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긴야 역사 저서『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ハーメルンの笛吹き男)』
일본 사학자 아베 긴야(阿部謹也, 1935~ )1 의 역사 저서로 1974년 일본 [평범사]에서, 1988년 치쿠마(ちくま)문고에서 출간되었다. 괴팅겐의 주립문서관에서 발견한‘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전설’을 다룬 문서를 바탕으로 그 전설 너머에 감춰진 중세 사람들의 삶을 탐색해나가고 있는 책이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전설은 1284년 6월 26일에 독일의 작은 도시 하멜른에서 실제로 일어난 어린이들의 실종 사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전설은 픽션도 따르기 힘든 박력 때문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 깊이 새겨졌고 전 독일, 나아가 전 세계로 전해져 현재에 이르렀다.
13-14세기 경 하멜른의 아이들이 한 나그네를 따라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 이야기는 그림 형제의<독일 설화집>에도 기록되어 있는 유명한 전설이다. 극적 독백과 탁월한 심리 묘사로 잘 알려져 있던 낭만주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2은 1842년 이 전설을 어린이들을 위한 303행의 시로 발표하기도 했다.
사건이 일어난 당시부터 그 전모가 수수께끼였던 이 전설을 해명하기 위해 지금까지 여러 나라에서 오랫동안 연구가 계속되어왔으나 아직까지도 그 수수께끼는 해명되지 않았다. 저자는 우선 거의 400년에 걸친 연구사에서 제시된 수십 가지의 이론들을 종합하여 분석하면서 동시에 중세 하층민 어린이들과 피리 부는 사나이가 어떤 존재였는지, 전설은 어떻게 해서 현재의 형태를 띠게 되었는지를 밝혀가고 있다.
전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독일의 아름다운 도시 하멜른. 지금으로부터 약 700년 전 하멜른 시민들은 쥐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었다. 쥐들은 아기를 물어뜯고, 음식을 갉아먹고, 신사들의 모자에 둥지를 트는가 하면 찍찍 끽끽 소리로 마을 여자들의 수다까지 방해할 정도였다. 시민들은 시청으로 쫓아가 소리치며 항의해 보지만 늙고 피둥피둥 살찐 시장과 시의원들은 나 몰라라 속수무책으로 앉아만 있다.
그런데 이때 골칫덩이 쥐들을 모두 없애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난다. 바로 희한한 차림에 긴 피리를 든 피리 부는 사나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피리를 불자 큰 쥐, 작은 쥐, 홀쭉한 쥐, 뚱뚱한 쥐, 가족끼리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쥐란 쥐는 죄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쫓아간다. 그러고는 깊디깊은 베저 강3에 빠져 버린다.
그런데 쥐를 없애 주면 큰 돈을 준다던 시장이 발뺌하며 안면을 몰수한다. 화가 난 사나이는 다시 마법의 피리를 분다. 그러자 온 마을에 또닥또닥, 딸깍딸깍, 재잘재잘, 웅성웅성 아이들이 몰려드는 소리가 나더니 마을 아이들이 몽땅 달려 나와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간다. 그리고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 아이들은 모두 산속 동굴로 사라져 버리고 만다.
아직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이 전설은 게르만족의 동부 개척 때 젊은이들이 집단 이주한 사실을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과 1212년 수천 명의 독일 어린이들을 이끌고 어린이 십자군에 참가했던 인물인 니콜라스를 ‘피리 부는 사나이’에 비유했다는 주장, 질병 만연에 의한 어린이 대량 사망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 등 다양한 해석들이 있다. 사실이든 아니든 이 전설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고, 하멜른을 유명한 도시로 만들어 주었다. 하멜른의 역사박물관에는 피리 부는 사나이에 대한 수집품이 전시되어 있고,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과 결혼회관에는 이 전설을 새겨 놓았다. 또한 여름철이면 몇 달 동안이나 관광객을 끌기 위해 이 이야기를 공연하기도 한다.
저자는 16~17세기 이래로 이 전설이 교회나 신학자에 의한 민중 교화 수단으로, 또는 알 수 없는 운명에 휘둘려왔던 독일민족의 과거를 해명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독일 통일운동으로 민중의 힘을 집결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민중정신의 발로로, 때로는 지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신학ㆍ계몽사상ㆍ낭만주의ㆍ역사학 등의 소재가 되어왔다고 결론짓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전설의 이면에 숨겨진 역사의 단편들을 발견해내고 있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전설의 연구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한 저자는 중세 사회에서 외면당하던 존재인 ‘피리 부는 사나이’와 ‘어린이들’에 주목하고 있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유랑예인이라는 천민 신분에 속한다. 근세의 집시족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이들은 일반 시민에게 박해 받았고, 모든 불행한 사건의 책임을 전가시키는 대상이기도 했다. 하멜른의 어린이 실종사건이 일어난 13세기 말은 유랑 악사에게 가장 험난한 시대였고, 사회적 지위도 가장 낮을 때였다. 생활고에 신음하고 차별받는 도시의 하층민이나 그 자식들과 공통된 관련성을 가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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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유랑 악사로 나타났던 ‘피리 부는 사나이’의 이미지는 시대에 따라, 또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16세기의 종교 개혁 시기에 이르자 피리 부는 사나이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켜 새로운 종교의 권위를 세우려 한 신학자들에 의해 ‘마술사’ 또는 ‘악마’로 규정된다. 이에 반발하여 서민들은 권력사회에 배반당한 ‘쥐 사냥꾼’의 이미지를 피리 부는 사나이 전설에 결합시켜 자신들의 분노와 절망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게 되면 ‘피리 부는 사나이’는 700년 전의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하나의 보통명사로서 선도자ㆍ유혹자의 상징으로 남게 된다.
힘겨운 사회적, 자연적 환경 속에서 아무런 보호도 없이 내던져진 중세의 어린이들은 그런 삶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게 되면 때로 ‘망아의 세계’로 도피해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기도 했다. ‘어린이 십자군4’과 '에르푸트르의 어린이 무도행진5'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들이 돌발적인 사태에 빠질 위험성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요한 연구 끝에 저자가 찾으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베 긴야가 '피리 부는 사나이' 전설에서 발견해낸 것은 다름 아닌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중세 하층민의 고통과 설움이다. 전설의 변모 과정에는 차별 받는 천민신분인 피리 부는 사나이를 자신들의 동료로 여기고, 배반당한 쥐 사냥꾼에게 자신의 처지를 투영한다. 자신은 지금의 생활에 절망했지만 아이들은 아름다운 장밋빛 미래의 나라에서 살 수 있기를 꿈꾸었던 가난한 부모들이 있었다. 그런 꿈이 만들어지는 세상이 존재하는 한, 이 전설은 사람들의 가슴 깊은 곳에 살아 숨 쉴 것이다. 또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차별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계속되는 한, ‘피리 부는 사나이’는 어느 시대에도 모습을 드러낼 것이 아닌가.
- 아베 긴야(阿部謹也)는 서양 중세사를 주로 연구하며 그에 관련된 다양한 저서들을 출간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1935년 도쿄에서 태어나 히토쓰바시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사회학연구과를 수료했다. 히토쓰바시 대학 학장을 역임했으며 서양 중세사중에서도 특히 독일 중세사에 정통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저서로는 『중세유럽산책』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중세를 여행하는 사람들』(한길사)을 비롯하여, 『독일 중세 후기의 세계』 『형리의 사회사: 중세 유럽의 서민생활』 『중세의 창으로부터』 『중세의 별 아래에서』 『역사와 서술: 사회사에의 길』 『중세천민의 우주: 유럽 원점으로의 여행』 『사회사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본문으로]
-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 1812년 ~ 1889년)은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이다. 바이런, 셀리의 영향을 받아 시인이 되었다. 알프레드 테니슨과 더불어 빅토리아 왕조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인간의 모든 강렬한 정열을 힘차게, 그리고 극적으로 노래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깊이 생각해야 하고 또 어려웠기 때문에 그 가치는 그가 죽은 후에야 인정받게 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남과 여》, 《등장 인물》, 《반지와 책》 등이 있다. 그의 아내인 영국의 시인 엘리자베스 브라우닝과 부부의 사랑을 노래한 아름다운 시를 써서 유명하다. [본문으로]
- 옛 서독 지역 내에서만 흐르는 주요강으로, 두 원류인 풀다 강과 베라 강이 뮌덴 시 부근에서 합류하여 베저 강이 되며, 북해까지 북쪽으로 440㎞를 흐른다.주요지류로는 알러·레줌·게스테·디멜·오흐툼·훈테 강 등이 있다. [본문으로]
- 1212년경 성지탈환을 위해 프랑스와 독일의 소년, 소녀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십자군으로 알려져 있어 '소년십자군', '어린이십자군' 등으로 불린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이름처럼 나이 어린 소년, 소녀들로만 구성된 무리는 아니었다. 참가자들은 귀족이나 왕, 성직자가 아닌 무장하지 않은 평민들이었고 이들 중 상당수는 중세 때의 잦은 전쟁과 영주의 횡포로 토지를 잃거나 떠돌아다녔던 빈자들이었다. 이들의 행렬은 조직화된 군대라기보다는 장기간 벌어진 무력 전쟁으로 인해 가난해진 평민들의 불만이 표츌된 재앙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이 시기에 일어난 민중봉기와 사람들 사이에 번졌던 과도한 종교적 광기와 당대 사건 등이 뒤섞이면서 소년십자군은 하나의 전설 혹은 사실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네이버 지식백과] 소년십자군 [Children's Crusade, 少年十字軍] (두산백과) [본문으로]
- 1237년 하멜론과 가까운 에르브르트에서는 1,000명의 어린이들이 14km나 떨어진 아른슈타트까지 '신의 사도가 되리라'는 구호를 외치며 걸어가다가 피로에 지쳐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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