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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스며드는 저녁

by 언덕에서 2014. 11. 21.

 

 

 

 

스며드는 저녁

 

 

 

 

 

 

 

 

잎들은 와르르 빛 아래 저녁 빛 아래 물방울은 동그르 꽃 밑에 꽃 연한 살 밑에 먼 곳에서 벗들은 술자리에 앉아 고기를 굽고 저녁 스며드네

한때 저녁이 오는 소리를 들으면 세상의 모든 주막이 일제히 문을 열어 마치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처럼 저녁을 거두어들이는 듯했는데,

지금 우리는 술자리에 앉아 고기를 굽네 양념장 밑에 잦아든 살은 순하고 씹히는 풋고추는 섬덕섬덕하고 저녁 스며드네

마음 어느 동그라미 하나 아주 어진 안개처럼 슬근슬근 저를 풀어놓는 것처럼 이제 우리를 풀어 스며드는 저녁을 그렇게 동그랗게 안아주는데, 

어느 벗은 아들을 잃고 어느 벗은 집을 잃고 어느 벗은 다 잃고도 살아남아 고기를 굽네 불 옆에 앉아 젓가락으로 살점을 집어 불 위로 땀을 흘리며 올리네

잎들은 와르르 빛 아래 저녁 빛 아래 빛 아래 그렇게 그렇게 스며드는 저녁, 저녁 스며드네                  

 

 

위의 시는 허수경1(1964~ ) 시인의 '저녁 스며드네'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이 시 속에는 저녁 시간 먼 곳으로부터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모여 앉아 고기를 구워먹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풋고추와 상추, 깐 마늘도 양념장과 함께 하는 풍경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평화스런 분위기인데, 어떤 친구는 자식을 잃고 또 어떤 친구는 집을 잃고 또 사업에 망해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그래도 요즘처럼 쌀쌀한 날 저녁, 땀을 흘리며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시인은 저런 장면을 하루가 저무는 저녁 풍경과 곁들여서 아무렇지도 않게 무관심한 척 표현하고 있다. 시를 읽으니 요즘의 나와 같은 중년들의 일상을 보는 듯하여 편한 쓸쓸함이 쌓이는 느낌이다.

 우리는 음식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간다. 그런데 그냥 음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들 다른 이유가 있어서 만나서 식당이라는 장소를 찾는다. 무슨 할 얘기가 있어서 만났다가 처음에는 고기를 구워 먹느라, 나중에는 술에 취해서는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만나서 하자"라고 말하고 헤어진다. 어느 소설가는 이 시에서 풍기는 분위기를 설명하면서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만나서 하자"라고 말하는 부분이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음식문화지만 이게 가끔은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림 출처 : 글림작가의 세상바라기 ( http://blog.daum.net/e-klim )

 

 "이분법2 사라지는 곳에 낙원이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문명비평가였던 롤랑 바르트3의 말이다. 세상만사를 선명히 두 쪽으로 나누고 그 둘 사이에 넘나들 수 없는 절대의 경계선을 긋는 인간 정신의 관습이 이분법이고 이 이분법을 사유의 방법으로 심는 것이 이분법적 사고일 것이다. 선과 악, 흑과 백, 문명과 야만, 양심과 거짓, 정의와 불의, 인간적임과 비인간적임, 용서와 응징. 많은 경우 이분법은 배척과 분할, 억압과 소외의 논리가 되어 살인, 인종 청소, 전쟁, 파괴를 정당화한다.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 세르비아계 무슬림이 주동이 된 발칸반도에서의 인종 청소, 중세 교회의 마녀사냥, 남아프리카에서의 인종 분리 등은 이분법이 세상을 어떻게 지옥으로 만들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거창한 역사의 현장에서만 이분법이 존재할까? 개인의 생활사에서도 항상 부딪치고 마는게 만나는 상대방과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각각의 가치관과 개성이 상호조화되지 않을 때는 이분법을 적용하여 상대방을 배척하고 있음을 매일 발견한다.

 그런 연유로 나이가 들수록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울 때가 많다. 특히 만난지 오래된 사람일수록 그와 내가 마지막으로 만난 이후의 삶에 대한 성적표를 상호 비교해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잘되면 기뻐하기보다는 은근히 배 아파하는 못된 심보도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가치관이 맞지 않는 사람일수록 더욱 냉혹하게 적용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불행하게도 우리사회에서 인간의 가치평가 척도는 얼마나 부유한가 이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자본주의 사회가 마음대로 부유해질 수 있는 세상이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가난하게 살 경우가 다반사이지 않는가? 가난하게 산다는 건 신세진 것 없어도 끊임없이 쓸모없는 충고를 들으며 살아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온갖 교양적인 충고들 앞에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의 심경은 어떨까 하고 생각해본다.

 내 어릴 적 친구 B 역시 그러하다. 그의 아버지와 내 아버지는 친구였으며, 친구의 어머니와 내 어머니 역시 친구였다. 어린 시절부터 앞뒷집에서 그야말로 고추 친구로 자랐던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헤어지게 되었다. 서로가 전두환을 싫어하는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이 다른 가치관이었고, 우리는 물과 기름처럼 화합할 수 없는 서로를 확인하고 어린 시절의 모든 기억을 반납하고 헤어졌다.

 

 

 

 

 

 

 그 사이에 나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시고 어머니는 홀몸이 되어 삼형제를 키우셨다. 그와 내가 헤어진 지 약 10년 후 내가 대기업에 입사할 때 신원보증인이 필요했다. 요즘은 신용보증 회사의 증권으로 가늠하는 모양이지만 당시는 인 보증이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친구의 아버님은 두 말 않으시고 내가 다닐 회사에 신원보증을 서주셨다. 이후에도 어머니 간의 우정은 계속되었지만 우리는 서로 멀리 떨어진 직장 때문에 만날 수 없었다.

 이후 오십이 다되어가던 어느 날 그와 나는 내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만나게 되었다. 실로 30년 만의 재회였다. 이후 한 해가 저물어가는 어느 겨울날 저녁에 둘이 저녁을 함께 하게 되었다. 명문대학을 나온 친구는 IMF 이후 구조 조정으로 다니던 회사를 나와 힘겹게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명문가의 따님과 결혼으로 동네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눈에 받았던 과거를 멀리하고 이미 이혼한 상태였다. 그날을 계기로 해서 이 친구와 몇 달에 한 번씩은 꼭 만나게 되었다.

 

 

 그 친구를 떠올리면 항상 떠오르는 것이 '밥은 굶더라도 책은 읽어야겠다'는 왕성한 독서량이다. 그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가치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기본적인 가치들이 바로 '인문적인 가치'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고 나 역시 공감을 표했다. 그 가치의 핵심에는 사람에 대한 존중, 곧 인간의 품위와 생명의 존엄이라는 가치가 놓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문의 위기라는 푸념에 담겨 있는, 혹은 거기 마땅히 담겨있어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사람을 잊어버린 사회, 인간의 품위와 생명 존중의 가치를 시궁창에 처박는 몰가치 사회를 향해 치달리고 있다는 문제의식임은 물론이다. 시장, 산업, 경제가 제아무리 중요한 사회가 되었다 하더라도 시장유일주의 원리, 경제제일주의 논리, 시장가치 우선주의가 사회의 지배적 운영 원리와 논리, 가치가 될 때 사회는 곤두박질하고, 그 가치 전도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고통과 희생, 비용을 물어야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최근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모든 사건들의 핵심은 그런 게 아닌가.

 

 

 

 

 

 

 순박한 이 친구는 저녁 스며들 때 내게 전화하여 둘만의 자리를 갖곤 한다. '생활이 자신을 속여 매우 답답했노라……. 그래서 자살한 대통령 묘소에 가서 한없이 울고 왔더니 속이 가라앉더라…….' 하며 해맑은 미소를 짓기도 한다. 이 오랜 친구와의 저녁 스며들 때 오랜만의 만남은 위에서 언급한 자신들만의 이분법으로 어색할 때도 있다.

 그러나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만나서 하자" 라며 고기만 구워 먹을 수도 있고. 볼이 미어터지도록 상추쌈을 입에 넣을 수 있으며, 아무 말도 안 할 수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만나는 모든 자리마다 반가운 척 떠들어야 된다면 그날의 저녁이 불편할 것이다. 스며들 때는 그냥 스며드는 것. 저녁이 스며드는 풍경, 어디 이 친구와의 경우뿐이랴.  일모도원4(日暮途遠)의 시절,  요즘 내가 자주 목격하는 장면이다.

 

 

 

 

 

 

 

  1. 세상사의 많은 슬픔과 비애들을 다양한 음역을 가진 시로 표출해온 작가다. 1964년 경남 진주 출생. 시인이자 고고학자인 허수경은 스물다섯 나이에 세상을 통달한 듯한 시어로 80년대 시대가 할퀸 인간들의 삶을 담은 첫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로 시인으로 등단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하다 어느 날 독일로 떠나 뮌스터 대학에서 고대 근동 고고학을 공부하면서 방학 동안에는 발굴 현장 땡볕 아래서 유적지를 탐사하고, 학기 중에는 집에서 도서관에서 고대 동방 고고학을 연구했다. 그러다가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하게 차오를 때면 램프를 밝히고 단정하게 책상에 앉아 모국어로 글을 썼다. 작품으로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혼자 가는 먼 집』『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장편소설 『모래도시》, 수필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모래도시를 찾아서』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끝없는 이야기』 『슬픈 란돌린』 들이 있다. 앞으로의 소망이 있다면 젊은 시인들과 젊은 노점상들과 젊은 노동자들에게 아부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본문으로]
  2. (dichotomy는 '떨어져 있는'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dicha와 '자르다'라는 뜻의 tomos에서 유래) 어떤 집합을 특정한 성질이나 속성을 갖고 있는 하나의 하위집합과 그렇지 않은 다른 하나의 하위집합으로 나누는 논리적 분류방식을 가리키는 전문용어. [본문으로]
  3.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는 1940년 파리 대학 교수로 취임했고, 1953년에는 프랑스 국립과학센터에서 어휘학과 기호론을 연구했다.그는 기호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기호학을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문학이나 대중문화에 적용했다. 바르트는 일상생활에서 신화와 이데올로기의 사회적 역할에 주목해 문화의 사회학적 연구에 크게 기여했다.주요 저서로는 『신화론』(1957), 『기호학의 원리』(1964), 『텍스트의 즐거움』(1973) 등이 있다. 바르트는 의미 작용의 기호학을 통해 신화의 본질,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화의 의미, 신화가 만들어지는 방법, 신화가 유지 강화되고 변화되는 방법 등에 대한 의문점들을 구명하려 했다. 이를 통해 바르트는 대중문화의 이면에 은폐된 이데올로기 비평에 큰 공헌을 했다.[네이버 지식백과] 롤랑 바르트 (문화 연구자, 2013.02.25., 커뮤니케이션북스) [본문으로]
  4. '초(楚) 나라 평왕(平王) 때 소부(少傅: 태자에게 학문과 예절을 가르치는 벼슬) 비무기(費無忌)는 온갖 아첨으로 왕의 신임을 사서 중상모략 등으로 태자를 변경으로 내쫓은 뒤 또 그의 보복이 두려워 그가 왕에게 반기를 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모함했다.이 말을 듣고 왕은 태부(太傅)인 오사(伍奢)를 불러 문책하자 그는 오히려 왕이 간신배의 모함에 의해서 태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 말에 평왕(平王)은 노하여 오사를 유폐시키고 태자는 송(宋)으로 도망치고 말았다.일이 이렇게 되자 비무기(費無忌)는 오사(伍奢)의 아들 오상(伍常)과 오자서(伍子胥)의 보복이 두려워 왕에게 간하여 두 아들을 체포하도록 방을 붙였다. 이것을 보고 맏아들 오상은 아버지와 함께 죽기로 결심하고 나타났으나 둘째 오자서는 훗날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오 나라로 망명하고 말았다.몇 년 후 평왕(平王)이 죽고 비무기(費無忌)는 더욱 권세를 쥐고 전횡을 일삼았으나 내분으로 인해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오자서는 오 나라의 손무(孫武)와 함께 초로 진격해 소왕을 찾았으나 그는 이미 운으로 도망친 뒤라 평왕(平王)의 무덤을 파내 시체에다 3백대의 매질을 가했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친구 신포서가 그 보복 수단이 너무 지나침을 책망하자 오자서(伍子胥)는 이렇게 대답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