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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성석제 단편소설 『내 고운 벗님』

by 언덕에서 2016. 1. 22.

 

성석제 단편소설 『내 고운 벗님』 

 

성석제(成碩濟.1960~)의 단편소설로 2004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작품 『내 고운 벗님』은 마지막 문장을 읽기까지는 소설이 어디로 흘러갈 것이며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감을 잡기 힘들다. 짧지 않은 문장으로 낚시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설명해가는 그의 박식함에 아연하다가도 그 긴 대사처리의 의중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지도 한다.

 청남대가 반환될 시점, 그에 얽힌 '카더라'식 뒷 이야기를 모티브로 구상한 이 작품은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하고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고 웃음이 넘친다. 그러면서도 행간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번쩍인다. 한국 군대 문화와 그 연장선상이나 다름 없는 한국 사회생활과 정치활도, 성사만 되면 3대를 먹여 살린다는 무기거래 에이전트, 그리고 붕어 낚시와 낚시군에 얽힌 이야기는 권력에 빌붙어 피를 빨아 먹고 사는 거머리 같이 비겁한 소시민의 초상화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내 고운 벗님』에서 작가의 유려하고 거침없는 문체로 쏟아내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이상하고 비정상적인 세계에 대한 통렬한 야유이다. 작가의 해학은 우리의 감각기관이 느낄 수 있는 온갖 맛과 냄새와 소리와 정서를 장인 정신 같은 빼어남으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작가는 우리 삶의 얇음과 허약함을, 아름다움과 끈덕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읽는이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의 이유는 단순한 야유나 비판이 아니라 날카로운 통찰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더불어 건강하고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청남대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전직 육군 대위로 현재는 무기중개상인 ‘본부장’이라 불리는 이가 낚시터로 유명한 동네에 온다. 본부장은 현역 대위 시절 함께 근무했던 중사를 찾아와 낚시를 하며 며칠 쉬려고 한다. 국책사업과도 같은 외국과의 한 번의 거래로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하고 삼대를 먹고 살게 만든다는 대위는 무척이나 점잖아 보인다. 그리고 뭔가가 있는 듯이 행동한다. 주변 인물들의 호들갑스런 추임새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다.

 정작 본인은 가만히 있는데, 주변에서 추켜올려 주는 것이다. 대위는 낚시를 하고 중사와 그가 데리고 있던 낚시점 병장은 한 마리의 고기도 낚지 못하는 대위를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다. 잔잔한 수면 아래에는 떡밥을 뿌리고 잠수까지 해가며 대위에게 월척을 낚게 하려는 이들의 모습은 안쓰럽다.

 과대망상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아랫사람들의 추켜올림을 그대로 믿은 까닭일까. 대위는 갑자기 딱 한 마리만, 이 저수지에서 가장 큰 놈 한 마리만 잡겠다고 선언하고 점차 낚시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다. 3일 동안 긴장은 서서히 고조되나, 물고기는 대위가 드리운 낚시 바늘에 입을 댈 생각조차 없다. 마침내 대위는 폭발하듯 본성을 드러낸다. "이 섀키야, 내가 누구야. 내가 누구냐고. 내가 누군 줄 알아. 나는 나다. 나야, 나. 조관석이다. 이 십섀키야. 캐섀키야. 이 캐애섀키들아."

 그는 쓰레기와 쓰레기봉투, 낚싯대, 밑밥 주걱, 새우, 지렁이 등 쓰레기만 흔전만전 내버려놓고 사라졌다. 그가 30만평 호수에 쌓아놓은 변덩어리에는 금빛 파리 떼만 윙윙거리며 날아다녔다. 그가 가버리고 난 후 남아있는 이들은 중얼거린다. "가줘서 고맙네요잉. 그 새끼. 미쳤어도 가주니 참말로 고맙지라." 남아있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고 그 중 한 둘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단한 '성은' (聖恩)이 떨어지기를 기대하는 지극히 작은 소시민에게 과잉충성을 하게 만드는 권력의 힘은 나중에는 급기야 어서 가버렸으면 좋을 시대의 편린으로 남게 되는 뒷모습은 씁쓸하기까지 하다. 자기 자신은 미처 깨닫지 못한 '조건'을 갖추고도 환경 탓만 하는 모습은 우리 이웃의 모습이며 나 자신의 모습은 아닐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누구를 빗대려 대위를 등장시켰는지, 대위에게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이들이 우리의 어떤 모습을 연상시키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 미친 대위 새끼처럼 그저, '벗님'이라 불리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는지 작가는 생각할 여지를 독자에게 던져준다.

 

 

 이 소설은 '벗'이라는 존재를 통해 그것이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이 이상하고 우스꽝스런 현실은 우리 주변의 권력과 그것을 접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든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작가는 자신이 다루는 주제―그것이 도박이든 춤이든 낚시든―에 관한 거의 전문가에 가까운 지식을 동원하여 상황을 지극히 구상적으로 서술함으로써 “문장이 사라지고 이야기만 남는 글”을 제시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작품 「내 고운 벗님」의 진정한 매력은 이 수고스럽고 거대한 허구의 끝에 남는 저 황당함의 현실감과 그 충격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