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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서기원 단편소설 『암사지도(暗射地圖)』

by 언덕에서 2015. 8. 27.

 

 

 

 

서기원 단편소설 『암사지도1(暗射地圖)』

 

 

 

 

 

 

 

소설가·언론인 서기원(徐基源. 1930∼2005)의 단편소설로 1956년 [현대문학] 11월호로 추천이 완료되어 저자가 문단에 등단하게 된 작품이다. 작가의 전반기 작품들이 가지는 작가 의식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전쟁으로 기존의 질서는 무너지고, 폐허가 된 땅 위에서 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생명 자체가 가지는 희망을 작품 전말의 줄거리로 삼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전후의 폐허와 가치의 혼돈을 그리면서도 나름대로 희미한 윤리의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 작품은 1950년대의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여 삶의 훼손상이 규범과는 무관하게 나타나는 현실에서 도덕적 논리와 삶의 논리가 어긋난 극심한 갈등을 주제로 다루었다. 두 남성의 황폐화된 도덕의식은 1950년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결말에서 이 작품은 여성의 단호한 결심을 통하여 도덕적 회복을 보여준다. 

 한편, 이 이야기의 우의적 의미를 본다면 두 동강이 난 한국의 역사적 아픔을 간접적으로 상징하는 의미심장한 뜻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은 1950년대 한국문학을 대표하며 그 시대의 삶과 역사적 의미가 투시된 의미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미대생인 형남과 법대생인 상덕은 전쟁 때 피를 나눈 전우였다. 상덕이 먼저 제대하고, 뒤이어 형남이 제대하여 그들은 또 길거리에서 우연하게 만나게 되었다. 형남은 당시 의지할 곳도 마땅치 않고 해서 상덕의 권유에 따라 그의 집에 기거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집에는 이미 윤주라는 여자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상덕이 극장에서 만난 여자로 어떻게 하다 보니 아주 상덕과 살게 되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이 세 사람 사이의 묘한 관계는 벌어진다.

 무직자로 지내던 형남이 극장의 광고판을 그리는 직업을 갖게 되어 밥값이나마 보태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엔 공교롭게도 상덕이 그가 강사로 다니던 학관이 폐쇄됨에 따라 직장을 잃고 집에서 놀게 되었다. 상덕은 그 후로, 벌이는 아예 형남에게 떠맡기고 바둑으로 소일하며 술주정을 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이런 상덕을 윤주는 대놓고 나무라지는 못하였으나 점차 싸늘한 태도로 대했다. 상덕에 대한 윤주의 이러한 조심스러운 태도의 변화로 형남은 그녀에 대해 막연하게 육욕을 가진다. 이러한 형남의 심경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상덕은 형남에게 둘이서 윤주를 공유하자고 제안했다(Threesome). 형남은 처음엔 깜짝 놀라며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펄쩍 뛰었으나,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바라던 바였음을 생각한다.

 다음 일요일 날 상덕이 집을 비운 사이에 그는 윤주를 찾아갔다. 그러나 윤주에게 거부를 당하고 말았다. 방 안에서 나오면서 그는 어떤 원망스러운 감정을 느끼기보다도 윤주에 대한 이미지가 새로이 환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을 시험해 보려 한 상덕에 이겼다는 느낌도 가진다.

 다음 날, 상덕이 돌아와 간밤의 사정을 전해 듣고 윤주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그는 형남이 곧 자신이기 때문에 형남을 거부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형남은 이러한 그의 논리가 위장된 것이라고 느꼈다. 그것은 어쩌면 형남 자신을 비꼬는 우월감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고서는 형남의 심정은 더욱 윤주에게 쏠리는 것이었다. 그 후 상덕은 형남에게 의도적인 허세를 취하곤 했다. 윤주는 또한 형남에게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세 사람 사이에 미묘한 삼각관계가 형성되었다. 형남은 스스로 당당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는 결국 윤주와 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그를 받아들이는 윤주는 목석 그 자체였다. 그것은 차라리 인형에의 자독2 행위였다.

 그 일이 있은 이후 형남은 그 사실을 상덕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반대로 상덕은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형남은 자신이 혼란 속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세 사람의 남녀가 벌이는 기괴한 살림살이었다. 그는 윤주와 단둘이 이런 괴상한 생활에서 벗어나 따뜻한 가정을 꾸미고 싶어졌다. 그는 그 뒤 윤주의 방을 부단히 들락거리면서 그네의 태도에 변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헛수고일 뿐이었다. 윤주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은 형남 자신이었다.

 일은 엉뚱하게 터지고 말았다. 윤주가 임신을 하고 만 것이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 자연 그 아이를 낳을 것인가, 지울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세 사람은 이를 놓고 심하게 의견의 차이를 보았다. 상덕은 시종 냉소적인 태도였다. 윤주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한다. 윤주가 짐을 꾸려 가지고 나가자 형남은 다급해져서 윤주를 뒤쫓아 나간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상덕의 눈매가 심하게 이지러져 있었다.

 

소설가 ·언론인 서기원( 徐基源.1930∼2005 )

 

 서기원이 20대 때 쓴 이 작품은 한국전쟁 직후의 피폐된 서울을 배경으로 한 여자를 두 남자가 공유하게 되는 상황을 그린 것인데 상당히 아방가르드(전위)적인 작품이라고 연세대 국문학과 마광수 교수는 평하고 있다(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다 :238쪽)

 형남, 상덕, 윤주 이 세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전후의 혼란된 상황, 그 자체의 축소판이다. 전쟁으로 인해 모든 기존의 가치체계는 허물어져 버리고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전후 세대는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 작품은 두 남자가 한 여자를 공유하는 기묘한 생활에서 읽는 이로 하여금 당혹감을 안긴다. 이것이 단순히 기묘한 정도에 그친다면 삼류소설에 그치고 말겠지만, 그 배경과 그 상징성에 눈을 돌려보면 이 작품의 사회적 의미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포탄에 구멍이 뚫린 집'이다. 이것은 한국 전쟁의 상흔을 상징한다.

 

 

 작중 세 사람은 모습 그대로 전후 세대를 표상한다. 그들은 전쟁의 와중에 휩싸여 버렸고,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자들이다. 또한 아버지라는 존재가 없는 집이다. 그것은 전통적 윤리 질서의 단절을 의미하며, 섹스를 공유하는 문제가 여기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윤주의 임신은 우리 민족사의 아픈 현실을 발견하게 해 준다. 누구의 아이인지도 확실치 않은 아이지만, 확실한 것은 윤주가 아이를 가졌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즉, 전쟁의 원인이야 어디에 있었든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전쟁을 치렀고, 그 상처를 어떻게든 치료해야 한다. 우리 앞에 주어진 미래를 그저 과거의 아픔 때문에 내팽개칠 수는 없다. 어렵고 고단한 것이기는 해도 미래를 착실히 가꾸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윤주의 가출 원인은 상덕과 형남 때문만은 아니다. '포탄에 구멍이 뚫린 지붕'이 있는 집에서 정신적으로 포탄에 맞고 바스러져 있는 상덕과 형남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다. 전쟁이 준 외형적 피해와 정신적 외상을 극복하고 열린 세계로 다시 나가려고 하는 몸짓의 상징적 표현이다. 즉, 전쟁이 준 상처에 매몰되지 말고 새로운 지도를 그려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1. 지도나 지리서에 쓰이는 용어로 백지 지도를 의미함. [본문으로]
  2. (自瀆) 〔자독만[-동-]〕「명사」「1」‘수음02(手淫)’을 달리 이르는 말.「2」자기 스스로를 더럽힘.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