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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우리 집 안에 있는 보물

by 언덕에서 2014. 10. 10.

 

 

 

 

우리 집 안에 있는 보물

 

 

 

1956 이중섭 작 '병원' - 적십자병원에서 그린 마지막 그림이다

 



당나라 때 양보(楊補)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일찍부터 불법에 심취하고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집을 떠나 불도를 닦으리라 결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마침 사천에 무제보살(無際菩薩)이란 사람이 있어 불법에 능통하다 하여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양보는 무제보살을 찾아 집을 떠나 먼 길을 출발하였던 것이다.

 가는 도중에 찻집에 들러 간단한 요기를 하고 있는데 노인 한 사람이 양보에게 물어 말하였다.

 “젊은이, 어디 가시는가?”

 이에 양보가 대답했다.

 “사천에 무제보살이라는 훌륭한 스님이 있어 그 분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그러자 노인이 다시 물었다.

 “그분을 만나 무엇을 하려고?”

 “무제보살을 만나서 그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부처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때 노인이 껄껄 웃으며 말하였다.

 “부처가 되고 싶으면 부처를 만나 그분을 스승으로 삼으면 되지, 어째서 젊은이는 그 먼 사천까지 가서 보살을 만나려 하는가. 보살을 만나느니 부처를 만나는 게 낫지 않은가?”

 젊은이가 반색을 하며 물었다.

 “노인께서는 부처가 계신 곳을 알고 계십니까?”

 노인은 웃으며 대답하였다.

 “지금 곧바로 집으로 가면 이불을 두르고 신발도 거꾸로 신은 채 뛰어나와서 맞는 사람이 있을 걸세. 그분이 부처님이시라네.”

 

 이 말을 들은 양보는 노인의 말대로 보살을 만나서 스승을 삼느니 직접 부처를 만나는 게 좋겠다 하고 생각을 바꿔 집으로 돌아갔다. 밤늦게 집에 도착한 양보는 문을 두드리는데 그 순간 노인의 말처럼 옷도 입지 못하고 그대로 이불을 두른 채 신발도 신지 못한 맨발로 달려 나오는 부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 부처가 바로 어머니였던 것이다. 이에 크게 깨달은 양보는 이런 말을 하였다.

“부처님은 집 안에 있다(佛在家中).” 그렇다 나도 이제야 깨달았으니 내 아내와 내 자식들은 집 안에 있는 부처님들인 것이다.

 

 

 

-- 최인호 저 <가족 7(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p 141 ~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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