 최우수상을 각각 수상한 바 있다. 2015년 12월 현재까지 중단편·수필·수기 등을 모두 합쳐 40여 편을 창작했으나 이 가운데... 10편만을 골라 꿈에 그리던 서울에서 첫 창작집을 펴내게 되었다. [본문으로]
  2. 오늘날의 랴오닝 성, 지린 성, 헤이룽장 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1904년 시작된 러일전쟁에서 패한 러시아는 만주 남부에 대한 모든 이권을 일본에 양도했다. 1932년 3월 9일 일본은 만주지방의 3개 성을 합하여 만주국이라는 괴뢰정권을 세웠다. 일본은 만주를 아시아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산업기지 겸 군사기지로 탈바꿈시켰다.1945년 8월 9일 소련은 만주를 침략했다. 중국공산당 지하 게릴라들은 소련군이 넘겨준 일본군 무기로 만주지역 대부분을 점령했다. 1953~57년의 제1차 5개년계획 때 중국의 산업투자 가운데 상당 부분이 만주에 투입되었다. 1953년 베이징 정부는 만주를 랴오닝·지린·헤이룽장 성이라는 3개 성으로 정식 분할했다. 오늘날에도 만주는 여전히 중국의 산업 중심지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