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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장강명 장편소설 『한국이 싫어서』

by 언덕에서 2015. 10. 23.

 

장강명 장편소설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1975 ~ )의 장편소설로 2015년 발표되었다.한국이 싫어서』는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이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로 이민 간 사정을 대화 형식으로 들려주는 소설이다. 주인공은 잘 다니던 회사를  사표 내고 이민 가는 등, 소박한 욕망에 비해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처해 있는 상황을 변화시키려 노력한다. 작가는 이러한 노력 없이 불만만 거듭하는 사람들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절망적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시의성 있는 소재와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특유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 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엔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 (본문 44쪽) 

 작가 장강명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한국의 청년들이 겪는 일 뿐만 아니라 인터뷰를 통해서 호주 현지의 상황도 실감나게 표현했다고 소설 후기에서 밝혔다. 소설은 원래 허구이지만 이 작품은 우리 앞에서 생생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한 셈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사자 앞의 톰슨 가젤'처럼 느껴진다면, 한국이 답답하다고 느끼는 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행복'을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일은 아닐까.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대학을 졸업한 후 자격증도 없이 금융회사에 입사한 계나는 다행히 콜센터 근무를 면하지만 큰 수레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어떤 조직의 부속품이 되어서 톱니바퀴가 된 신세로 살아간다. 그녀는 자신이 속한 회사에서 엉터리 같은 카드 결제 시스템을 보면서 경악하기도 한다.

 주야간 교대근무에 지쳐가던 어느 날, 계나는 스스로를 돌아보다가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아프리카 톰슨 가젤'을 떠올린다.

 "사자가 올 때 꼭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 하나씩 있다? 내가 걔 같애"

라면서, 무리에 섞이지 못하다가 표적이 되는 불쌍한 존재에 동질감을 느낀다.

 주인공 김계나는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라고 자조한다. 치열하게 목숨 걸고 무언가를 하는 인간도 아니며, 물려받은 것도 없는 신세라고 한탄하는 것이다.

 계나는 자신이 한국에서 '2등 시민'과 같았다고 말한다. 그녀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모은 2천만 원을 집의 재개발 이주비용에 보태라는 아버지, 강남 출신인 남자친구의 부모님이 그녀의 집안 형편을 알자 대놓고 무시하는 상황이 그렇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계나는 한국이 싫어진다.

 결국 그녀는 호주로 훌쩍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학생 비자로 어학연수를 떠나서, 가능하면 호주에서 오래 지내면서 이민까지 계획한다. 그러나 '정글'과 같은 한국이 싫다며 떠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기대와 다르게 '축사' 같은 생활이다. 처음 호주에 도착한 그녀는 한 건물에서 열댓 명이 잠을 자는 '셰어하우스'에서 살아간다. 계나는 돈을 아끼려고 거실에서 커튼을 칸막이처럼 쳐놓고 잠을 자면서 두려움과 소음에 시달린다. 방세를 아끼려고 '닭장 셰어'를 골랐다가, 안전과 안락한 공간과는 멀어진 것이다.

 이후 계나는 호주의 법을 잘 몰랐다가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돈을 벌려고 '셰어하우스' 운영을 맡았다가 입주자가 입금한 위조수표 때문에 경찰에 체포되는 일을 겪는다. 심지어 아파트에 데려온 미국 출신 여자친구가 갑자기 낙하산을 메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려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쫓겨나기도 한다.

 한국을 떠난다는 것으로 인한 갈등과 고민 끝에 계나는 어렵사리 호주 시민권을 얻는다. 한국 사회가 낳는 경쟁과 바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정한 선택이다. 1년에 한 달의 휴가가 주어지는 근무조건은 호주가 아닌 한국에서는 흔히 꿈꾸기 힘든 일이다. 이런 차이는 '애국가'의 가사에서도 드러난다. 시민권 취득 시험을 본 뒤 주인공은 말한다.  

 애국가 가사 알지? 거기서 뭐라고 해? 하느님이 보우하는 건 내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야. 만세를 누리는 것도 내가 아니라 대한민국이고. 나는 그 나라를 길이 보전하기 위해 있는 사람이야. 호주 국가는 안 그래. 호주 국가는 "호주 사람들이여, 기뻐하세요. 우리들은 젊고 자유로우니까요"라고 시작해. 그리고 "우리는 남십자성 아래서 마음과 손을 모아 일한다"고, "끝없는 땅을 나눠 가진다"고 해. 가사가 비교가 안 돼. (본문 171쪽) . 

 

 

 

『한국이 싫어서』는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이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로 이민 간 사정을 대화 형식으로 들려주는 소설이다. 학벌·재력·외모를 비롯해 자아실현에 대한 의지·출세에 대한 욕망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서 평균 혹은 그 이하의 수준으로 살아가며 미래에 대한 비전을 꿈꾸지 못하는 주인공이 이민이라는 모험을 통해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가는 과정을 담았다. 특히 1인칭 수다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전개 방식은 20대 후반 여성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은 듯 생생하고 경쾌하게 전달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 작품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의 한계를 모색한다. 깊이 있는 주제를 작가 특유의 비판적이면서도 명쾌한 문장과 독자를 끌어당기는 흥미로운 스토리로 표현했다.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행복'이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순간의 기쁨을 중시하는 '현금흐름성' 행복을 바라볼지, 아니면 미래를 위해 쌓아가는 '자산성 행복'을 위해 살아갈지 돌아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주인공 계나는 전자일까, 아니면 후자일까? 작가는 이에 대한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한국이 싫어서’ 떠난다고 할 때 기성세대는 그 어떠한 반대 논리로 그들을 설득할 명분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는 매일 울면서 다녔어. 회사 일보다는 출퇴근 때문에. 아침에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아현역에서 역삼역까지 신도림 거쳐서 가 본 적 있어? 인간성이고 존엄이고 뭐고 간에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다 장식품 같은 거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돼.

 신도림에서 사당까지는 몸이 끼이다 못해 쇄골이 다 아플 지경이야. 사람들에 눌려서. 그렇게 2호선을 탈 때마다 생각하지.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을까 하고. 나라를 팔아먹었나? 보험사기라도 저질렀나?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도 생각해. 너희들은 무슨 죄를 지었니? (본문 16쪽) 

이 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자신의 행복을 아끼다 못해 어디 깊은 곳에 꽁꽁 싸두고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 버티는 한국 사회의 서글픈 현실에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책을 다 읽은 후에 계속 머리에 맴도는 구절은 이랬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리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