귄지예 중편소설 『행복한 재앙』
권지예(1960~)의 중편소설로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폭소(2003년 문학동네)>에 들어 있는 7편의 중·단편소설 중의 하나다. 해당 단편집은 우리가 살면서 부닥치는 먹고 사는 문제와 그에 부차적으로 발생하는 성(性)을 다루고 있다. 작가가 소설집<폭소>에서 강조하려는 것은 삶을 훼손시키는 무자비한 폭력과 그로 인해 무고한 인간이 겪게 되는 불공정하고 불가항력적인 고통이다. 그것은 자신의 잘못이나 책임이 아닌 불행과 고통까지도 인간이 책임져야 하는가에 대한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성(性)이라는 은밀한 부분을 담담한 성찰의 단어로 빚어내어 우리의 일상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이 작품 『행복한 재앙』에서 작가는 “나이롱(Nylon) 인생”을 예찬한다. “나이롱”은 순수하지 못하다는 개념과 엄청 질기다는 특성을 동시에 지닌다. 합성섬유이기 때문에 인공적이고 비본질적이다. 반면에 강도나 내구력에 있어서는 어느 섬유보다 으뜸이다. 여기서 우리네 인생과의 교집합이 일어난다. 어차피 인생이 우리를 순수하게 남겨두지 않는다면 제대로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험한 시간들을 끈질기게 견뎌내는 것이 삶에 대한 복수일 수 있다. 복수를 통해 인간은 악해지기도 하지만 강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보험으로 일어나는 웃지 못할 희극을 그리고 있다. 우리가 누군가의 꼬임에 빠져 또는 재난을 대비하여 뭔가 비빌 언덕을 찾아 가입하는 보험. 그것은 혜택일까? 보험회사는 보험 들 때 애초의 약속대로 보험금을 내어줄까? 보다 많은 보험금을 위해서 지금도 사람들은 병원에 모여 있다. 그러나 모두가 나이롱 환자들 뿐이다. 의사도, 간호사도, 사무장도, 환자도 모두가 나이롱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나이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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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교통사고를 당해 개인병원에 장기입원 중인 번역가 지영의 눈에 비친 입원실 여러 환자들의 삶은 그 자체가 “나이롱”이다. 입원한 환자들은 보험회사 몰래 낮에는 병원에 누워 있다가 저녁을 먹고 나면 퇴근하는 이상한 입원 환자들이다. 이들은 보험회사로부터 더 많은 보험금과 보상금을 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나이롱”환자다. 병원은 힘든 수술은 마다한 채 간단한 물리치료와 입원비로 돈을 챙기려는 사무장이 의사를 고용해서 운영하는 “나이롱‘ 병원이다. 보험회사는 어떤 이유룰 대서라도 환자의 과실을 부풀려 보험금을 적게 지불하기 위해 환자를 ”나이롱’으로 만들려 한다.
이들은 늦은 저녁에는 가끔씩 한자리에 모여 병실에서 소주 파티를 열며 서로를 응원하면서 동정을 살피기도 한다.
중풍으로 쓰러진 남편 시중을 들면서 이혼한 딸과 그 손녀딸까지 부양해야 하는 촉새 할머니에게 보상금은 도난당한 손녀딸의 컴퓨터를 다시 장만해주기 위해 필요하다.
아내와 별거 중인 유부남과 불륜 비슷하게 그리고 구차하게 사귀고 있지만 제대로 엄마 노릇을 하지 못하는 것이 걸리는 화옥은 합의금을 타면 아들의 통장에 그 돈을 넣어주려 한다.
온갖 병원 일에 참견을 다하고 돌아다니면서 화분에 주려고 쓰다 남은 링거액까지 모으는 짱뚱이 아줌마는 보험을 네 개나 들어놓아서 교통사고 때문에 오히려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
부동산 소개업을 하는 정숙은 노동운동을 하다가 제적당한 후 노동자 출신의 남편과 결혼했지만 가정을 돌보지 않는 남편 때문에 입원 중 불륜을 저지르다가 남편에게 걸려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흠씬 매를 맞는다.
서른다섯 살밖에 안되었는데도 고3짜리 아들이 있는 꺽다리 순임은 작년에 재가한 서른한 살짜리 연하의 남편 몰래 도박을 하다가 빚을 진다. 그래서 교통사고 보상금으로 그 빚을 갚으려 했지만 몸에 진짜로 심각한 마비증세가 와서 병원과 보험회사로부터 모두 찬밥 신세가 된다. 몸이 마비되어 성(性)에 무지한 연하 남편에게 섹스의 기쁨을 줄 수 없게 되면 마침내 이혼 당하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
이들보다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좀더 나을 것 같던 불문학 박사이자 번역가인 주인공 지영도 남편 아닌 남자를 깊은 밤 환자들 모두가 퇴근하여 아무도 없는 병원 병실로 불러들여 짙은 정사(情事)를 가진다.
입원한 이들 모두가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순면이나 순모처럼 천연스럽게 살 수 없음을 알려준다. 브로커의 중재로 보험회사와 합의를 이루어 지영이 퇴원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이 소설에서 작가가 나타내는 위악2의 건전함과 진지함은 소설의 비극적 아이러니로서 고조된다. 삶의 허방을 짚은 사람들의 처절하게 살아가는 방식이 바로 "나이롱"으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 허락하지 않는 선을 그나마 덜 훼손시키는 것이 위악이 아닌가? 이런 점에서 위악은 악보다 순수하면서 강하다.
그것은 실제 삶 속에서는 절대적 선이 낭만이나 환상, 꿈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순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차라리 강하다. 그래서 위악은 현실적이기도 하고 윤리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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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작가는 삶의 비극성을, 그래서 불행하다는 식의 가치판단과 결부시키지 않는다. <행복한 재앙>이라는 이 중편소설의 제목은 어떠한가. 한 정형외과 병원입원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떠들썩하면서도 쓸쓸하고, 살벌하면서도 코믹하다. 이 부조리한 화면을 채우는 모든 이들은 교통사고 보험금이라는 파이를 더 많이 가져가려고 전투를 벌이는 “나이롱 인간”들이다. 합의금을 높이기 위해 ‘뻗치기’를 하는 “나이롱” 환자들과 회진 한번 안 돌고 두루마리 휴지 끊듯 진단서를 끊어주는 “나이롱”의사, 치료비 챙기기에 급급한 병원 사무장과 변호사 브로커, 병실을 기습 방문해 빈 침상의 사진을 찍어가는 보험회사 직원까지 모든 사람은 얄팍한 이익을 챙기기 위해 속고 속인다. 이 가운데 환자들을 “나이롱”처럼 질기게 만드는 건 모진 삶이다. 작가는 누가 이들의 강퍅한 인생 한가운데 돌을 던질 것인가라고 질문한다.
“퇴원을 하여 거리로 나서며 그들은 햇빛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고 순간이나마 행복해할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은 잠시, 다시 끊임없이 고통스럽고 남루한 일상에 치를 떨며 살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견디며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바로 산 자들에게 주어진 행복한 재앙이 아닐까.”- < 218쪽>
- 1960년 경주 출생. 향리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학령기에 서울에 정착. 숙명여고와 이화여대 문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국립 파리 7대학에서 7년간의 연구 끝에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단편 「꿈꾸는 마리오네뜨」로 문단에 데뷔, 귀국 후 창작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기 시작했다. 「뱀장어 스튜」로 2002년 26회 이상문학상 대상, 2005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저서로는 소설집 『꿈꾸는 마리오네뜨』, 『폭소』, 『꽃게무덤』, 『퍼즐』, 그림소설집 『사랑하거나 미치거나』, 『서른일곱에 별이 된 남자-반 고흐』, 장편소설 『아름다운 지옥 1, 2』, 『붉은 비단보』, 산문집 『권지예의 빠리, 빠리, 빠리』, 『해피홀릭』등이 있다. [본문으로]
- 일부러 악한 체함. 반의어 위선 1 (僞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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