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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양귀자 연작소설『원미동 사람들』

by 언덕에서 2014. 9. 10.

 

양귀자 연작소설 『원미동 사람들』

 

 

양귀자(梁貴子, 1955 ~ )의 연작소설로 1987년 발표되었으며, 1988년 [유주현 문학상] 수상 작품이다. 작가 양귀자가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이라는 삶의 공간을 무대로 1980년대 소시민들의 삶을 압축해서 보여준 연작소설집이며, 해당 연작소설집의 표제작이다. 연작소설집 『원미동 사람들』에 실린 11편의 소설은 <멀고 아름다운 동네>·<불씨>·<마지막 땅>·<원미동 시인>·<한 마리의 나그네 쥐>·<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방울새>·<찻집 여자>·<일용할 양식>·<지하 생활자>·<한계령> 등이다. 이 작품들은 1986년 3월부터 1987년 8월까지 문예지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발표되었는데 소설이 발표될 때마다 문단이 크게 주목하여 그때마다 문제작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1987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원미동 사람들』 초판이 발행되었고, 현재까지 총111쇄를 기록하며 서점가의 스테디셀러로 알려져 있다.

 국정 국어교과서에 연작소설 중 하나인 <일용할 양식> 전문이 실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중학생들의 필독서가 된 것도 이 단편집이 널리 읽히는 이유가 될 듯하다. 몇 년 전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최근 전국 각지에서 보내오는 엄청난 양의 독후감을 전달받고 있으며 그 독후감의 대부분이 중학생들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독후감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문장이 ‘우리 동네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아주 옛날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지금과 많이 비슷하다.’ 등이었다는 것도 그런 정황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 거리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소설은 `멀고 아름다운 동네` 원미동으로 떠나는 이삿날로부터 시작된다. 가장은 장롱을 들어낸 자리나 벽의 낙서 따위에서 살아온 흔적을 만진다. 앞으로의 삶의 불안을 누르려는 듯이, `불씨`의 주인공은 뜻밖의 실직으로 성격에 안 맞는 외판원이 된 사내. 그는 종일 입 한 번 떼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밤 지하철 차창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본다.

 어느 추운 겨울날, 화물차 짐칸에 실려서 서로의 체온과 담요로 추위를 참아내면서 '나'와 우리 가족은 부천시 원미동 23통에 있는 연립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원미동엔 비슷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바동대며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우리 동네 지주(地主)라고 불리는 강 노인은 시가 몇 억짜리 땅에 한사코 푸성귀 따위나 가꾸겠다고 고집하는 통에 고흥댁과 박씨는 온갖 감언이설을 다 늘어놓지만 허사이다. 결국 강 노인은 큰아들 용규에게 빚을 준 동네 사람 여덟 명의 빚 독촉에 팔고 만다.

 몽달씨(氏)라는 별명을 가진, 약간 돈 원미동 시인도 이 곳에 산다. 그는 동네 사람들의 무시를 받아가며 김 반장 가게에서 일곱 살짜리와 노닥거리며 지낸다. 그러다가 하루는 밤에 깡패를 만나 물씬 두들겨 맞는다. 김 반장은 오히려 그를 쫓아낸다. 이런 김 반장의 행동을 모두 엿본 일곱 살짜리 아이는 큰 소리로 동네 사람들을 부른다. 그러자 지물포 점의 주씨(氏)가 모든 걸 해결해 준다.

 은혜네는 이사 간 지 얼마 안 되어서 천정과 벽에 습기가 배어 물이 흐르고 작은방의 난방 파이프가 터져 버리는 바람에 정신이 없다. 그런데다 이번에는 목욕탕 사건이 터지는 통에 연탄 가게와 지물포를 겸한 주씨(氏)에게 일을 맡긴다. 주씨(氏)가 이것저것 다 고친다지만 전문가가 아니라고 트집을 잡으며 공사비 바가지를 씌울까 봐 아내는 조바심을 낸다. 그러나 주씨(氏)는 18만원이라는 견적 보다 훨씬 적은 7만원을 받고 공사를 한다. 서비스로 옥상 공사까지 해 주며 오히려 미안해한다. 일이 끝난 후 주씨와 술을 마시며 주씨 자신의 고생담을 듣게 된다. 또, 가리봉동을 비 오는 날마다 간다는 말도 듣는다.

 행복 사진관을 하는 엄씨(氏)는 한강 인삼 찻집을 하는 30대 여자와 바람이 났는데, 남편의 외도를 안 부인이 인삼 찻집 여자와 대통 싸움을 하는 통에 바람피운 것이 들통 난 엄씨(氏)는 동네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게 된다. 하지만 엄씨는 인삼 찻집 여자에 대해 미안함과 동정심을 갖는다. 결국 인삼 찻집 여자는 동네 사람들의 눈총에 못 이겨 힘들게 낸 찻집을 떠나고 그 자리에는 경자 친구가 하게 될 화장품 할인 코너가 들어선다.

 경호네는 연탄 주문, 쌀 배달 등으로 알뜰히 살아 김포 슈퍼까지 내게 되자, 김 반장의 형제 슈퍼와 출혈 경쟁이 붙는 바람에 헐값에 물건을 살 수 있게 된 동네 사람들만 신바람이 난다.

 그런 와중에 김포 슈퍼와 형제 슈퍼 사이에 싱싱 청과물점이 생겨 부식 일체와 완주 김까지 팔았다. 이것을 알게 된 경호네와 김 반장은 휴전을 맺고 힘을 합쳐 싱싱 청과물의 수입을 막아 버린다. 약이 오른 싱싱 청과물은 김 반장에게 대들어 싸움이 붙지만 김 반장에게 물씬 얻어맞는다. 이 싸움으로 김 반장은 신임을 잃어 동네 사람들의 미움만 산다.

 연립주택의 지하실 생활을 하는 우리 가족은 용변 보는 일에 눈치를 보느라 힘들어한다. 주인집 화장실 사용이 쉽지 않아서 그 동안 남의 집 신세를 져 가며 그럭저럭 해결해 왔다. 그런데, 이집 저집에서 문단속을 하기 시작하는 바람에 더욱 난처해진 '나'는 주인집을 잔뜩 원망한다. 하지만 주인집 여자는 유부남을 끌어들여 사는 처지라서 문을 함부로 열 수 없다.

 하지만, 주인집 여자는 유부남을 끌어들여 사는 처지라서 문을 함부로 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그녀를 오히려 동정하게 되었다.

 

 

 1980년대 부천시 원미동은 서울이라는 거대한 꿈의 도시로 편입하려는 자, 혹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숱한 밤을 악몽으로 지새운 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다. 물론 원미동이 고향이고 터전이었던 사람들도 그들과 함께 이웃으로 살고 있었다. 1980년대의 이런 삶의 풍경은 어디에도 널려 있었다. 지난한 밥벌이의 구차한 행로, 도무지 손에서 놓아 버릴 수 없는 아주 소박하고 작은 꿈들, 그럼에도 도저히 이루어지지 않는 작은 꿈들의 쓸쓸한 소멸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 사회의 부박한 삶과 그 진행의 현상이 축약되어 있음을 실감하며 살아가야 하는 곳’ 이었다. 『원미동 사람들』에 수록된 11편의 단편들은 바로 그런 공간을 문학적 지도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함으로 압도적인 문학적 성취를 이룬 걸로 여겨진다.

 “서울은 막무가내로 그들을 밀어내었다. 온갖 책략을 동원해서 그들을 쫓아낸 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음흉한 작별을 고했다. 달리는 트럭의 짐칸에 실려서 그는 부천시의 인사를 받았다. 어서 오십시오…”( ‘멀고 아름다운 동네’ 중)

 

 

 1980년대 부천시는 밀려난 자들의 도시였고 서울이라는 중심을 향해 설욕을 다짐하는 패자의 공간이었다. 서울을 생활 터전으로 삼으면서도 서울시민이 아닌 자들이 어쩔 수 없이 모이는 곳이었다. 부천시의 유동성과 변두리성, 서민 정서는 이 작품에 투영됐다. 작가는 원미동 사람들의 일상으로 경제개발의 그늘에 놓였던 소시민들의 삶을 전했고, 1980년대 부천이라는 공간이 지녔던 시대성이 드러난다.

 또한, 이 작품은 작자 특유의 아름답고 간결한 문체로 독자에게 신선감을 준다. 물질만능의 현대 사회에서 주변부 인물로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풍속도를 작품화하여 우리 사회의 총체적 모습을 압축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대상의 핵심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관찰력으로 형제수퍼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삶의 단면을 부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