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수 단편소설 『갯마을』
오영수(吳永壽.1914∼1979)의 단편소설로 1953년 [문예]지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갯마을'이라는 어촌과 바다에 대한 사랑을 지닌 '해순'이라는 여인을 통하여 갯마을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서민적 정취를 담아내고 있다. 짧고 간결한 문체, 서정적 분위기가 돋보인다.
오영수 소설의 특징은 휴머니티의 추구와 서정적 문체에 있다. 그는 각박한 생존 경쟁의 현장으로서의 현실보다는 인간 본연의 순수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에 유달리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살벌한 투쟁이나 갈등보다는 인정과 본성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의 소설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용연삽화>와 같은 작품에서는 신분 때문에 자식을 남에게 빼앗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여인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지만 대체로 오영수의 소설들은 인정과 향토색과 순수한 본성에 초점을 맞추어 사건을 구성해 나가고 있다. 민중판화로 유명한 판화가 오윤1은 소설가 오영수의 아들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동해의 조그만 갯마을에 사는 해순이는 나이 스물셋의 청상과부다. 보자기(해녀)의 딸인 해순이는 '어머니를 따라 바위 그늘과 모래밭에서 바닷바람에 그슬리고 조개껍질을 만지작거리고 갯냄새에 절어서' 성장한 여인이다. 열아홉 살 되던 해 성구에게 시집가자 어머니는 자신의 고향인 제주도로 가 버린다.
그러나 해순이를 아끼던 성구가 칠성네 배를 타고 원양으로 고등어 잡이를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게 되자, 해순이는 물옷을 입고 바다로 나가 시어머니와 시동생을 부양한다. 어느 날 밤 잠결에 상고머리 사내에게 몸을 빼앗긴 해순이는 그것이 상수였음을 알게 된다. 그는 2년 전 상처하고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니다가 그의 이모 집인 후리막에 와서 일을 거들고 있었다. 해순이와 상수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돌고 다시 고등어 철이 와도 칠성네 배는 소식조차 없다. 시어머니는 성구 제사를 지내고 해순이를 상수에게 개가시킨다.
해순이가 떠난 쓸쓸한 갯마을에 고된 보릿고개가 지나고 또다시 고등어 철이 돌아온다. 두 번째 제사를 앞두고 해순이는 시어머니를 찾아온다. 상수가 징용으로 끌려간 뒤 산골에서 견디다 못한 해순이는 훤히 트인 바다를 그리워하던 끝에 매구2혼이 들렸다고 무당굿을 하는 틈을 타 마을을 빠져 도망쳐 온 것이다. 달음산 마루에 초아흐레 달이 걸리고 달그림자를 따라 멸치 떼가 든다. 드물게 보는 멸치 떼였다.
이 작품은 그 배경이나 인물의 세부적 묘사가 뛰어나며, 토속적인 정취를 담뿍 담고 있다. 작품 세계는 토속적인 배경 설정이 특징이다. 오영수의 작품을 읽노라면 항상 푸근한 마음의 고향을 찾은 느낌을 받는다. 「갯마을」은 이러한 오영수 문학의 특징이 잘 드러난 서정적 단편이다. 원초적인 생리의 세계와 자연이 조화된 혹은 장면의 일부로 파악된 인간의 삶을 그는 일종의 운명과 같은 율동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갯마을'은 사회 현실과 두절된 공간이다. 문명이 미치지 않는 갯마을은 해순이의 두 번째 남편(상수)을 앗아간, 징용만 아니라면 시대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초시간적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해순'은 그 이름이 암시하듯이 바다의 여자이고 바다의 일부이다. 그녀는 이 갯마을의 과부들 중에서도 가장 젊은 청상이다. 제주도가 고향인 해녀 출신의 어머니를 둔 그녀는 고등어 배를 타고 나간 남편이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않게 되어 과부가 되었다.
어느 날 그녀는, 상처를 하고 나서 그의 이모 집이 있는 이 갯마을에 와 있던 상수와 함께 갯마을을 떠난다. 그러나 상수가 징용으로 끌려가 버리자 '수수밭에 가면 수숫대가 모두 미역발 같고, 콩밭에 가면 콩밭이 온통 바다만 같고' 해서 죽은 남편의 제삿날 갯마을로 돌아온다.
♣
이 작품의 특징은 서정성에 있다. 이러한 서정성에는 사회적인 문제나 윤리의 문제조차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해순이가 상수와 잠자리를 같이 했을 때 그녀는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상수가 가자고 하니까 산골로 따라갈 뿐이다.
그리고 그녀는 고등어 철이 돌아오는 계절의 순환과 함께 바다로 돌아온다. 자연과 동화된, 혹은 자연의 일부로 파악된 순수한 인간의 원형이다. 작품이 끝나기 직전 대목, 그러니까 산골 생활에 진력이 나서 마구 바닷가로 뛰어가는 그녀를 두고 모두들 미쳤다고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데, 이는 오직 바다만이 그녀의 유일신임을 극명하게 나타낸다.
☞오영수(1914 ~ 1979) : 소설가. 1928년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나니와중학을 수료했다. 1937년 도쿄 국민예술원에 입학했고, 이듬해 졸업한 뒤 귀국했다. 1943년 경남여자고등학교, 부산중학교 교사로 근무했고, 6·25전쟁 때에는 동부전선에서 종군했다. 서민들의 소박한 삶의 애환을 다룬 작품을 주로 썼다. 현실을 바로보지 않고 환상에 사로잡힌 작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1955년 한국문학가협회상, 1977년 대한민국 예술원상과 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1954년 조연현과 <현대문학>을 창간했다. 1949년 <서울신문> 신촌문예에 단편 <남이와 엿장수>가 입선되고 이듬해 단편 <머루>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 뒤 <화산댁>, <갯마을>, <개개비>, <은냇골 이야기>, <잃어버린 도원> 등 단편 100여 편을 발표했다.
영화 ‘갯마을’
남해안의 한 갯마을을 배경으로 섬사람들의 애환을 그린, 1965년작 한국 문예영화.
1965년 한국영화사 제작. 감독 김수용(金洙容). 원작 오영수(吳永壽). 각색 신봉승(辛奉承). 출연 신영균(申榮均)ㆍ고은아(高銀兒)ㆍ황정순(黃貞順).
남해안의 한 갯마을을 배경으로 섬사람들의 애환을 토속성과 서정성 깊게 그린 문예영화(文藝映畵)이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한때 문예영화 붐이 일기도 했다.
제5회 대종상 작품상을 비롯하여 아시아영화제 촬영상, 제1회 에스파냐의 카르타체나 국제해양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남해의 평화로운 어촌에 태풍이 몰아친다. 고기잡이 나간 배들이 풍랑으로 침몰되고 신혼 열흘째인 해순의 남편 성구도 불귀의 객이 된다. 청상과부 해순에게 건달 상수가 접근하는데 해순도 싫지 않다.
두 사람은 갯마을을 떠나 채석장을 거쳐 깊은 산속에 보금자리를 꾸미지만 상수가 바위에서 떨어져 죽는 변을 당한다. 들꽃을 꺾어 상수의 시신을 덮어주고 무덤을 파는 해순. 오영수 원작, 신봉승 각색, 김수용 감독의 영화 <갯마을>(65)의 줄거리다.
<갯마을>은 인간과 자연의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를 순박한 사람들의 얘기로 설명하고 있다. 갯마을로 돌아오는 해순을 통해 자신을 되찾으려는 인간의 본능을 묘사하면서 인간이 자연을 떠나 살 수 없음을 제시하고 있다.
[1972. 7/2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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