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회남 단편소설 『소』
안회남1(安懷南, 1909∼?)의 단편소설로 1945년 [조광]지에 발표되었다. 일제 징용에 끌려가 탄광에서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던 체험을 소설화한 작품으로, 순박한 한 농민이 당하는 고난과 그에 따른 의식, 그리고 해방 후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작가 안회남은 <금수회의록>의 작가 안국선의 아들이다. 안회남이 1947년 겨울에서 1948년 남한 단독 정부가 들어서기 전의 어느 시기에 월북함으로써 그와 그의 작품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월북한 사실과 그의 작품 경향 사이에 뚜렷한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 속에 주로 드러난 것은 사상성이 아니라, 8ㆍ15의 체험을 가식 없이 잘 살려 낸 소설적 성과가 높은 작품들이었다. 안회남의 작품은 해방 전후의 모습 속에서 일제의 착취와 핍박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폐병과 싸우며 집필을 계속한 김유정은 죽기 십여일 전, 문우에게 편지를 써 탐정소설을 번역해 보낼 테니 돈을 좀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닭 삼십 마리를 고아 먹고, 살모사와 구렁이를 십여 마리 달여 먹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문우가 이 소설의 작가 안회남이다. 쓰고 싶은 것이 많았던 청년 작가의 생에의 갈구는 처절했지만 안회남으로부터 답장을 받기도 전에 김유정은 세상을 떠났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작년 9월 26일 충청남도 연기군에서 북구주 입천 탄광으로 134 명이 징용되어 갔고, 그 중에는 별명이 ‘소’인 삼룡이도 있었다. 그에게 ‘소’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그의 얼굴 생김새와 태도가 소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룡이는 동료들이 소라고 부르면 성을 내며 야단을 치곤 했다.
나는 그가 소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소가 공출되면서 갖게 된 미신 때문이라는 것을 그로부터 듣게 되었다. 그는 갱내에 들어갈 때마다 도수장(屠獸場)에 죽으러 들어가는 소처럼 무서워했다. 그런 그의 행동은 나에게 더욱 소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내가 연기대 대장으로 사무실에 들어앉게 되었을 때 삼룡이는 나에게 자기를 굴에서 구원해 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소 이야기를 나에게 해 주었다.
자기가 탄광에 오기 한 달 전에 이사장(理事長)의 소 대신 자신의 소가 식용으로 공출되었고, 자신은 한 달 후 탄광으로 징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소가 그렇게 죽었듯이 자신도 여기서 죽게 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과 소가 공동 운명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소'라고 부르면 그 운명을 거부하기 위해 화를 내는 것이다. 자신이 소라고 불리면 곧 자신도 자신의 소처럼 죽을 운명에 놓이기 때문에 그는 그 연계성을 거부했다.
그러다 갱내에서 낙반 사고가 났고, 제천 사는 박이동은 죽고, 같이 일하던 삼룡이는 기적적으로 살아나온 사건이 일어났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소가 자기 대신에 죽어서 자신은 죽지 않은 것이라는 믿음으로 열심히 살았고, 징용에 끌려온 지 1년만인 9월 26일 고향으로 돌아왔다.
나는 삼룡이의 초대로 그의 집을 방문해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삼룡이를 만났다. 나는 즐겁게 잘 놀고 나오는 길에 빈 외양간을 발견했다. 나는 소가 없는 빈 외양간을 쳐다보며 죽은 박이동을 떠올렸다. 다시 옆을 바라보며 삼룡이는 역시 소라고 고쳐 생각하고 나왔다. 산모퉁이까지 배웅 나온 삼룡이는 ‘이사장의 소를 끌고 와야지’라며 험악한 낯빛으로 내 생각과는 딴판인 말을 하였다.
‘소'가 갖는 상징적 의미는 농경 문화권에서는 농사와 관련되고, 주술적으로는 악귀를 물리치고, 불교에서는 참마음을 뜻한다. 이러한 복합적 의미를 가진 ’소‘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삼은 것은 삼룡이란 인물이 농민이란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일 것이다.
‘소’라는 제목에서 우리는 농사를 떠올린다. 그리고 삼룡이라는 약간 촌스러운 이름에서 토속적인 시골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 삼룡이의 별명이 소라고 한다면, 그의 성격이 착하고 심성이 고운 인물이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런데 농촌에 있어야 할 삼룡이가 고향을 떠나 북구주 입촌 탄광으로 끌려왔다. 우리 농촌 어디에 가든 만나볼 수 있는 성격의 농부가 광부가 되었다는 사실부터 일제의 강제성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이사장네 소 대신에 공출된 자신의 소는 삼룡이의 운명과 처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여기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의 심정이 죽으러 이 탄광에 끌려온 것이고, 그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긴장, 억울함, 고향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이 뒤범벅이 된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농민을 대표한 인물이 삼룡이다.
죽음의 공간에서 살아난 삼룡이는 다시 기력을 되찾는다. 삼룡이는 소가 자신의 액운을 가지고 죽어서 자신은 죽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삼룡이의 집을 방문한 나는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을 보고 흐뭇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소가 없는 빈 외양간을 보고 낙반 사고 때 죽은 박이동을 생각한다. 그러나 삼룡이는 자신의 소를 찾아오라며 이사장의 소를 벼른다. 이것은 이미 삼룡이가 과거의 순박하기만 했던 한 농부가 아니라 징용으로 성격이 변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일제의 착취와 핍박이 순박한 농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죽음의 고통 속에서 돌아온 삼룡이는 순박하고 착하기만 한 성격을 훼손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세력이 일제만이 아니라 조선의 권력층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1945년 [조광]지에 발표된 이 작품은 작가의 징용 체험을 소설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제의 악랄한 징용이 순박하고 착하기만 한 우리 농민을 얼마나 현실적이고 증오에 찬 인물로 바꾸어 낳았는지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
1년간 일제 징용에 끌려가 탄광에서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던 안회남은 징용의 체험을 담은 10여 편의 중ㆍ단편을 발표하였다. 그는 자신이 이 계열의 작업을 서둘러 마무리하려 했다면서 그 이유를 징용을 체험한 인물들이 귀국 후 ‘새로운 현실에 부딪쳐 급속히 변모’해 가는 상황에서 과거의 모습을 오래 반추할 겨를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과거의 기록과 오늘의 이야기를 나누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일본 대기업인 미쓰비시(三菱) 머티리얼이 2차 대전 기간 중 이 회사 공장에서 강제 노역한 중국인 노동자와 그 유가족에게 공식 사과하고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미쓰비시의 그러한 결정은 중국 내에서 일제의 강제 징용 관련 소송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만큼 미리 사과하고 보상하는 것이 중국 내 기업 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독일 기업들은 2차 대전 후 나치 피해 보상 기금 등에 거액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전범(戰犯) 기업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가혹한 노동을 강제했던 일본 기업들이 50년 전 청구권협정 얘기만 하면서 한국인 피해자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글로벌 기업에 요구되는 역사적·도덕적 책무를 회피하는 것이어서 분노를 일으킨다.
- 본명은 필승(必承).〈금수회의록〉을 쓴 안국선(安國善)의 외아들로 태어나 수송보통학교를 마치고 1924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부친이 죽자 1927년 학교를 그만두고 〈개벽〉에 입사해 약 10년간 창작활동에 전념했다. 〈개벽〉이 폐간된 뒤 〈제일선〉에 관여하기도 했으나 1935년 이 잡지마저 폐간되자 상사회사에서 잠시 일했다.1944년 9월 징용으로 일본 규슈[九州] 탄광에서 일했다. 본래 프롤레타리아 문학 작가는 아니었으나 해방 뒤 조선문학가동맹 간부들이 지명수배를 받자 월북했다. 임화·이원조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으며 임화가 숙청될 때 곤욕을 치르다 주체사상이 확립되기 한 해 전인 1966년 '사상검토회'에서 숙청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는 소설의 목표는 인생의 단면을 묘사하는 데 있다고 했다. 일생을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연애와 결혼이라고 제기한 〈본격소설론-진실감과 통속성에 관한 제언〉(조선일보, 1937. 2. 16~20)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소설 〈그날밤에 생긴 일〉(조광, 1938. 4)을 발표하면서 조금씩 변화했는데, 이때부터 현실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일제강점기에 좌절한 지식인의 이야기를 다룬 〈병원〉(인문평론, 1940. 8)을 발표했다. [본문으로]
- 김유정(金裕貞, 1908년 2월 12일 ~ 1937년 3월 29일)은 일제 강점기의 소설가이다. 강원도 춘천 출생이며 1937년 3월 29일 폐결핵으로 요절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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