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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주요섭 단편소설 『사랑손님과 어머니』

by 언덕에서 2015. 11. 18.

 

 

주요섭 단편소설 사랑손님과 어머니

 

 

주요섭(朱耀涉.1902∼1972)의 단편소설로 1935년 [조광]지에 발표되었다. 여섯 살 난 어린아이의 독백을 통해 과부인 어머니와 사랑방 손님과의 미묘한 애정심리를 서술하고 있다.

 이 작가가 초기의 신경향파 문학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연주의적인 세계에 접근한 첫 번째 작품으로서 예술적인 향취가 풍기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사랑과 좌절을 그렸다는 것뿐만 아니라,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연정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특히 사랑의 좌절이 윤리적인 모럴에서 오는 갈등을 다룬 이 작품은 예술의 본원적인 영역을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의 기법은 '분명히 드러내기'보다는 '의미의 감추기'가 핵심적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머니와 사랑손님의 감정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장면에서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한다든지, 지연 효과를 노린다든지 하는 것들은 해당 장면이 암시하는 의미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감추는 고도의 예술적 기법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Mother and a Guest> , 1961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마을에 스물네 살의 젊은 과부가 딸 옥희와 살고 있다. 옥희는 여섯 살 난 여자애다. 옥희 아버지는 옥희가 태어나기 한 달 전에 죽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남긴 딸과 어머니의 삯바느질 등으로 옥희네는 아쉬운 대로 밥걱정은 안하면서 살았다.

 어느 날, 아버지 친구라는 아저씨 한 사람이 옥희 집 사랑에서 하숙을 하게 되었다. 이 사람은 큰외삼촌의 친구이기도 한데, 이 마을 학교 교사로 왔다고 했다. 아저씨는 옥희에게 친절하게 대해 줄 뿐만 아니라, 옥희를 통해 어머니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은근히 드러내기도 한다. 어린 옥희는 그런 아저씨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아저씨가 아빠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어머니는 아저씨와 얼굴도 마주치려 하지 아노지만, 옥희를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이런 가운데 옥희는 자기도 모르데 두 사람의 마음을 전해 주는 역할을 한다. 유치원에서 가져온 꽃을 아저씨가 주었다고도 하고…….

 그러던 어느 날, 옥희는 아저씨가 밥값이라고 준 봉투를 어머니에게 건네주었는데, 거기에는 돈 말고도 무슨 종이 같은 게 들어있었다. 그 종이를 읽은 어머니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가 빨개졌다 한다. 옥희의 뺨에 일을 맞춰 주는 어머니의 입술은 불에 달군 듯 뜨거웠다. 얼마 뒤 어머니는 옥희를 안고, “엄마는 옥희 하나면 그뿐이야.”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하고, 그날 저녁 곱게 다린 손수건을 아저씨에게 갖다 주라고 한다. 옥희는 그 손수건에 뭔가 들었다고 생각한다.

 손수건을 받고 며칠 뒤 아저씨는 옥희 집을 떠났다. 어머니는 기운 하나 없이 새파래진 얼굴이었다.

 

1978년 영화, 하명중, 방희 주연<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여섯 살 난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과부인 젊은 어머니와 사랑방 손님과의 미묘한 애정 심리가 전달된다. 이 작품은 어머니와 아저씨 사이의 연정과 갈등을 섬세하게 나타낸 소설로, 통속적인 내용을 어린아이의 맑고 깨끗한 눈으로 순수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천진난만한 '나'의 행동이 두 어른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어른들의 마음속에 숨겨진 어렴풋한 그리움과 망설임을 어린아이다운 감각과 직관으로 선명하게 포착하는 등 아이의 시선을 절묘하게 활용한 소설이다. 물론 화자가 어린 여자애이기 때문에 서술과 묘사가 표면적이고 즉물적인 선에 머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불충분함이 이 소설의 예술성을 극대화한다.

한 50여 년 전쯤엔 어땠을까. 그때 아이들은 지금 아이들보다도 어수룩한 데가 있어서 자기가 ‘사랑의 우체부‘ 노릇을 한다는 사실을 짐작도 못할 것 같다. 아이를 통해 은근히 자기 마음을 전하는 사람도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아이의 눈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은 어땠을까.

 

 

 이 소설은 여섯 살 난 여자아이의 눈에 비친 애달픈 사랑이야기다. 물론 꾸며진 이야기겠지만 그 시절에 어디선가 있음직한 이야기다. 아니,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어머니, 옥희, 사랑방에 하숙하는 아저씨, 작은외삼촌 등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옥희가 말하듯이 씌어 있다. 바로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 친구 사이를 오가며 ‘사랑의 우체부’ 노릇도 하고, 순수한 눈으로 ‘사랑의 관찰자’가 되기도 한다.

 그 시대 여성들의 고단한 삶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이 소설의 내용은 남편을 잃고 딸과 외롭게 살아가는 젊은 여인과 그 남편의 친구가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인습 때문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애달픈 사랑이야기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아이의 눈에 비치는 대로 전개되면서 글을 읽는 사람들은 더 애틋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은 옥희의 눈을 통해 한 단계 걸러진 두 사람의 마음을 본다. 직접 두 사람의 사랑을 보는 것도 아니고, 오고 간 편지 사연이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른다.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그래서 더욱 애틋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