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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미륵 장편소설 『압록강은 흐른다』

by 언덕에서 2015. 7. 14.

 

 

이미륵 장편소설 『압록강은 흐른다』

▲ <범우사> 판 1979년 <압록강은 흐른다>, 역자는 전혜린이다.

        

재독작가 이미륵(1899~1950)1이 쓴 장편소설로 1946년 서독 [피퍼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작품을 다 읽은 후 책을 덮었을 때 장편소설이라는 느낌보다는 '수필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이미륵의 작품 『압록강은 흐른다』는 독일 바이에른주와 헤센주 등에서 5종류나 되는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다. 괴테의 시와 진실에서처럼 소년시절 교우관계, 학교생활, 정신적이며 실제적인 관심사들을 서술하면서 자기 자신과 역사적 사건들이 교체되는 가운데 하나의 인간이 완성되는 과정을 묘사한 자전 소설이다. 

 여기에 한국의 윤리나 풍습의 소개를 통해 동양의 전통과 민족성이라는 소재를 일관되게 더하고 있다. 이 소설은 설명이나 과장 묘사를 제거하고 사건 자체의 골격만 서술하는 간결한 문체로 우리의 정신문화를 서구에 전도한 선구적인 작품이다. 그가 죽은 지 2년 후인 1952년 7월 8일자 신문 [플레젠스부르거]지는 그의 작품에 대해 ‘가장 훌륭한 독일어로 쓰여진 책’이라고 그의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체를 격찬하고 있다. 이 작품은 미국, 영국, 캐나다 등지에서 영어로 번역돼 널리 읽히고 있다.

『압록강은 흐른다』는 전혜린 번역본과 정규화2 전 성신여대 교수의 번역본이 있다. 이미륵, 전혜린, 정규화 세 사람은 시대는 다르지만 뮌헨대학에서 공부했다. 먼저 이미륵이 1928년 뮌헨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전혜린은 1959년 이 대학 독문과를 졸업했다. 마지막으로 정규화 교수는 1960-70년대 이 대학에서 공부했다. 세 사람 모두 뮌헨대학으로 묶인 동시에 출생지가 북한이란 공통점이다. 이미륵이 황해도 해주, 전혜린이 평안남도 순천, 정규화가 함경남도 영흥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아들을 낳지 못한 나의 어머니는 대원어머니에게 신탁을 하여 사십구일 동안 부처님의 제자 미륵에게 축원을 드려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게 나의 이름을 미륵이라고 했다.

 지주인 나의 아버지는 나와 사촌형 수암에게 한학을 가르쳤는데 수암은 한학을 배우는 것 보다는 연을 만든다거나, 싸움을 한다거나, 장난치는데 관심이 많아 항상 아버지와 어른들에게 혼이 나거나 매를 맞곤 하였는데 장난에 참여하였던 나도 함께 혼이 났다.

 나에게는 누나가 세 명 있었는데 첫째누나는 시집을 가고 둘째누나는 나와 잘 어울리지 않았으나 셋째누나는 항상 나에게 우화와 동화를 들려주곤 하였다. 여름이면 아이들과 함께 수양산 골짜기의 냇가로 달려가 발가벗고 멱을 감기도 하였으며 저녁이면 남문까지 소풍을 가서 다른 동네 아이들과 여러 가지 놀이를 하고 놀았다.

 이렇게 평화롭기만 하던 마을에 어느 날 일본병정들이 들어와 집안은 수색당하고 공포에 떨게 되고, 농민들은 피투성이가 되게 맞기도 했다.

 신식학교가 들어섰다. 나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신식학교에 입학했다. 지금까지 한학만 했던 나는 신학문이 이해되지 않아 어렵기만 하였다.

 어느 날 옥계천에서 함께 멱을 감고 바둑을 두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학교공부는 전보다 훨씬 어려워져서 나는 항상 한밤중까지 책에 매달려 살았다. 왜냐하면 모든 교과서가 일본말로 바뀌고 조선의 독립시대에 있었던 역사는 모두 삭제되어 우리들은 역사를 다시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많은 친구들이 나의 공부를 위해 도움을 주었으나 이해가 되지 않아 한밤중까지 책을 펴들고 골똘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잠과 씨름해야만 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 이러한 나에게 어머니는 새로운 문화가 나에게 맞지 않아 그렇다며 당분간 송림마을의 돌다리 아저씨집에 가서 쉬면서 생각해 보자고 하였다.

 4년간 열중했던 공부를 재능이 없음에 학교를 그만 둔다는 것이 마음 아팠다. 나는 어머니 결정에 따라 송림마을로 떠나 그곳에서 몸과 마음을 보존하며 한해를 보내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학교에서 배웠던 유럽으로 떠나려고 시도를 하였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서울에 있는 전문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하였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공부하여 나는 서울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고 학교생활을 시작하였다.

 3학년 때 3.1운동이 일어나고 3.1운동에 가담한 나는 쫓기는 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도망쳐야 한다면서 마을 어귀까지 나를 배웅하며 이렇게 말했다.

 " …….너는 내 생애에 있어서 정말 많은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자, 얘야! 이젠 너 혼자서 네 길을 가거라!"

 달빛이 비치는 압록강을 건너고 난 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고국산천을 보기위해 언덕으로 올라가 뒤돌아보니 우리 마을과 꼭 닮은 마을이 보이고 여전히 압록강은 흐르고 있었다.

 상해에서 수개월간을 보내고 여권을 받아 다시 유럽으로 출발하였다. 고향에서 소식이 온 것이 없나하여 날마다 우체국으로 갔는데 매번 빈손으로 돌아왔다.

 벌써 유럽에 도착한지 5개월이 지났지만 고향의 소식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고향에서 첫 소식을 받았다. 지난가을에 어머니가 며칠 앓으시다 돌아가셨다는 큰 누님의 편지였다. 

 수필 냄새가 나는 이 소설에는 다분히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 전편을 통해 서구 문명과의 갈등이 소극적으로나마 제시되고 있지만 신문명에 접해 보지 못하고 성장한 한 여인의 애달픈 일생을 그리면서 한국 고유의 풍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과거 일제 치하라는 역사적인 배경 하에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을 마치 우리가 추억어린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 보듯이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3.1운동에 가담했다가 왜경의 눈을 피해 어머니의 보호로부터 벗어나서 마침내 압록강을 건너 탈출한다. 중국 대륙을 거쳐 외항선을 타고 멀고 먼 유럽으로 건너가는 여행기이기도 하다.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자기의 두 생활권과 성장 과정을 그린 자전적인 이 작품은 장기간의 유럽 생활에도 불구하고 동양의 전통적인 미덕과 한국 사상을 우아한 스타일로 서구 기계주의 문명에 투입시켰다. 동서양의 대면은 작가 이미륵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 본질적이고도 내면적인 대상은 전형적인 동양 철학에 입각한 작가의 특출한 성격에서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동서양의 대면을 자기 자신 속에서 완성해 보려고 시도한 작품이다.

▲독어판 <압록강은 흐른다>

 

 이미륵의 대표작 <압록강은 흐른다>는 유려하고 간결한 독일어로 쓰여 한국의 풍습과 산하와 인정을 서정적인 필치로 그려 1946년 독일 [문인잡지]의 베스트 북으로 뽑히기도 했다. 이 소설이 1946년 뮌헨의 피퍼출판사에서 발간된 후, 독일 각 신문 잡지에서 발췌 연재한 횟수가 27회나 된다. 영국의 하빌 프레스사와 미국의 미시건대학 출판사 등은 영역판을 출간했고, 영국 [더 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신문에 9회에 걸쳐 서평이 실리기도 했다.

 이미륵은 이 소설에 이어 속편 2부 <유럽에서의 상봉>을 내놓았다. 마지막 3부까지 써 놓았다는 소문이 그 당시 있었으나, 확인되지 않다가 그가 죽은 후 23년 만에 그 유고가 발견되었다. 발견된 유작 속편 3부 <독일에서의 생활>의 원고 일부는 뮌헨에서 지냈던 학생시절에 얽힌 이야기들과 독일 인접 국가에 대한 기행문을 담은 짧고 정적인 문체로 그려져 있다.

 

 

 

 그의 문학은 주로 한국을 배경으로 동양문화의 전통과 풍습을 주제로 하였으며, 1946년에는 대표작인 <압록강은 흐른다>가 독일 뮌헨 피퍼출판사에서 발간되어 전후 독일문단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이 소설은 1960년 전혜린에 의하여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그 일부는 독일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지금도 독일학생들에게도 애독되고 있다.

 이미륵은 1947년부터 뮌헨대학교 동양학부 강사로 있다가 1950년 3월 지병인 늑막염으로 고생하다가 뮌헨 교외 ’볼프라츠하우젠‘병원에서 위암으로 사망, 뮌헨교외 ’그레펠핑‘ 공동묘지에 묻혔다. <압록강은 흐른다>의 속편인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가 경북 왜관 분도출판사에서 1982년 출간되었다. 그리고 1974년 서독 에오스출판사가 간행한 중ㆍ단편집 <이야기>와 1982년 한국분도출판사가 출간한 중편집 <압록강에서 이자르강까지>와 1984년 출간된 <이상한 사투리>의 3권의 유고집이 있다. 소설 이외에도 수필을 비롯하여 한국의 역사ㆍ문화ㆍ정치에 관한 여러 편의 글과 <한국어문법>(1927) 등을 남겼다.

 이미륵은 독일에서 독일어로 작품활동을 한 유일한 한국작가이다. 1963년 독립운동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는 해주보통학교를 졸업하던 만 11세 때 어른들의 권유로 6세 연상의 최문호 여사와 결혼해 슬하에 명기, 명주 1남 1녀를 두었으나 현재는 그들의 생애나 생사를 확인할 길이 없다.

 

 

  1. 이미륵은 1899년 황해도 해주 출생으로, 본명은 이의경이다. 해주보통학교 졸업했으며, 1919년 3ㆍ1 운동에 가담했다가,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 상하이를 거쳐 독일로 갔다. 1920년 5월 26일 독일에 도착하여 뷔르츠부르크 대학 및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1928년에는 뮌헨 대학에서 동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과는 상관없이 곧 창작 활동에 열중한 그는 주로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단편과 이야기들을 독일의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하였고, 독일 문단과 독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이미륵은 작가 활동을 하면서도, 1948년부터 뮌헨 대학 동양학부에서 한학과 한국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갑자기 덮친 병마로 1950년 3월 20일 독일 뮌헨 교외의 그래펠핑에서 타계하였다. 저서로 『무던이』,『이야기』,『실종자』,『탈출기』, 『압록강은 흐른다』 등 다수가 있다. [본문으로]
  2. 정규화(1936~ )함경남도 영흥에서 출생해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어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신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이미륵박사 기념사업회 회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독·한 자연주의문학의 비교연구』『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독문학용어사전(공저)』『제외한인 작가연구(공저)』『한국의 독일문학수용 100년(공저)』등이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