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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박완서 장편 소설『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by 언덕에서 2015. 10. 15.

 

 

 

박완서 장편 소설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박완서(朴婉緖, 1931∼2011)의 장편소설로 1989년 발표되었다. 1990년 초 베스트셀러였던 이 작품은 한국 페미니즘 소설의 시발점이자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소설을 분석할 때 작가의 초기 작품의 경향으로 돌아가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소설집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건 대단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한 평범한 여자가 꿈을 못 버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꿈을 창출해 내는 게 어찌 여자들만의 일이겠습니까. 인간의 운명이지요."

 이 말에서 우리는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무너지는 꿈, 무너져도 되살아나는 꿈의 이야기를 그리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리얼리티를 결하고 있고, 사랑과 성을 별개로 보는 데서 생기는 '성 혐오증을 역력히 드러내고 있어, 꽉 막힌 페미니즘 소설의 대표적인 예라는 지적도 받았다. 

 

 

 

MBC 드라마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2003년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교사인 35세의 차문경은 외도한 남편의 요구로 이혼한다. 이후 부인과 사별하고 어린 딸과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대학 동창 김혁주와 결혼을 전제로 만난다. 두 사람은 결혼을 목전에 두고 동침하지만, 서로 다른 가치관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첫 번째 결혼의 실패가 자신의 탓이라는 말을 주위에서 들어 온 문경은 혁주의 가치관에 자신을 맞추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혁주는 어머니에게 문경과 만나고 있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 채, 좋은 혼처를 골라 주는 어머니 황 여사의 권유대로 초혼에 경제력까지 있는 여자, 애숙과 결혼한다.

 한편, 혁주의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문경은 혁주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만, 이로 인해 애숙과 파혼하게 될까 봐 불안해진 혁주는 황 여사와 함께 문경에게 아이를 지우거나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말하라고 다그친다. 시달린 문경은 배 속의 아이가 혁주의 아이가 아니라고 한다. 문경은 혼자 힘으로 아이를 키우겠다고 결심하지만 싱글맘은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을 돌봐 주는 놀이방 사업도 싱글맘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을 닫는 등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에 계속 시달린다.

 그러나 혁주의 결혼 생활은 승승장구이다. 애숙은 사업 수완이 좋으면서도 남편에게 공을 돌리는 것에 능숙했다. 그런 애숙 덕분에 혁주는 사장이 되고, 애숙은 딸을 낳는다. 계속될 것 같았던 혁주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애숙이 자궁 수술을 함으로써 더 이상 임신을 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먹구름이 드리워졌기 때문이다. 대를 이을 아들을 바라는 황 여사와 혁주는 예전에 자신들이 부정했던 문경과 아이를 떠올린다.

 황 여사와 혁주는 문경과 그녀의 아들 문혁을 찾아내어 입적시키게 해달라고 사정한다. 문경은 아이가 사생아로 자라는 것이 편견이 가득한 이 사회에서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에 결국 문혁을 혁주의 호적에 입적시킨다. 그러나 혁주와 황 여사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문경에게서 아이를 빼앗기 위해 문경을 고소하기에 이른다. 결국 문경은 예전에 혁주가 자신에게 보냈던, 문혁이 자신의 아이임을 부정했던 증거인 편지를 재판정에 제출하고, 혁주는 고소를 취하한다.

 

MBC 드라마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2003년 제작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는 차문경이라는 35세의 독신녀, 결혼에 한 번 실패한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은 보통 여자가 가지고 있는 평범한 꿈(가정, 자식, 남편의 사랑 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같은 나이의 독신 남자인 혁주를 사랑하게 되고 그의 아이까지 갖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결혼하지 못한 채 파경에 이른다. 이런 차문경의 꿈에 대한 좌초는 자식을 통한 모성애로 극복되지만 자식을 뺏어가려는 혁주의 소송으로 꿈이 다시 깨진다.

 이 소설은 결혼이라는 제도와 사회적 통념 속에서 약자가 되어야만 하는 여자, 그것도 싱글맘의 이야기이다. 비극일 수 있는 소재를 박완서 특유의 수다스러움으로 포장한 냉정한 현실 직시의 리얼리즘은 오히려 현실적인만큼 도발적이다. 개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선택인 결혼을 이야기하면서 사회 기저에 짙게 깔려 있는 남성 우월 풍토를 아무렇지도 않게 건드린다. 아직도 남아 있는 남아 선호 풍조와 이로 인해 피해자라 주장하면서 스스로 가해자가 되어 가는 여자들의 모습을 고발한다. 그 생생하고도 적나라하게 조명하는 솜씨에서 중년 여인 특유의 삶에 대한 관록이 돋보인다. 작가의 리얼리즘적 도발성의 백미는, 가해자에 대한 고발이나 비난에 집중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여성 자신이 바로 서는데 집중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1989년에 씌어진 작품으로, 남성 우월 사회의 편견에 맞서 개인의 존엄성과 권리를 지키려는 한 여성의 이야기로 볼 수 있다. 편견의 높은 벽에 노출되어 있는 싱글맘이, 폭력적인 인습의 굴레를 벗어나 사회적 자립을 이루는 모습의 시종을 특유의 이야기스런 분위기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에 대한 결함을 지적하는 반페미니스트적인 시선 또한 만만찮았다. 여자들의 일반적 의식구조를 묘사함에 있어서 지나치게 지엽적인 면으로만 흘러 작가의 인식의 폭이 제한적인 부분이다. 남성과 여성의 사랑행위나 성적결합의 메커니즘에 대한 기술 역시 독자의 상상력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법으로만 일관해 감동의 폭을 줄이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자식을 둘러싸고 남자와 여자 사이에 벌이는 밀고 당기는 식의 삼류 드라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차문경의 어정쩡한 성의식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적어도 35세의 젊고 학식 있는 여교사가 성행위를 오로지 남성에게 바치는 희생 의식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남녀를 불문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다. 성행위를 마치 그것으로 남자를 옭아매어 소유하기 위한 필요악적 수단 정도로만 여기는 여주인공의 의식구조 역시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여자는 성욕이 없고 남자만 성욕을 갖고 있다고 보는 스토리 전개 역시 객관성이 부족하다.  자유주의자인 마광수 교수는 이 소설의 내용을 여러 지면을 통해 비판했는데 중요 내용은 다음과 같고 평가는 독자의 몫이다.  

 「임신의 문제도 그렇다. 만약 여주인공이 성에 있어 보수적인 정조를 지키려고 하는 여자였다면,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관계를 가져서는 안 됐을 것이다. 마지못해 그랬다 해도 피임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의 여주인공은 피동적인 자세로만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남자를 법적으로 묶어두려 하고 있다.

 말하자면 성행위와 그것에 부수되는 임신을 오로지 결혼을 위한 '미끼'로 사용했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미성년자도 아니고 결혼생활을 통한 섹스 경험까지 있는 여자가 피임에 대한 사전 준비도 없이 섹스를 했고, 또 나중에 중절수술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 마광수 저 <유쾌한 소설 읽기> 2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