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 단편소설 『치숙(痴叔)』
채만식(蔡萬植.1902∼1950)의 단편소설로 1938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풍자 소설이다. 채만식은 일제하의 식민지 우민화 정책이 수행되던 당시 사회 현실에서 파생된 무능한 지식인의 비극을 화자인 조카와 대비시켜 풍자와 해학으로 그려놓고 있다. 조카는 대학까지 졸업했으나 사회주의 운동으로 감옥에 갔다 와서 궁핍한 생활을 하는 아저씨를 비난하고 있다.
내용은 표면적으로는 화자의 이야기가 옳고 아저씨는 죽어 마땅한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인에게 길들여져 있는 화자 자신의 철부지 같은 행동을 조롱하고,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개혁하고자 사회주의 운동을 하고 있는 아저씨를 옹호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일제하 1920∼30년대 사회 현실에서 파생된, 물질주의적인 도시 문화 속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현상을 다루고 있다. 작가만의 소설 기법인 풍자와 해학성이 기초가 된 이 소설은 식민지 시대에 표출된 사회 현실의 모순과 갈등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의 특징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다. 그것은 ‘이데올로기는 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허한 관념(사상)만 가지고는 먹고 사는 문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풍자하고 있다.
이 작품은 칭찬과 비난의 역전 기법이 쓰이고 있다. 자기의 이익과 안일에만 관심이 있는 이지에 밝고 현실 순응적인 나를 통해 본 좌익 지식인 아저씨의 삶을 보여 주면서 '나'의 삶의 방식을 풍자한다. 이렇듯 <치숙>은 풍자문학의 극치를 이룬 작품으로, 그는 이 소설로 인해 당대 제일의 풍자문학가로 이름을 날렸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우리 아저씨는 대학까지 마쳤으나 무위도식하는 실업자다. 아저씨는 공부한답시고 돌아다니다 첩을 얻어 딴 살림을 차린다. 집안은 아주머니가 온갖 궂은일을 하여 겨우 살림을 해 나간다. 그런 아주머니를 아저씨는 친정으로 쫓아버렸다.
아주머니는 일곱 살에 부모를 잃은 나를 데려다 키운다. 아주머니 덕에 나는 보통학교에도 다녔다. 그 후 아저씨는 사상범이라는 죄명으로 감옥에 붙들려 가서 5년 동안 옥살이를 한다. 그 사이 아주머니의 시집과 친정이 모두 망해서 의지할 데가 없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아주머니는 남편이라고 아저씨의 옥바라지를 위해 서울로 올라온다. 보기에 딱한 나는 아주머니에게 개가하라고 여러 차례 권하였으나, 아주머니는 끝끝내 거절한다.
아주머니는 구라다상네 집에서 일년 동안 식모로 있으면서 열심히 일해 월급을 모아 저축한다. 그 돈으로 집을 장만하고 출옥한 남편을 맞이하여 살림을 한다. 출옥하는 날, 남편이 애지중지하던 첩년은 오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불철주야 할 일, 못할 일을 하며 아저씨 뒷바라지를 한다. 그런데도 아저씨는 사회주의운동이나 할 생각하며 아주머니를 고생만 시킨다.
나는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부자의 것을 빼앗을 궁리만 하는 사회주의자들은 틀림없이 불한당패라고 생각한다. 나는 열심히 일해서 내지인 규수한테 장가도 들고, 천석꾼이 될 계획을 한다. 대학까지 나와 막벌이 노동밖에 할 수 없는 아저씨는 보통학교 4년 겨우 다니고서도 앞길이 훤히 트인 나만 못하다. 아주머니의 은공도 모르고,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아저씨가 밉살스럽기만 하다.
나는 아저씨가 쓴 경제란 글을 보고, 사회주의에 반박하고 나섰다. 돈 모아서 부자 되는 것이 경제가 아니냐고 하니까 아저씨는 그것은 이재학(理財學)이지 경제학이 아니라고 한다. 나는 그러면 부자의 돈을 빼앗아 쓰는 사회주의를 공부한 아저씨는 대학을 잘못 다녔다고 공박했다. 나는 논쟁을 얼버무리려는 아저씨는 손톱만큼도 쓸모가 없으니,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글의 표면에서 일본인 밑에서 만족을 느끼며 사는 한 소년의 입을 빌려 무능한 지식인 아저씨의 비극이 조롱되고, 그 이면에서 그 아저씨가 가진 사상의 실천적 삶이 옹호되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두 인물은 나름대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 아저씨는 현실을 추악하게 보고 개인적 파멸을 감수하면서 현실에 대항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조카인 나는 현실을 아름답게 보고 만족하며 사는 인물이다. 시대 상황에 대한 유식층과 무식층의 반응을 표현했다. 작품에서 `칭찬-비난의 역전`의 형태로 작가는 `나`의 생활 방식을 칭찬하고 아저씨의 비현실적인 사고방식을 비난하고 있지만, 그 심층적인 의미에서는 `나`의 생활 방식을 은근히 비판하면서 아저씨의 입장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가 사회주의자인 아저씨를 적극적으로 긍정하지 않은 점은 동반작가1의 세계관적 한계로 보인다는 비판을 받았다. 현실적인 생활관을 터득하지 못하는 인텔리의 생리가 오히려 이데올로기마저 무능하게 만든다는 역설적인 논리가 이 작품에서는 성립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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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일제 강점기에서의 민족적 비극이 당연한 것이라는 표현에서 현실과 타협해 사는 당대 일상인의 삶의 실제를 엿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일제에 의한 지배구조에 맞싸우는 노력이 참으로 값진 것이라는 진실을 알려주는 역논리기법이 발휘되어 있다. <레디메이드 인생>과 더불어, 지식인을 대상으로 삼은 채만식 풍자문학의 대표작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 후에 채만식은 일제에 순응하는 친일분자가 되고, 해방 후에 일제 말기의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민족의 죄인>([백민].1948)을 발표했다.
- 조직적인 프로문학운동에 원칙적으로 찬동하기는 하나, 그들의 문학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는 않는, 자유주의적 성향을 띤 작가들을 일컫는다. 우리 나라의 경우, 1921년경부터 부여된 명칭이며, 카프에 의해 정식으로 동반자 작가로 인정된 작가로는 유진오ㆍ이효석ㆍ이무영ㆍ채만식ㆍ유치진ㆍ박화성 등이 있다. 이들은 카프에 맹원은 아니었으나, 초기 작품 경향은 카프의 주장과 일치하고 있었다. 1931년 이후는 의미가 상실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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