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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철학서

자본주의는 애초 틀린 것일까? 『도덕감정론』

by 언덕에서 2015. 7. 15.

 

 

 

 

자본주의는 애초 틀린 것일까? 『도덕감정론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Adam Smith.1723.6.16∼1790.7.17) . 그의 '보이지 않는 손'은 경제학을 배울 때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개념이다. 시장 시스템으로 일컬어지는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자원이 효율적으로 생산되고 분배된다. 이러한 스미스의 설명에 대해 찬반이 엇갈렸다. 케인즈주의나 맑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스미스식의 자유주의 경제학을 반대한 대표적인 예였다. 특히 금융화된 세계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순환 주기가 짧아지며 스미스를 거부하는 흐름이 드셌다. 소비에트 붕괴로 마르크스가 유령이 되었듯, 21세기에 연달아 발생한 금융공황은 스미스를 무덤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2개의 저서 중 하나인 『도덕감정론』을 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스미스는 일방적으로 시장의 자율성을 옹호하지 않았다. 단, 시장이 형성되기까지의 전제가 충실히 형성되었다는 조건이 붙는다. 스미스는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가 성립할 수 있는 근거를 설명한다. 결국, 자본주의도 인간이 만든 체제다. 그간 스미스의 『국부론』을 통해 자본주의의 물적 측면을 봤다면 『도덕감정론』은 자본주의의 정신적 측면을 조명한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한 나라의 경제가 발전하기 위한 수많은 이론과 정책들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정작 자본주의 자체의 철학적 원리는 <국부론>이 아니라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의 마력을 전제로 시장제일주의를 내세우는 기업가들이나 그 옹호론자들이 스미스를 찬양 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 입장에 서있는 ‘진보’진영의 학자들까지도 스미스를 재평가하고 있다. 그가 이기심과 경쟁을 미화하기 이전에 사람들 사이의 협력과 공감을 더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순히 자본주의 체제가 성립하기 위한 전제나 작동 원리에 대한 설명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를 이뤄 살아가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가득하다. 저자는 인간사회의 관계의 근본을 이루는 동감의 원리, 관용과 자기억제의 사회적 가치 등에 대한 철학적 설명 등으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한다.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시대, '보이지 않는 손'의 창안자로 알려진 아담 스미스는 정작 자신의 묘비명을 "<도덕감정론>의 저자, 여기 잠들다"로 하길 원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자본주의 체제의 정신적, 도덕적 측면을 새삼 돌아보게 하는 고전이다.

 

 

 

개인적 삶에서이건 공영적 활동에서이건 간에 인간 감정능력의 발휘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또 한 사람의 근대인이 잘 알려진 것처럼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다. 그가 <국부론>보다 훨씬 먼저 써낸 책이 감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도덕감정론>이다. 그가 감정에 주목한 것은 인간의 이성적 합리적 판단에서 감정이 수행하는 역할과 비중이 아주 크다는 관찰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감정은 흔히 공적 판단에서 배제되고 있지만, 사실 감정은 도덕적 판단을 자극하고 유도함으로써 그 판단행위에 깊게 개입한다. 이것이 ‘도덕감정’이다. 경제활동이 개인들의 자유로운 선택, 판단, 결정에 맡겼을 때에만 경제는 가장 자연스럽게, 가장 잘 발전한다는 것이 후일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전개한 자유시장경제론의 핵심 주장이다. 그러나 자유시장경제의 부패 가능성을 일찌감치 경고한 것도 스미스다.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탐욕, 독점, 오만 같은 부도덕한 이익추구에 몰입할 때 시장경제는 타락한다는 것이 그의 경고 내용이다. 자유로운 이익추구와 탐욕은 서로 다른 것이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그의 시장경제론보다는 훨씬 깊은 인간학과 문명론을 담고 있다. 스미스에 따르면 인간사에는 ‘사물의 자연적 진행’과 ‘인간의 자연적 감정’이라는 서로 다른 두 차원의 자연이 개입한다. 사물의 자연적 진행은 사물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알고 이 지식을 (스미스의 ‘지식’은 요즘 말로 ‘과학적 지식’에 가깝다) 합리적으로 운영하는 이성, 근면, 분별, 신중함 같은 능력이 발휘되는 차원이다. 또 하나의 다른 자연의 차원은 진실, 정의로움, 공경, 인간애처럼 인간이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자연적 감정’의 차원이다. 스미스는 이 자연적 감정을 동정 또는 동감(sympathy)이라 불렀는데, 그의 동감론은 요즘 말로 표현하면 공감능력 또는 감정이입능력인 ‘엠퍼시’(empathy)와 가깝다. 자연적 감정은 인간의 ‘선’을 지향하고 신뢰하고 지지한다. 자연적 감정은 어떤 사람이 존경할 만한 ‘선한 인간’이고 어떤 사람이 ‘악한 인간’인가를 직관적으로 판별할 수 있게 한다. 자연적 감정은 불의와 불손, 오만과 무자비함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사물의 자연적 진행과 인간의 자연적 감정이 반드시 사이좋은 동행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양자는 같이 가지 않는다. 사물의 자연적 진행은 그 진행에 순응하는 개인은 보상하고 그렇지 못한 개인은 처벌하려고 한다. 반면 인간의 자연적 감정은 사물의 진행방식에 관계없이 진실, 정의, 인간다움을 발휘하는 개인들을 지지하고 존경하며 신뢰한다. 사물의 원리와 도덕적 선의 원리는 자주 충돌한다. 그러나 사회를 지탱하자면 서로 문법이 달라 보이는 그 두 가지 원리의 상호 참조가 필요하다. 좀 투박하게 말하면 그 상호 참조란 이성적인 것과 감정적인 것 사이의 코드 조율과 조화다. 이 조율의 사회적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스미스의 공로다. “사물의 자연적 진행이 인간의 자연적 감정에 충격을 주는 결과들을 산출하고 영리한 계산행위를 도덕적 행위보다 (일방적) 우위에 두려고 할 때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은 거기 개입해서 사태를 교정하려 한다.” “동감에 바탕을 둔 도덕적 행위는 훨씬 더 풍요로운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제공한다.” 말하자면 스미스는 시장경제가 시장원리에만 집착하는 경제중심주의를 넘어 인간의 자연스런 도덕적 감정이 존중되는 사회환경의 조성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에 큰 방점을 찍고 있다.

 

 -- 문학교육이 최고의 인성교육 / 도정일1 <한겨레신문 2014. 12.18>

 

 

 

 

 

 

 아담 스미스의 사상은 근대의 대표적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고전고대의 인문학 소양에 기초를 두었다. 또 H. 그로티우스·T. 흡스·J. 로크·D. 흄·J.J. 루소 등에게 배우면서 <도덕감정론>을 통해 독자적인 '동감이론'을 전개했다.

 즉 어떤 행위나 감정은 그것을 보고 있는 관찰자의 동감을 받음으로써 시인된다는 것이다. 행위자는 관찰자의 동감을 얻고자 하는 본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관찰자로부터 동감을 얻지 못하거나 반감마저 사게 될 행위에 대해서는 미연에 자기규제를 하려 한다. 타인을 침해할 정도의 부정이나 오만이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것은 이와 같은 동감감정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관계가 공평하게 시작된다면 자연히 부정이 자기 규제되고 또 정의(자연법)가 지켜지게 되어 국가적 강제력이 거의 필요 없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자연법학을 전개하려고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법과 통치의 특정한 양식이 역사적으로 확립되어 왔다. 그는 이에 대해서 앞서의 강의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법이 어떻게 개선되어 왔는가를 논했다.

 

 

 오늘날 수많은 부정적인 모습을 노정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를 개선하려고 하건 변혁하려고 하건 간에 우선 먼저 자본주의 체제의 성립 조건과 작동 원리를 최초로 이론화 한 아담 스미스가 생각한 자본주의 체제의 정신적, 도덕적 측면에 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우려 보아야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오늘날 발생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점들의 원인과 그 해결방안까지 찾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도덕감정론』은 단순히 자본주의 체제가 성립하기 위한 전제나 그 작동 원리에 대한 설명에 그치지 않는다. 책 전편에 걸쳐서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그것이다. 인간사회의 모든 관계의 근본을 이루는 동감의 원리, 이기심과 자리(自利)와 자혜(慈惠)의 속성, 개인의 행복과 불행의 원인, 정의와 법과 사회질서의 유지, 관용과 자기억제의 사회적 가치, 기타 도덕철학 등에 대한 알기 쉬운 철학적 설명 등은 무엇보다 우리에게 사회 문제와 인간의 본성, 사회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여 준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 자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전제로 하는 모든 인문학과 종교, 예술, 사회과학, 특히 경제학과 법학 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인류의 『고전 중의 고전』이 바로 이 『도덕감정론』임을 깨닫게 된다.

 뿐만 아니라 『도덕감정론』은 인간을,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책보다 많은 지혜와 깨달음, 재미와 교양, 그리고 무엇보다 훌륭한 품성과 덕성을 갖춘 인간이 되기 위한 고귀한 교훈들을 제공하고 있다. 『국부론』의 저자로 더욱 유명한 아담 스미스 자신도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묘비명을“『도덕감정론』의 저자 여기에 잠들다”라고 해 달라고 유언을 하였는데, 두 가지 저서를 모두 읽어본 독자들은 그의 유언에 공감하게 된다.

 

  1. 도정일(都正一, 1941년 ~ )은 대한민국의 영문학자, 인문학자이자 교수이며 현재 경희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