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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눈 뜨고도 보지 못하는 것

by 언덕에서 2015. 8. 18.

 

 

 

 

 

눈 뜨고도 보지 못하는 것

 

 

 

 

 

톨스토이의 민화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서 주인공인 바흠은 땅 사들이기에 안달이 난 농부다. 그는 “땅만 많으면 악마도 무섭지 않다”고 서슴없이 외친다. 어느 날 평범한 농부가 손님으로 찾아온다. 이 농부는 볼가 강 건너에 싸고 비옥한 땅이 있다고 알려준다. 농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바흠은 그곳에서 적지 않은 땅을 차지했지만 그의 마음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어느 날 상인 한 사람이 찾아와 훨씬 더 좋은 조건으로 비옥한 땅을 살 수 있는 곳을 알려준다. 이민족 거주지였다. 이 상인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이민족 족장은 바흠에게 ‘하루어치’의 땅을 헐값에 주겠다고 했다. 하루어치란 땅을 살 사람이 새벽부터 해 지기 전까지 하루 종일 걸어서 둘레를 표시한 넓이만큼의 땅이다. 단, 해 지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한 뼘의 땅도 없다. 바흠은 흑토, 목초지, 늪지대, 언덕 등 탐나는 곳들을 눈에 띄는 대로 자기 영토 안에 포함시키고 싶어 욕심껏 달리다가 결국 해 질 무렵 출발점을 코앞에 두고 지칠 대로 지쳐 숨을 거둔다. 그가 죽어서 묻힌 땅은 겨우 두 평 남짓이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섬뜩한 대목은 하루어치의 땅을 차지하러 나가기 전날 밤에 꾼 바흠의 꿈이다. 이민족의 천막에서 잠이 든 바흠은 웃음소리에 눈을 뜬다. 족장이 허리가 부러지라 웃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그는 이민족에 대해 알려준 상인처럼 보였다. 눈을 씻고 다시 보니 그는 볼가 강 건너편의 비옥한 옥토에 대해 들려준 농부였다. 깜짝 놀라 다시 보니 발톱이 길고 뿔이 난 악마가 킬킬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옆에는 남자 하나가 지쳐 쓰러져 죽어 있었다. 죽은 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바로 바흠 자신이었다.

 이 섬뜩한 꿈 이야기를 통해 톨스토이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라고 말한다. 우리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재앙이 언제나 악마의 얼굴로 달려드는 것은 아니다. 재앙은 다정다감하고 평범한 이웃의 얼굴과 친절하고 달콤한 이야기 속에 몸을 숨기고 살그머니 다가온다. 욕심과 집착, 아집과 오만에 가려지면 우리는 두 눈을 멀쩡하게 뜨고도 보아야 할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 이상수1 지음 『운명 앞에서 주역을 읽다』48 ~49쪽

 

 

  1.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철학과 대학원에서 《주역》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제자백가의 논리철학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겨레에서 18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을 지냈으며, 웅진씽크빅 중국 법인장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시교육청 공보관으로 있다. 노자, 공자, 손자, 장자, 순자, 한비자 등 제자백가의 사상과 철학에 대한 강의와 글쓰기를 하고 있으며, 고전의 현대적인 번역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저서에 《아큐를 위한 변명》 《한비자, 권력의 기술》 《바보새 이야기》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이야기의 숲에서 한비자를 만나다》 《강변대화》 등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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