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高朋滿座

현대의학이 놓치고 있는 마지막 순간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

by 언덕에서 2015. 9. 2.

 

현대의학이 놓치고 있는 마지막 순간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

 

 

 

내가 일요일 밤 즐겨보는 TV 프로는 KBS - 1TV의  '장영실 쇼‘이다. 국내 최고의 인문〮자연 과학자들이 출연하여 해당 주제의 현황 및 문제점과 향후 방향을 논의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지난주의 주제는 '치매'에 관한 것이었다.

 지난 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의 뇌 부검 결과, 그의 사인은 치매의 3대 발병원인 중 하나인 ‘루이체 치매’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치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소리 없이 찾아와 삶을 무너뜨린다. 현재 치매환자 수는 급격히 증가해 개인을 넘어 사회와 인류의 문제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이에 전 세계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뇌 공학 프로젝트를 출범, 치매치료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출연 패널들은 과연 인류가 난치병 '치매'를 정복할 수 있을까? 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치매’의 치료 및 관리가 중요한 것은 치매가 ‘인간다운 삶’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최고 학자들의 토론을 시청하면서 요즘 베스트셀러라고 불리는 한 권의 책이 생각났다.

 

 

 오늘 소개하는 책에는 아래의 수식어들이 따라다닌다.

 

『뉴욕 타임스』, 아마존 베스트 1위

『뉴욕 타임스』 31주 연속 베스트셀러

『뉴욕 타임스 북 리뷰』 2014년 가장 주목할 만한 책

 아마존, NPR(미국공영라디오) 2014년 최고의 책

『워싱턴 포스트』, 『시카고 트리뷴』, Apple iBooks 2014년 10대 도서

 

 신문마다 격찬한 서평 때문이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완독 후에는 참으로 착잡한 심정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막연하게 언젠가는 죽을 것을 알고 있고 그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를 나아가지만 정작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내가 죽는 그 순간의 상황이 가족과 사회에 얼마나 큰 부담을 줄 수 있고 본인 자신에게도 고통을 주어서 얼마나 삶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하기조차 싫어한다.

 

아툴 가완디(en:Atul Gawande, 1965 ~ )

 

 Ⅲ

 

 오늘날 선진국에서는 인구 구조의 직사각형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현재 50세 인구와 5세 인구가 비슷하며, 30년 후에는 80세 이상 인구와 5세 이하 인구가 맞먹을 전망이다. 한국에서도 급속한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65세 이상 인구가 2030년에는 24.3%, 2060년에는 40.1%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버드대 보건대학 교수인 아툴 가완디(Atul Gawande,1965 )1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이러한 사회 현실과 맞닿아 있다. 그동안 현대 의학은 생명을 연장하고 질병을 공격적으로 치료하는 데 집중해 왔다. 하지만 정작 길어진 노년의 삶과 노환 및 질병으로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하고 인간답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한다. 이를 성취해 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한계를 인정할 때 비로소 인간다운 마무리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의학자가 쓴 의학보고서 또는 불치병자의 죽음에 관한 연구서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의사가 쓴 죽음을 앞 둔 환자에 관한 철학서 또는 수필집으로 읽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매우 정교하고 과학적이지만 인간미 넘치는 다큐멘터리적인 소설로도 손색없다. 이 책의 이야기는 늙어 노인이 되어 병마와 싸우다가 죽고야마는 여러 건의 사례를 아래의 목차와 같이 배열하여 매우 일관되게 정리하고 있다.

 

1.  독립적인 삶 _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2.  무너짐 _ 모든 것은 결국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3.  의존 _ 삶에 대한 주도권을 잃어버리다

 

4 . 도움 _ 치료만이 전부가 아니다

 

5 . 더 나은 삶 _ 누구나 마지막까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6.  내려놓기 _ 인간다운 마무리를 위한 준비

 

7.  어려운 대화 _ 두렵지만 꼭 나눠야 하는 이야기들

 

8.  용기 _ 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순간

 

 

 

(저자 가완디의)아버지는 우리가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고 새 셔츠를 입히는 동안 계속 쳐다보기만 했다.

“아프세요?”

“아니다.” 아버지는 일어나고 싶다고 손짓을 했다. 우리는 아버지를 휠체어에 앉혀 뒷마당이 보이는 창문 앞으로 밀고 갔다. 꽃과 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여름날이었다. 조금 있다 우리는 아버지를 저녁식사 테이블로 밀고 갔다. 아버지는 망고, 파파야, 요구르트, 그리고 약을 먹었다.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생각에 잠겨 침묵을 지켰다.

“무슨 생각 하세요?” 내가 물었다.

“죽기까지의 과정을 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생각 중이다. 이거, 이 음식이 그걸 길어지게 만들고 있어.”

 어머니는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당신을 돌보는 게 좋아요, 램. 당신을 사랑하니까.”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힘드시죠, 그렇죠?” 여동생이 말했다.

“응, 힘들다.”

“쭉 잘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으세요?” 내가 물었다.

“그래.”

“깨어 있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옆에 있다는 걸 느끼고, 이렇게 우리와 같이 있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가 물었다.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는 기다렸다. 아버지는 말했다.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                - 392쪽

 

 ‘Being  Mortal’이라는 원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우리가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대체 무엇을 위해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의학적 싸움을 벌여야 하는지 묻고 있다. 게다가 그 싸움에서 우리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육체가 파괴되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마지막에는 가족과 작별의 인사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차가운 병실에서 죽어 간다. 그 모든 것을 희생한 대가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고작 몇 개월에서 1~2년 정도의 생명 연장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해서 얻은 약간의 시간 동안 우리가 ‘남은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혹독한 치료와 그에 따른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릴 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노쇠해지거나 치명적인 질병에 걸려 죽어 갈 때 취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는 없는 걸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죽음 자체는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니지만, 인간답게 죽어 갈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윌슨이 열아홉 살 되던 해, 어머니 제시가 심한 뇌졸중을 겪었다. 당시 제시의 나이는 쉰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다. 뇌졸중으로 그녀는 몸 한쪽이 완전히 마비돼서 걷거나 서지 못했으며, 팔도 들 수가 없었다. 또한 얼굴 한쪽이 축 처졌고, 말투도 어눌해졌다. 지능과 인지 능력에는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돈을 벌러 나가는 것은 고사하고 혼자서는 씻을 수도, 요리를 할 수도, 화장실에 갈 수도, 빨래를 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대학에 다니던 윌슨은 전혀 수입이 없었고, 좁은 아파트를 룸메이트와 함께 쓰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어머니를 돌볼 길이 없었다. 형제자매가 있었지만 사정은 비슷했다. 어머니를 맡길 곳은 요양원밖에 없었다. 윌슨은 자기 대학 근처에 있는 곳을 골랐다. 안전하고 친절한 곳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을 볼 때마다 끊임없이 요구했다. “여긴 집이 아니지 않니, 요양원은 싫어. 집에 데려가 줘.”

 - 142쪽

 

 더 이상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육체와 정신이 점점 쇠락해 가면서 더는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현대 의학과 보건 체계는 이 문제를 두 가지 방향으로 해결하려 해 왔다. 하나는 ‘요양원nursing home’이라는 보호 시설을 만들어 노인들을 안전하게 수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년에 직면하는 각종 질병들을 공격적으로 치료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겉으로만 보면 이 방식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특히 자녀들 입장에서 보면 노년에 이른 부모를 안전하게 보호해 줄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떤 질병이라도 의학이 최선을 다해 해결해 주리라는 전망은 꽤 안심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양원이나 병원의 공격적 치료에는 공통된 문제점이 있다. 바로 ‘삶의 질’에 대한 고려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가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노년의 삶의 질에 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죽음을 유예시키는 데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다운 마무리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와 직결된다. 그렇다면 현대 의학의 공격적 치료는 더욱 큰 문제를 가져다준다.

 

“아뇨, 그 애한테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이 모든 걸 그만 멈춰 주세요!”

“의료진이 새라에게 카테터를 삽입하고 이것저것 하려고 했어요.”

 그녀의 어머니 돈이 내게 말했다.

 “그래서 얘기했죠. ‘아뇨, 그 애한테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침대에 소변을 봐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료진은 또 혈압과 혈당 측정 등 이런저런 검사들을 하려고 했죠. 하지만 이제 검사 결과 같은 것에는 더 이상 관심이 가지 않았어요. 수간호사에게 가서 이제 모든 걸 그만 멈추라고 말했죠.”

 이전 3개월 동안 우리가 새라에게 한 것들은 수많은 스캔, 검사, 방사능 치료, 화학요법 치료 등은 아무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그녀의 상태를 악화시키기만 했다.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면 새라는 훨씬 더 오래 살았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녀는 맨 마지막 순간에나마 평화를 찾았다. -  289쪽

 

 

 

 아름다운 죽음은 없지만 인간다운 죽음은 있다. 하버드대 의대 교수이자 의학 저술가인 아툴 가완디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그는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의학이 인간다운 죽음을 지켜주고 있지 못하다고 고백한다. “가족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죽음 대신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단 채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의학적 싸움을 벌이다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치료를 하는 게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하지만 최대와 최선은 꼭 일치하지 않는다고 가완디는 지적한다. 상황에 따라 연명치료는 환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것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임종이 다다른 환자에게 연명치료를 하는 것으로 보호자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심리적 위안을 얻는다. 이런 위안 외에 가족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가완디가 의료계의 변화를 촉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간 현대의학은 관절염·당뇨병·심장질환 등 개별적인 질병을 치료하는 데 관심을 가져왔다. 가완디는 의료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치료의 외연을 넓혀 노년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관리하는 노인병학(geriatrics)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의사가 일방적으로 질병의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환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청하고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처가 무엇인지 안내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다. ‘사는 날까지’와 ‘죽는 날까지’는 동의어다. 결국 책의 제목인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마지막을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물음으로 치환된다. 질문에 대해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거나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다면, 가완디의 지혜를 빌려보는 것도 좋겠다.

 

 

 장황하게 ‘2014년 최고의 책’을 읽은 소회를 적어보았다. ‘2014년 최고의 책’이란 말은 틀리지 않았음을 알겠다. 이 책을 읽은 다른 이들처럼 때로 눈물나게 만들고, 때로 분노하게 만들며,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문제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환자들 속에는 35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8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도 있을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그분들은 자신의 생을 정리하지 못한 채 의사들에게 수술과 시술만 받다가 유언도 못하고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이 책은 마지막 단계에 이른 환자들에게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며 그 대안을 제시해 준다.

 

 

 

 

  1. 아툴 가완디(en:Atul Gawande, 1965년 10월 5일 ~ )는 미국의 의사, 보건정책관료, 저술가이다. 스탠퍼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윤리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하버드 보건대학에서 공중보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하버드 의과대학과 보건대학교수, 보스턴 브리검 여성병원 외과의이며 '뉴요커'지 전속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첫 저서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은 내셔널 북 어워드 최종 후부에 올랐고,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는 2007년 아마존 10대 도서에 선정되었으며, '체크! 체크리스트' 역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는 최고의 과학 저술가에게 수여하는 루이스 토머스 상을 비롯해 내셔널 매거진 어워즈를 2회 수상했고, 사회에 가장 창조적인 기여를 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맥아더 펠로십을 수상했다. 또한 그는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100인'에 이름을 올렸으며, 2015년 영국 프로스펙트지가 선정한 세계적인 사상가 50인에 선정되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