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엘리엇 장편소설 『사일러스 마너(Silas Marner)』
영국 소설가 조지 엘리엇(George Eliot.1819∼1880)이 1861년 발표한 장편소설로 18세기 후반~19세기 초의 영국 농촌을 배경으로 직조공 사일러스 마너가 겪는 우여곡절을 그린 소설이다.
엘리엇은 영국 워릭 주의 외딴 시골에서 태어났다. 엄격한 복음주의 종교적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두터운 신앙과 금욕주의적인 생활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폭넓은 독서와 환경 결정론자이며 교회 회의론자인 찰스 브레이와의 만남으로 후에는 신앙 자체를 잃고 교회에도 나가지 않았다. 이후 철학자이며 비평가인 헨리 루이스와 만나면서 엘리옷은 사랑을 찾게 되고, 소설 창작도 하게 되었다. 별거 상태에 있으나 법적 이혼이 불가능한 아내를 두고 있던 루이스와 ‘진정한 결합’에 의한 동거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78년 루이스의 죽음으로 그녀는 실의에 빠져 소설 창작도 중단했다. 1880년 20년 연하인 존 크로스와 결혼하지만 반 년 후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녀의 작품은 영국 소설사에서 내면세계로의 전환을 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의 특징은 소설 속의 사건들이 인물의 내면생활에서 유래하고, 등장인물들의 특성이 대화를 통해 드러난다는 점이다. 또한, 탁월한 인물 성격 묘사, 흥미와 긴장을 유발하는 이야기의 짜임새, 빈번한 유머의 사용, 도덕적 주제의 전달도 엘리엇 소설의 중요 특성들이다.
엘리옷은 19세기 여류소설가들 중에서 ‘병적일 만큼 지적인’ 지식이 풍부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또한 유부남과의 불법적인 동거생활과 20년 연하 남성과의 결혼으로 당시 사회에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사회적 인습이나 타인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의사대로 독자적 삶을 살다 간 여성이었다.
엘리옷의 소설 속에서 죄를 짓고 벌받지 않는 사람은 없는데, 이 작품에도 작가의 도덕주의적이며 사회개선주의자의 일면이 잘 나타난다. 이 소설은 주인공 마너의 삶을 통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개인의 생활을 만인의 행복을 위한 보다 넓은 생활 속에 융합시키는 것이라는 작가의 기본 사상을 전해주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세기초 영국 중부의 라벨로라는 마을에 '사일러스 마너'라는 한 직조공이 살고 있었다. 그는 15년 전 고향에서 친구와 약혼녀의 배신으로 도둑질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 따라서, 인간은 물론 신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상실해 버린 채 오로지 옷감을 짜서 생기는 돈을 모으는 낙으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와보니, 애지중지 모아두었던 돈이 몽땅 없어진다. 범인은 이 마을의 상류가정인 카스 가(家)의 차남 던스탄이었다. 이 사건 이후 마너의 모습은 영영 보이지 않게 되었다.
라벨로 마을의 상류사회는 목사와 의사, 세 지주인 카스, 오즈굿, 람메터 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카스 가의 장남 고드프리는 착하지만, 의지가 약한 성품으로 천박한 여인 몰리의 유혹에 넘어가 비밀 결혼을 하여 딸까지 두었다. 고드프리는 몰리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람메터 가의 딸 낸시를 사랑하고 있다.
카스 가에서 망년회가 있던 날 밤, 딸을 데리고 그 집으로 가던 몰리는 눈 위에 쓰러져 동사(凍死)한다. 그녀의 딸은 직조공 마너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따라 집으로 들어가 난로 앞에서 잠이 든다. 마너는 이 아이를 에피라 이름 붙이고 잃어버린 돈 대신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 생각하며 정성껏 기른다.
몰리의 죽음으로 고드프리는 낸시와 결혼하여 행복한 생활을 하지만, 아이가 없어 고민한다.
16년 후 마너에게서 없어졌던 돈과 던스탄의 유골이 마너의 집 앞에서 발견된다. 이 일을 계기로 고드프리는 아내에게 몰리와의 과거를 고백하고, 그를 용서한 낸시는 에피를 데려다 기르기로 결정, 마너의 집으로 데리러 간다. 그러나 에피는 지금까지 길러준 마너를 친아버지로 여긴다면서 고드프리의 청을 거절한다. 그리고는 에어론이라는 동네 청년과 결혼하여 마너와 함께 산다.
때는 19세기 초 영국. 발전하는 산업도시와 조용한 농촌 사회가 공존하는 시대였다. 영국 중부 공업도시 랜턴야드 에 사는 직조공 사일러스 마너는 친구 윌리엄 데인의 배반으로 교회 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그곳을 떠났다. 작은 농촌 마을 래블로로 이주한 마너는 휴일도 없이 아마포를 짜면서 15년 간 고립된 생활을 한다. 그의 유일한 위안은 아마포 짜기로 벌어들인 금화를 혼자 밤마다 세어 보는 일이다. 이렇듯 외롭게 살던 그에게 큰 변화가 일어난다. 그가 아끼던 금화를 도난당하고, 느닷없는 일 때문에 에피를 양녀로 맡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금화 대신 금발의 어린아이를 받아들여 아버지 노릇을 하게 되면서 행복을 되찾는다. 그는 에피를 통해 이웃들, 즉 래블로 마을 공동체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 및 공동체와 관계를 회복하는 셈이다.
한편 마을의 지주의 아들 고드프리는 술집 여자 몰리 패런과 비밀 결혼한 사실을 두고 전전긍긍해한다. 이 사실을 아버지께 말하겠다고 협박하는 동생과 사람들에게 진상을 폭로하려는 몰리로 인해 고민하던 차에, 갑자기 동생은 행방불명되고, 몰리는 길에서 얼어 죽어 버리는 행운(?)을 누린다. 덕분에 평소 흠모하던 상류층 여성 낸시와 결혼하게 된다.
고드프리가 낸시와 결혼한 뒤, 그는 자식을 가질 수 없고, 16년 전 행방불명되었던 동생 던스턴의 유해가 스톤피츠 채석장 옆 물웅덩이에서 발견되면서, 마너의 금화를 훔친 범인이 동생이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고드프리는 이를 자신의 죄에 대한 징벌로 받아들이고 과거에 저지른 죄를 숨길 수 없다는 인과응보를 깨닫는다. 이러한 깨달음으로 뒤늦게나마 회심하여, 그는 아내에게 에피가 친딸이라고 밝히고 과거의 죄를 뉘우치려고 마너의 집을 찾아가지만, 에피를 딸로 인정하고 자기 집에 들이려는 제의를 거절당한다. 고드프리는 마너 외에 다른 아버지를 상상할 수 없다는 에피의 단호한 말을 듣고, 과거에 에피를 딸로 인정하지 않았던 그 죄는 부(富)나 지위, 그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
선(善)은 다른 사람을 포용하는 힘을 갖고 있고, 악(惡)은 타인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며, 자신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마너가 외부 세계로부터 소외된 채 죽은 듯이 살아가는 것은 친구와 애인의 배신으로 인한 충격 때문일 수도 있지만, 신과 인간을 부인한 죄의 대가이기도 하다.
에피는 마너를 인간사회와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적 인물이다. 늘어나는 돈은 마너에게 폐쇄적이며 음성적인 기쁨을 안겨주지만, 에피의 사랑은 마너에게 삶의 희망과 희열을 되살려주고 이웃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고드프리는 착하지만, 무책임한 성격으로 자기중심적인 이기주의의 대표적 인물이다. 몰리와의 비밀스런 관계, 에피를 달라고 마너에게 요구하는 행동 등이 그의 이기적 성향을 보여준다. 이로 인해 고드프리는 낸시와의 사이에 아이를 갖지 못하는 벌을 받는다. 악행의 벌은 반드시 이승에서 떠맡게 된다는 작가의 도덕관이 이 인물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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