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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송기원 단편소설 『월행(月行)』

by 언덕에서 2015. 9. 8.

 

송기원 단편소설 『월행(月行)』

 

 

시인·소설가 송기원(宋基元, 1947~ )의 단편소설로 1979년 발표되었다. 단편소설 『월행』은 한국문학에서 좌와 우의 이데올로기 문제를 문학으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6·25로 인해 수많은 비극이 있었고 아물지 못한 채 세월에 묻힌 상처가 있었다. 그러나 송기원의 『월행』처럼 결코 아물 수 없는 6·25의 상흔이 ‘동족상잔’이니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니 ‘냉전’이니 ‘6·25’니 하는 낱말 한 마디 없이 상징적으로 기막히게 그려진 작품은 없는 것 같다.

 『월행』이 보여주는 전도된 서사구조에서 인물은 새로운 모험을 찾아 길을 나선 자가 아니라 고향으로부터 추방된 자이며, 그가 돌아온 고향은 여행에 지친 그를 맞아줄 평화롭고 안락한 공간이 아니라 이미 파괴되고 죽어버린 공간이다. 어째서 이 작품 『월행』은 이러한 서사구조를 지닐 수밖에 없는가. 바로 여기에 한국현대사가 겪어온 고통과 시련의 과정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빨갱이' 일가의 슬픈 이야기를 어떻게 독자 앞에서 이해시킬 것인가 라는 작가의 고민이 묻어나옴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백미는 그 고도의 상징 기법에 의한 상처 치유다. 달빛 부서지는 스산한 밤에 원한 묻힌 봉분에 죄사함을 주재하는 아버지의 깊은 이해와 눈물겨운 원한 씻기의 미덕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슬픔을 우리의 가슴에 되새겨 주는지 모르겠다.

월행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나에게 오라 Come to me> , 1996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차가운 겨울, 미루나무 숲이 있는 개천 둑길을 한 사내가 걷고 있다. 반백의 구레나룻이 덥수룩하고 얼굴에 칼자국이 어그러진 사내의 등에는 어린 아이가 업혀있다. 둑을 타고 가다보니 마을의 불빛이 보였다. 한실 마을은 사내의 고향이었다. 조상 대대로 뼈를 묻고 살아온 고향이었다. 사내가 한실 마을로부터 도망친 것도 훌쩍 이십 몇 년이 넘어 버린 것이었다.

 개천을 벗어나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 아래 다다랐을 무렵 사내는 각혈을 토했다. 등에 업은 아이는 겁이 나 운다. 사내는 우는 아이를 내려놓고 개천 물에 얼굴을 씻는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개들이 짖어댄다. 낯익은 어느 집 대문을 두드린다. 이내 한 청년이 나온다. 사내는 ‘이용규’란 사람을 찾는 사이 그에 해당하는 노인이 나온다. 사내의 아버지다. 사내는 노인에게 달려들며 문안을 올리지만 노인은 대뜸 모른 채한다. 자신의 아들 갑득이는 동난 때 죽었다며 방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상황이 파악된 청년이 사내와 어린아이를 자신의 방으로 들인다. 청년과 사내는 조카와 백부 사이다. 그간의 사정을 인사말처럼 주고받는다. 노인이 다시 나와 사내를 자신의 방으로 들인다. 노인은 청년에게 손자며느리를 깨워 요깃거리를 준비하라고 한다. 사내는 어린 아이에게 “할아버지”라며 인사를 올리게 한다. 노인은 어린 아이는 누구냐고 묻자 사내는 내력을 고한다. 사내와 노인이 지난날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아이는 곯아떨어진다.

 손자며느리가 밥상을 들여오자, 노인은 사내에게 밥을 먹고 갈 데가 있다고 한다. 노인과 사내가 방문을 나서자 청년이 따라 나서려 한다. 노인은 청년을 물리치고 한실 골짜기로 접어들었다. 노인과 사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민둥산을 넘어 봉분들이 모인 골짜기에 다다랐다. 노인은 사내에게 “늬눔 때문에 생긴 원혼들”이라며 사죄를 하라고 말한다. 사내가 봉분하나하나에 절을 올릴 때마다 노인은 누구라며 말해준다. 그때마다 사내의 눈앞엔 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마침내 사내의 아내의 무덤에 다다르자, 사내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노인은 흐느적거리는 사내를 채근하여 마지막 봉분으로 안내한다.

 마지막 봉분은 사내의 것이었다. 난리가 난 뒤, 원혼을 달래면서 사내의 무덤도 함께 만들었다. 사내는 이미 “사망신고”까지 된 죽은 사람과 같았다. 사내가 기침을 하며 피를 토했다. 노인은 두루마기를 찢어주며 당장 이곳을 떠나라고 한다. 아이는 맡아줄 테니, 죽더라도 고향 아닌 곳에서 죽으라고 한다. 사내는 할 말을 미처 다하지 못하고 노인에게 절을 하고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사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노인은 선 자리에서 나무토막처럼 푹 쓰러진다.

 

 단편소설 치고도 그리 길지 않은 「월행(月行)」은 다 읽고도 자세한 내용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우리민족 누구라도 모를 이야기 또한 아니다. 「월행(月行)」의 중심 이야기의 배경은 6·25에 닻을 내리고 있다. 세계사 어디를 뒤져봐도 전무할 동족상잔의 비극을 배경으로 한 가족의 원한과 그 원한의 화해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내와 노인의 주고받는 대화로 볼 때 지식인 가정은 아니다. 여느 때 같으면 소설에 소개되어 있는 것처럼 아름답고 순박한 농촌이요, 농민이었다. 이 평화스러운 한실 마을이 6·25로 인해 살육의 마을로 변해버린 것이다. 왜 죽이고 왜 죽어야 하는지 죽고 죽이는 당사자들조차 확실히 모른 채 살육이 벌어진 것이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이전에 한국문학은 좌익 활동가, 특히 빨치산 활동을 한 사람의 모양을 그리는 일이 꽤 난처한 숙제였다. 그것은 국가로부터 창작의 자유를 제약 받는 금기의 소재라 걸핏하면 반공법,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에 가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송기원의 『월행』은 단 한 글자도 이데올로기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으면서 그것을 전면적으로 다룬다. 놀랍다.

 '월행(月行)'이라는 말은 달밤에 걷는 것을 뜻한다. 어느 달밤에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자식으로 보이는 꼬마를 업고 논길을 걸어간다. 겨울이어서 사각사각 살얼음 밟는 소리가 들린다. 밤공기가 차니까 아이가 보챈다. "아직 멀었어?" 아버지는 "조금만 참아. 저기 마을보이지?" 하고 달랜다. 그렇게 밤길을 걷고 걸어서 마침내 어느 집 앞에 도착하자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자식이 무슨 죄라고 바깥에서 떨게 하느냐?" 그랬을 것이다. 대화 내용을 보면 혼내는 목소리는 할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는 많이 잘못한 사람이다. 할아버지가 마침내 복장을 챙겨 입고 나오면서 "따라오너라" 하여 아들(아이의 아버지)을 데리고 또 걷게 된다. 이번에는 산턱에 있는 묘소에 당도한다. 할아버지가 말한다. "절해라. 너 때문에 명대로 못살았다." 아들이 "아이고 아이고 ……." 운다. 어머니 묘소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월행』은 좌익 활동을 해서 가족을 몰살당하게 한 사내가 나중에 주위의 이목을 피해서 몰래 성묘하고 가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인간사의 쓰라림, 삶의 실패와 세상의 매정함, 꿈과 좌절의 뒤끝이 범벅이 되어서 어느 비애에 젖은 달밤의 풍경을 낳으니, 이게 바로 '달이 가는 길' 같은 '월행'이다. 이 소설은 어떤 형상화를 통해서 단지 바깥 모양만 드러내는 게 아니라 아주 깊은 사유의 형태를 전달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형상적 사유가 전해지는 것이다. 1

 

 

 

 

 

 

 


송기원(宋基元.1947.7.1∼ ) :

 소설가ㆍ시인.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 출생. 부모님의 이혼으로 개가한 어머니를 따라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한 방황으로 고등학교 때는 퇴학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재학 중인 1963년 고려대학교 주최 전국고교생 백일장에서 시 <꽃밭>이 당선되었다. 1966년 서라벌예술대학 주최로 열린 백일장에서 시가 당선되어, 장학생 혜택을 받아 1968년 동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되었다.

 1967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시 <불면의 밤에>와 196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후반기의 노래>(가작)가 당선되었다. 1970년 월남전에 자원했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나트랑 수송병원에서 지내다가 귀국하였다. 197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회복기의 노래>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경외성서(經外聖書)>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1974년 '문학인 101인 시국선언'을, 1975년 대학에서 '대학인의 선언'을 발표했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고, 1982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어 다음해 시집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를 출간하였다. 1985년 무크지 [민중교육]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으나 이듬해 석방되었다.

 장편소설 <여자에 관한 명상>(1996)은 자전적 성장소설로, 1994년 출간한 <나에게 오라>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1997년 8개월간의 인도 및 미얀야 여행을 한 뒤로 불교에 심취하여 불교의 계를 받았으며, 1997년 이후 계룡산 암자의 토굴에서 집필에 전념한 적이 있다. 이외의 작품에는 <월행(月行)>(1979), <다시 월문리에서>(1984), <인도로 간 예수>(1995), <사람의 향기>(2003) 등이 있으며, 옥중의 체험과 뒷골목 기행을 그린 시집 <마음속 붉은 꽃잎>(1990)이 있다. 1983년 제2회 [신동엽창작기금]을 받았으며, 1993년 <아름다운 얼굴>로 제24회 [동인문학상]과 2001년 제9회 [오영수문학상]을 받았다.

 

 

 

 

  1. 김형수 저.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182쪽에서 옮김.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