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졸라 장편소설 『나나(Nana)』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Emile Zola. 1840 ~ 1902)의 장편소설로 <루공 마카르 총서>의 제9권으로 1880년에 간행되었다. 시정의 미천한 창부 나나가 육체미만으로 인기 여배우가 되어 호사한 생활을 보낸다. 귀족·실업가·청년 등이 여자를 둘러싸고 어리석은 모습을 연출하고, 혹은 파산, 혹은 자살한다. 그 여자 자신도 천연두에 걸려 추악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으로 고급 창녀의 영화와 비참함을 남김없이 그렸다.
졸라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일 년 반 가까운 준비 기간을 가졌다. 많은 자료 조사를 했고, 당대의 인기 여배우 블랑슈 당티니, 고급 매춘부 발테스 드 라 비뉴, 가수 오르탕스 슈나이더 등을 모델로 삼아 ‘나나’라는 주인공을 창조했다. 이 작품에는 화류계의 생활상과 그곳에 몸담은 사람들의 방탕하고 무분별한 행동들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에 엄청난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여주인공 나나는 루공마카르가의 시조인 아델라이드 푸크의 4대손이자 <목로주점>의 여주인공 제르베즈의 딸이다. 제르베즈와 나나의 외증조부와 외조부는 알코올중독으로, 외증조모는 발광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나나의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모습은 <목로주점>에 잘 나타나 있다). 이렇듯 나나는 신경증과 알코올중독이라는 유전적 특성을 물려받았고 인간을 짐승으로 만드는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타고난 육체적 매력 덕분에 〈금발의 비너스〉라는 연극의 비너스 역으로 데뷔한 뒤 하룻밤 만에 파리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인기 스타가 된다. 대리석 같은 육체와 치명적인 성적 매력으로 관객들을 압도한 나나의 집 앞에는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하는 남자들이 줄을 서 있고, 나나는 그들을 귀찮아하면서도 돈과 쾌락이 가져다주는 달콤한 유혹에 길들어간다.
금욕적인 생활로 이름 높은 황후의 시종장 뮈파 백작, 부유한 은행가 스타이너와의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관계, 위공 부인의 아들 조르주(또한 그의 형인 필리프 대위)와의 열정적인 연애, 동료배우 퐁탕과의 자기 파괴적 관계, 여자 친구 사탱과의 동성애 등 나나는 방탕하고 극단적인 관계를 맺으며 상대를 차례차례 파멸에 이르게 한다. (작품에서) 포슈리가 그녀의 파괴적인 매력에 대해 쓴 ‘황금 파리’라는 제목의 신문기사처럼, “쓰레기에서 날아온 햇빛 색깔의 파리 한 마리가 거리에 즐비한 시체에서 죽음을 채취해, 보석처럼 반짝이는 모습으로 윙윙대고 춤을 추며 궁전 창문으로 들어가서는 남자들 몸에 앉기만 하면 그들을 썩게” 한다.
이후 평생 돈과 욕망을 뒤쫓는 삶을 살았던 나나는 파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돌아와 호텔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때마침 보불전쟁이 발발해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베를린으로! 베를린으로! 베를린으로!”라는 시위대의 외침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소설은 소극장의 무대의 이면, 유한계급의 애욕생활, 창부생활의 호사와 추악을 폭로한 저명한 작품이다. 『목로주점(http://blog.daum.net/yoont3/11299484)』 『제르미날』 『인간 짐승』과 더불어 졸라의 작품 중에서 가장 큰 대중적 성공을 거둔 4대 역작 중 하나인 『나나』는 〈르 볼테르〉지에 연재되었다. 내용은 파리의 신인 여배우 ‘나나’가 타고난 육체적 매력으로 파리 상류사회 남자들을 유혹해 차례로 파멸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에밀 졸라는 『나나』의 창작노트에서 "수캐 떼가 암캐 한 마리를 쫓아간다. 그러나 암컷은 발정하지 않고, 따라오는 수컷들을 비웃는다. 세상을 움직이는 커다란 지렛대인 수컷들의 욕망에 대한 한 편의 시"라고 썼다.
나나는 <목로주점>의 주인공 제르베즈의 딸로 제2 제정기의 퇴폐를 상징하는 자유분방한 미모의 여배우이며 창부였다. 은행가․시종․신문기자․청년장교․중학생 등, 모든 종류의 사나이들이 그녀를 위해서 돈과 명예와 순정 등 각자가 가진 최고의 것을 바치고 그녀를 차지하려 했으나 결국은 환멸 속에서 자살한다.
그녀는 그들로부터 얻은 막대한 돈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만, 행복하지는 못하였다. 결국 파리를 떠나 외국에서 방랑하던 끝에 천연두에 걸려 파리에 돌아온 후 혼자 쓸쓸히 죽는다.
이 작품에는 화류계의 생활상과 그곳에 몸담은 사람들의 방탕하고 무분별한 행동들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에 엄청난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취향이 불결하고 세부 묘사가 노골적인 포르노 작가”라고 졸라를 비난했고, “네 발 가진 짐승의 소설” “음탕한 소설” “하수도 같은 소설”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이에 졸라는 “악덕을 묘사함으로써 사회 풍속을 교정하기 위해” 집필한 것이라고 응수했다.
그러나 『나나』의 진가를 인정한 당대의 인물들 또한 많았다. 플로베르는 이 작품에 나타난 다채로운 재능에 감탄하며 졸라를 칭찬했고, 위스망스, 모파상, 세아르 등의 작가들도 그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대중 역시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출간 즉시 5만 부가 넘게 팔렸고, 1885년에는 약 15만 부, 1902년에는 19만 부, 1928년에는 약 28만 부가 팔리면서 『목로주점』 보다 더 큰 인기를 누렸다. 이로써 졸라는 더욱 확고한 작가적 지위와 명성, 경제적 부를 확보하게 된다. 출간 이듬해인 1881년 『나나』는 연극으로 공연되어 큰 성공을 거뒀다.
♣
“금파리는 거리에 버려진 썩은 고기에서 죽음을 묻혀 보석처럼 반짝거리며 윙윙대며 날아다니다가 남자들에게 독을 옮긴다.”
이 소설 『나나』에 나오는 구절로, 팜므 파탈1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다. 동시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매춘부에게 매료되면서도 병균을 옮기는 금파리만큼 멸시했던 상류층의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마네2가 그린 <나나>는 소설 『나나』의 여주인공을 모델로 한 작품이다. 졸라와 돈독했던 마네는 발간 전부터 이 소설을 알고 있었고, 이에 영감을 받아 소설과 같은 제목의 그림을 먼저 선보였다. 마네가 <나나>를 그린 지 1년 6개월 만에 졸라는 『나나』를 연재했고, 이듬해 책으로 출판했다. 매력적인 고급 창녀 나나의 부귀영화와 몰락을 통해 당시 고위층의 부패를 비판하는 이 소설은 출간 즉시 커다란 이슈가 되었다.
마네가 그린 <나나>는 <풀밭 위의 식사>와 <올랭피아>에 이어 또다시 파리 시내를 들썩이게 했다. 마네는 이 그림을 살롱에 출품했지만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낙선시켰다. 작품의 실제 모델이 고급 창녀 앙리에트 오제였기에 누가 봐도 매춘을 소재로 삼은 게 확실했고, 그림 속에서 정신없이 여인을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조차 보수주의자들에게 못마땅하게 보인 것이다.
그림 속 여인은 관능미가 넘친다. 속옷 차림으로 거울 앞에 서서 한껏 멋을 내려는 여인은 화면 밖 관람객을 향해 은밀히 눈짓한다. 동그랗고 큰 눈, 오뚝한 코, 붉고 도톰한 입술, 잘록한 허리에 볼록한 엉덩이 등은 현대적이다. 화면 오른쪽 소파에 앉아 나나의 몸단장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신사는 그녀의 고객으로 보이는데 여인의 화장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그의 눈길이 풍만한 엉덩이에 꽂혀 있다. 등 받침대가 있는 커다란 소파는 상류층이 침대 대용으로 애용하던 쾌락의 공간이었으며 뒤쪽 벽에 그려진 학은 매춘부를 상징한다.
- 팜므 파탈은 프랑스어로 '치명적인 여자'가 된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악녀(惡女)의 캐릭터로 통한다. 화려한 외모와 선정적인 몸매의 한 여자가 한 남자를 감미롭게 유혹한 후 파멸로 이끈다. 때로는 공멸을 자초하기도 한다.팜므 파탈이 문학적인 캐릭터로 가장 잘 형상화된 것은 문학사의 유례 없는 스캔들을 일으킨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이라고 말해 진다. 그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인의 열 가지 태도를 정의해 팜므 파탈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냈다. 팜므 파탈은 상징주의와 세기말 탐미주의가 풍미하던 19세기 말의 인기를 누렸던 이른바 요부형 여인상이다.[네이버 지식백과] 팜므 파탈 [Femme fatale]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1.30, 국학자료원) [본문으로]
- 프랑스의 화가. 파리에서 출생, 그곳에서 사망. 사법관의 아들로 부친이 화가지망을 허락해 주지 않자, 17세에 견습선원이 되어 남미로 항해하였다가 해군병학교 시험에 낙방하고 화가로 입신하였다. 1850~1856 년, 토마 쿠튀르의 화숙에서 배움. 그러나 그의 화풍은 오히려 일찌기 루브르 박물관에서 스페인 회화에 친숙해진 데서 형성되었다. 그사이 자주 이탈리아 ∙ 독일 ∙ 네덜란드 ∙ 벨기에로 여행. 1859년부터 살롱에 출품, 낙선되는 일이 많았으나 고티에 (Theophile Gautier, 1811~1872)나 보들레르로부터 주목을 받게 된다. 1863년의 낙선자전에 『풀밭 위의 점심식사』(파리, 인상파미술관)를, 1865년의 살롱에 『올랭피아』를 출품해서 세상의 비난을 받지만, 색면의 밝음을 강조한 혁신적인 표현은 피사로, 모네, 시슬레 등 젊은 화가들을 끌어들이고, 카페 게르부아의 회합으로 발전, 거기서부터 인상파(⇒인상주의)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마네는 직접 참가하지는 않고, 살롱에 계속 출품했다. 1866년 『피리부는 소년』(인상파미술관) 의 낙선(落選)했으나 에밀 졸라가 옹호함. 이후 파리의 시민생활을 제재로하여 깔끔한 화풍으로 근대적 감각에 넘친 작품을 제작하였다. 어디까지나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리면서 평면적인 화면구성을 많이 썼고, 때로는 생략적인 묘사법을 살리어 밝고 신선한 색채로 화면을 통일해서 시각의 자율성과 순수성을 추구, 근대회화의 가장 중요한 선구자의 한사람이 되었다. 그외에 대표작에는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1867, 만하임 시립미술관), 『발코니』(1868, 인상파미술관), 『나나』 (1877, 함부르크 미술관), 『폴리 베르제르의 바에서』 (1822, 런던 코톨드 미술연구소) 등이 있다. 파스텔화에도 뛰어났고,그외 판화 작품도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에두아르 마네 [Edouard Manet] (미술대사전(인명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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