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슨가젤의 비극
지난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누구는 엉터리 장사꾼에게 도둑맞은 그것을 드디어 찾았다고 기뻐하는가 하면, 독재자의 딸이 권좌에 올랐으니 이 나라 민주주의는 끝났다고 우울해 하는 이도 있었다. 자신이 싫어하는 이가 대통령이 되어 5년 동안 뉴스의 중심에 서는 일은 괴로운 일이다. 두 부류의 의견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며 나 자신을 위로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이 반페미니스트나 보수주의자가 듣기엔 다소 위험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여성이 대통령이 되었기에 우리나라는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패러다임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그것은 발전의 길이라고 나는 우기고 있었다. 대한민국 남자들의 밤은 어둡기 짝이 없고 그들을 사회에서 움직이게끔 묶는 끈은 술이다. 그리하여 낭만은 룸싸롱 등 2차에 있었고 그것은 이른바 연줄인 동시에 그들의 ‘빽’이 되었다. 웃기는 것은 그간 내가 몸 바쳐서 일했던 그 직장 생활이 그랬고 대한민국 직장에서 다른 가장들의 삶의 겉모습은 달라 보였겠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아내는 선거철만 되면 항상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저 쓰레기 같은 작자 중 하나가 국회의원이나 선출직 지방자치단체장이 되겠지? 당선 후에는 언제 굽신거렸느냐는 식으로 어깨에 힘주며 되먹지 못한 진영논리로 싸움질이나 하고 말이야. 당신과 같이 유식하고 똑똑한 사람은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이 ‘있는 둥 없는 둥’ 하고 말이야. 그런데 당신을 향해 '똑똑한 이'라는 말은 이제 취소야. 당신은 제법 유식한 편이지만 대개 무능하잖아.”
내가 답했다.
“아니야, 그건. 내가 무능한 게 아니라 양아치 적이지 못한 거야. 나도 밤새도록 술 마시며 연줄 찾기, 학연 찾기, 지연 찾기, 친구의 권력 가진 지인에게 공들이기를 했으면 벌써 한자리 차지하고 있을지 모르지. 그러나 그렇게 살기는 싫어.”
“그러니까 그게 무능한 게 아니고 뭐야?”
대개의 우리 사회의 비즈니스는 어느 학교 몇 학번, ROTC 몇 기 또는 어느 지역 누구 아들, 어디 모임 이런 식으로 연결되면 만사형통이 된다. 술 진탕 마시고 꼬부라진 혀로 형님, 동생 부른 후 ‘형님, 말을 낮추십시오.’ 이렇게 하고서야 진짜 비즈니스가 시작된다. 남자들만이 만든 고유의 문화. 매일 밤 야근에, 알코올에 찌든 혀가 학연, 지연, 친구의 친구까지 동원하여 이루어 놓은 조직폭력배 같은 세계가 그것이다. 그렇게 세력을 구축한 조직원들은 선량한 시민들을 짓밟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 '밤의 세계'가 없는 여성이 국가의 지도자가 되면 ‘한국병’이라고 할 수 있는 위의 병폐를 끝낼 수 있다는 그야말로 되지도 않은 기대를 나는 펴기 시작한 것이다. 하하, 물론 뻥으로 한 말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기대할 것을 기대해야지.
어느 소설에서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만날 사자한테 잡아먹히는 톰슨가젤.’이 등장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게 직장에서의 내 모습이기도 했다. 20년 가까이 다닌 그 직장에서는 한순간도 행복하지 못했다. 내가 직장이라는 조직 속에서 존재하면서 옆 동료에게 어쩌다 살짝 내비친 고충 한마디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 내게 비수가 되어 돌아오곤 했다. 단지 내가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짓밟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 나를 톰슨가젤화 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음은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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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초원에서 허구한 날 사자한테 잡아먹히는 영양 또는 톰슨가젤. 그게 한국에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월급쟁이의 모습인지 모른다. 그들 중 대부분은 직장에서 한순간도 행복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IMF를 겪으며 평생직장이라는 단어는 사라져 버렸고 사십 대가 되면 불시에 회사로부터 쫓겨나가는 일이 당연한 것으로 되어버렸다. 언제는 ‘최고의 ○○맨’이라는 세뇌교육을 하더니 어느 날 표변한 회사의 얼굴을 보며 다들 자조(自嘲)가 넘쳤다. 모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자신이 없었고, 우리와 같은 을(乙)은 근본적으로 갑(甲)의 소작인에 불과했다는 체념이 넘치고 또 흘렀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소비자에게 갑질하는 회사 사주, 불쌍한 감정노동자에게 갑질하는 소비자에 관한 기사가 넘친다. 회사원에게 갑질하는 이는 경영진이다. 그들도 어차피 같은 신세가 됨이 분명함에도 자신은 예외적으로 영구히 존재하리라 믿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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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기업이라는 그 회사에 입사하고 난 후 나의 직장 운이라는 것은 무슨 소설 속의 이야기처럼 기구하기 짝이 없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그룹인력관리위원회’라는 곳에 입사원서를 넣고 필기시험에 합격한 후 면접시험을 보았다. 몇십 대 일의 경쟁을 뚫은 합격통지서를 받은 후 두 달 가까운 기간 동안 산속에 있는 연수원이라는 곳에 갇혀 신입사원 입문교육이라는 것을 받고 배치받은 회사는 포크레인을 만드는 회사였다. 그곳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지 3년 후, 노사분규가 잦았던 회사는 돌연 스웨덴 국적의 회사에 팔려버렸다. 그 회사는 아버지에게 금수저를 물려받아 회장이 된 셋째 아들의 관심 밖에 있었다는 소문을 들었을 뿐이다.
애국심이 넘칠 나이였고 한국 회사에 다니고 싶어 같은 그룹의 무역회사로 옮겼다. 그 회사를 5년째 다니고 있을 때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곳도 구조 조정을 했다. 톰슨가젤이 된 것이다. 덩치가 커진 그룹 내 제조회사들이 종합상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해외영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많은 동료가 옷을 벗었고 일부는 같은 계열의 관계사로 쫓겨났다.
하늘이 무너져도 쏟아날 구멍이 있다고 어찌어찌해서 새로 생긴 자동차 회사로 옮길 수 있었다. 맨땅에서 땅 파기 시작하더니 공장이 지어졌고 드디어 자동차를 찍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5년 동안 코피 흘리며 일하다가 좀 견딜 만한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IMF라는 괴물이 닥쳐서 회사는 문을 닫아버렸다(이후 정권이 바뀐 후 회사는 프랑스계 자동차 회사에 0원에 팔렸다). 톰슨가젤은 난생처음 빨간 띠를 이마에 두르고 영하의 서울역 광장에서 한 달 동안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노동가를 불렀다. 어제까지 부하였던 직원이 상사에게 대드는 하극상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 회사가 망해버린 후 갈 곳을 찾다 어떻게 하다 보니 같은 계열의 금융회사로 옮겼는데 여기서도 5년 후에 ‘카드대란’이라는 것이 일어났고 또 구조조정이 일어났다. 당연히 그 회사 차원에서는 내가 ‘굴러 들어온 돌’이었으므로 또다시 톰슨가젤이 되었던 셈이다. 그렇게 해서 대학 졸업 후 뼈를 묻겠다고 맹세했던 아무개 그룹이라는 직장과 결별해야만 했다.
그 회사에 20년 가까이 다녔다고 했는데 톰슨가젤은 아침마다 서너 개비씩 연달아 줄담배를 피우며 출근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까 늘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사원 때 부서에 노조 배후자로 지칭되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와 말을 자주 섞었다는 이유로 상사에게 찍히기 시작했다. 이후 간부가 되자 아랫사람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또 찍혔더랬다. 퇴근한 부하 직원이 음주운전 하여 사람을 치어 즉사시킨 사건이 그것인데 안 되는 놈 앞에서는 안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았다. 퇴근해서 내 눈앞에 보이지 않은 놈을 무슨 방법으로 관리한단 말인가. 직장이라고 하는 조직 속에 몸을 넣으면 인간성이고 존엄이고 뭐고 간에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모두가 장식품 같은 거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된다. 망한 회사에 들러 인사를 한 후 그 그룹에서의 마지막 직장인 그놈의 금융회사에 발을 디딘 날이었다. 그 회사 ○○지점이라는 곳에서였다. 오십 줄은 되어 보이는 지점장이라는 깍두기 머리를 한 작자가 이렇게 말했다.
“뭐하려고 왔어요? 우리 얼마 전에 구조조정을 했어요. 동료들 집으로 보내고 피눈물 흘리며 살아남았는데 낯짝도 두껍네. 당신 철면피요?”
같은 종살이를 하는 처지에 유세(有勢)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소문을 들으니 깍두기 머리는 회의 중 말대꾸했다는 이유로 부하 직원에게 유리 재떨이를 집어 던진 모양이었다. 맞은 젊은 직원은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나보다 한 달 먼저 자리를 옮긴 경우인데 얼굴을 네댓 바늘이나 기웠다고 했다. 깍두기 머리는 직원들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해서 실적을 올리기로 악명 높았지만, 사장의 사랑을 듬뿍 받는 이라고 모두 말했다. 개같은 그놈과 싸우다 1년을 보내고 나머지 4년은 감정노동자인 여성 상담원 몇백 명 달래는 콜센터 운영하다가 또 다시 구조조정을 맞고야 말았다. 남 달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달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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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가 이성을 인간만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전유물로 인식했다는 것은 커다란 오판이 아닌가 한다. 내가 판단하기엔 인간이란 존재는 이성을 갖고 있지 않다. 이기심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데카르트의 오판은 그 뒤 몇 세기에 걸쳐 인간을 '가장 오만방자한 동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어쨌든 그가 인간의 타고난 양심을 인정한 것은 인간 세상의 실제적 양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과연 양심을 가진 인간이 전체에서 얼마나 되는가? 인간 세상은 동물의 세상과 마찬가지로 약육강식으로 점철되는 아비규환의 지옥과도 같은 승자독식, 적자생존, 자연도태 등의 원칙이 적용된다. 인간과 동물은 다른 점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원 그러니까 대리에서 과장으로 진급할 때의 일이다. 과장이 된 사람들은 용인에 있는 연수원에 모두 집합하여, 한 달 동안 꼼짝 못 하게 갇혀서 교육을 받는다.
첫날 강사는 이름만 대면 모두 알 수 있는 대학교수로 ‘구름에 달 가듯이’ 시인의 아드님이었다. 쇳소리 나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처음에는 잔잔히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고함치듯 내지르는 강의 방식이 특이했다. 그가 자기소개한 후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는 교육생들을 둘러보더니 한마디 툭 던졌다.
“그런데 과장님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오신다고 얼마나 많은 동료를 짓밟았습니까!"
갑자기 모두 충격받은 모습이 되어버렸다. 다들 자신이 똑똑해서 진급했지 누군가를 짓밟은 결과로 그날의 자리에 왔다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사의 말이 옳다는 것은 숨 한 번 쉴 시간이면 깨닫게 될 터였다. 똑똑하고 멍청한 것, 유능하고 무능한 것, 성실함과 나태함. 이런 것들의 차이는 도저히 객관화하고 계수화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것들이다. 단지 운이 나빴다든지, 줄을 잘못 서서 또는 재수가 없어서, 혼자 어찌해 볼 수 없는 별 볼 일 없는 부서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짓밟혔고, 짓밟은 이들은 그들의 덕을 보았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결과론적으로 누군가를 짓밟아야만 살 수 있는 구조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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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온통 악으로 뭉쳐 있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내가 살려면 남을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더 따져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악’이 아니라 자연계의 법칙(약육강식)이다. 휴머니즘 ․ 낭만주의 ․ 이성 중심주의 ․ 이데아 ․ 양심의 존재에 대한 믿음, 이런 것들은 모두 다 헛된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가끔 떠오르는 잊지 못할 얼굴이 있다. 더럽고 아니꼬워서 사표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회사를 나오는 순간이었다. 부서장 서무를 보던 여직원에게 ‘이제 잘 있으라’는 말을 건네자 그 애가 나를 쳐다보며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부장이 짤렸다더라.' 며칠 전부터 돌던 소문이 현실화된 것을 확인들 했는지 휘하의 여직원들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게 중에서 우는 처자들도 몇 있었고, 십 년이 가까워지는 기억이지만 아직도 그 눈물들 때문에 그 직장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긍정적으로 기억한다. 내가 길거리 보도블록처럼 흔한 인재였는지 재수 없는 회사를 돌아다닌 업보인지는 신만이 알 것이다. 다달이 월급 받는 것만이 중요했던 20년, 어떤 조직의 부속품이 되어서 그 톱니바퀴가 되어버렸다. 그 톱니바퀴가 어디에 끼어 있고 이 원이 어떻게 굴러가고 이 큰 수레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그런 것을 알았더라면 달랐을 것이라고 혹자는 말했다. 20년이란 기간 동안 그것을 알고 싶지 않았고 알았어도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양이 아무리 변신을 위해 노력한다 해도 호랑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톰슨가젤은 그냥 톰슨가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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