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새 달력으로 바꾸며
<모네 '인상, 해돋이' 1872>
새해의 맑은 햇살 하나가
정호승
해뜨는 곳으로 걸어갑니다.
새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갑니다.
누님 같은 소나무가 빙그레 웃는
새해의 아침이 밝아 옵니다.
맑은 연꽃대에 앉은 햇살 하나가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당신의 창을 두드리고
아무도 닦아주지 않는 당신의 눈물을 닦아줍니다.
사랑하는 일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다시 길을 가게 합니다.
어두운 골목
무서운 쓰레기통 옆에 쭈그리고 앉아
이제 더 이상 당신 혼자 떨지 않게 합니다.
쓸쓸히 세상을 산책하고 돌아와 신발을 벗고
이제 더 이상 당신 홀로 밥을 먹지 않게 합니다.
밝음의 어둠과
깨끗함의 더러움과
배부름의 배고픔과
편안함의 괴로움을 스스로 알게 합니다.
때로는 마음의 장독대 위에 함박눈으로 내려
당신을 낮춤으로써 더욱 낮아지게 하고
당신을 낮아지게 함으로써 더욱 고요하게 합니다.
당신이 아직 잠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나무와 숲을 구분하지 못하고
바람과 바람소리를 구분하지 못할지라도
새해의 맑은 햇살 하나가
천개의 차가운 강물에 물결지며 속삭입니다.
돈을 낙엽처럼 보라고
밥을 적게 먹고 잠을 적게 자라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기 때에 당신은
살아 있다고
이제 다시 달력을 새것으로 바꾸어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보잘 것 없는 이 곳을 찾아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2016년은 금년보다 더 유쾌하고 건강한 삶을 맞이하는 생활의 장으로 다가오기를 기원합니다. 도움과 가르침을 주신 여러분께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짧은 글월로 대신합니다. 희망과 건강이 함께 하는 새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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