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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동인 단편소설 『붉은 산』

by 언덕에서 2015. 8. 6.

 

 

 

김동인 단편소설 붉은 산

 

 

 

김동인(金東仁.1900∼1951)의 단편소설로 1932년 [삼천리]에 발표되었다. 한국 단편소설의 선구자 김동인의 '어떤 의사의 수기'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단편소설 『붉은 산』은 비도덕적이고 몰염치한 인물인 '삵'까지도 숭고한 민족정신을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특히, 그가 죽어 가면서 '붉은 산'과 '흰 옷'이 보고 싶다는 말을 남기는 대목은 주제를 극명히 제시한다.

 이 작품은 부제에 제시된 것처럼 어떤 의사의 목격담을 적은 짤막한 소품이다. 작중 화자인 ‘나(조선인 의사)’가 목격하게 된 사건은 크게 두 가지인데, 그 사건은 한참 뒤에 가서 구체적으로 소개되고, 작품의 서두로부터 꽤 많은 부분은 주인공 ‘삵(익호)’의 인간 됨됨이와 그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태도를 서술하는 데 할애되고 있다. 김동인의 다른 소설 <감자>에서도 볼 수 있는 돌발적이고 충격적인 사건 제시 방법으로 주제를 부각시키는 수법을 보여 준다.

 작중 등장인물로 죽어가면서 '붉은 산'과 '흰 옷'을 그리워하는 '삵'의 모습은 김동인 자신의 민족의식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여'가 그들의 삶에 조금도 개입함이 없어 철저한 관찰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다소 피상적인 민족주의적 단면을 드러내는 한계를 안고 있기도 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서 만주로 들어가 조선인(한국사람)만이 모여 살면서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한 마을에 이른다. 그 마을에는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삵`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조선 청년 정익호가 있다. '삯'은 동리에서 깡패로 소문난 사람으로 동리 사람들의 미움과 저주를 아랑곳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1년이나 보낸다.

 그는 괴팍하고 간교할 뿐만 아니라 생김새나 행동거지가 모두 사람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고 미움을 사도록 한다. 그가 하는 일은 투전이 일쑤며, 싸움, 트집, 칼부림, 색시에게 겁탈하기 등 온갖 못된 짓 을 다한다. 이런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실현시키지 못한다. 그러던 중 이 동네 주민인 송 첨지가 그 해의 소작료를 나귀에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부당하게 폭행을 당하여 죽는다. 분개한 주민 모두가 원수를 갚자고 흥분하나 막상 지주와 맞서려는 사람은 없다.

 이런 이야기를 삵이 듣고는 얼굴에 비장한 기운이 서린다. 다음날 아침, 그는 동구 밖의 밭고랑에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단신으로 못된 만주인 지주의 집에 가서 송 첨지를 죽인 분풀이를 하려다 오히려 집단 구타를 당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불러주는 애국가를 들으며 그는 죽어간다.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한국 이주민들이 살고 있는 민주의 어느 농촌이고, 시간적 배경은 일제 식민지 시대이다. 뿌리를 뽑힌 이주민, 혹은 유랑민들은 당시 우리 민족이 처해 있었던 불행한 현실을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여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익호’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그들의 삶의 일부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정익호라는 인물의 됨됨이는 그의 용모에 대한 묘사에서부터 언행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데, 종합적으로 보면 그는 불량배이며 파렴치한이다. 이러한 인물평이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뜻밖의 충격적인 사건을 준비하기 위한 또는 마지막 사건을 보다 인상적으로 만들기 위한 작가의 장치로 보인다.

 인간다운 점이란 약에 쓸래야 찾아볼 수 없는 ‘삵’이 아무도 엄두를 못내는 일을 해냈다는 뜻밖의 사건 속에 이 작품의 주제가 들어 있다. 송 영감이 만주인 지주에게 죽음을 당한 보복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앞에 나서는 사람이 없을 때 ‘삵’은 혼자서 그 보복을 시도하다가 죽음을 당한다.

 

 

 가장 교활하며 파렴치한 인간 ‘삵’에게도 마지막 한 가지 순수함은 간직되어 있었다. 그것은 이역 땅에서 함께 불행하게 살아가는 동족에게서 느끼는 동류의식이며, 떠나온 조국 산하에 대한 애정과 향수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송 영감의 죽음을 보복하려고 한 것은 이런 동족애의 발로이며, 그가 붉은 산을 보고 싶다고 한 것은 조국에 대한 사랑과 향수 때문일 것이다. 제목 『붉은 산』은 흰옷과 함께 조국애, 향수를 상징하는 이 작품의 정신적 배경이자 주제를 담고 있는 제재이기도 하다.

 이 작품도 김동인의 민족주의적 의식에 바탕을 두고 쓰인 작품으로서, 수기 형식 또는 액자 구성을 취함으로써 사실감을 더해 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낭만주의적 · 예술지상주의적 · 유미주의적 · 자연주의적인 김동인의 작품세계에서 매우 이채로운 작품이다. 환경결정론에 입각한 인물의 행동양식을 보여주는 김동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이 작품 속의 인물들은 환경에 굴복하지 않으려 한다. 송 첨지와 삵의 죽음은 억압받는 우리 민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민족적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다. 주인공 정익호는 마음속으로만 비분강개하는 우리 민족의 무력함을 깨뜨리고 만주인에게 복수를 시도하다 만주인(중국인) 지주에게 죽임을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