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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불리우면서’ 울지 않다

by 언덕에서 2014. 9. 17.

 

 

 

‘불리우면서’ 울지 않다

 

 

 


그 언젠가 길옥윤 추모 프로그램에 패티김과 혜은이가 나와 사회자와 함께 그를 추모하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대부분은 패티김이 이야기했고, 혜은이는 그냥 그 곁에 앉아 있었다. 이야기 중간중간 패티김과 혜은이가 노래를 하나씩 했다.

 노래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패티김은 그 특유의 내지르는 창법으로 길옥윤의 노래를 극적인 아리아처럼 장쾌하게 불렀다. 하지만 혜은이는 1절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목이 메는지 반주를 배경으로 눈물만 죽죽 흘렸다.  2절은 거의 부르지도 못했다. 혜은이가 불렀던 그 노래는 아마도 길옥윤이 패티김을 그리워하며 만들었던 노래일 것이다.

 그 남자의 사랑 노래를, 그 남자가 사랑한 여자말고, 혜은이가 부르고 있었다.

 혜은이가 길옥윤을 사랑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이것은 그렇게 들을 만한 노래였다. 애인의 애인 앞에서, 애인이 애인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그녀가 그녀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었다.

 그때 패티김은 그 무대의 슬픔까지도 죄다 제 몫이라 여기는 듯했다. 나르시시즘에 젖은 그녀의 슬픔이 그 무대의 감동이 아니라는 것은 그녀만 모르고 모두들 알고 있었다.


 노래 가사 중에 이런 비문법(非文法)이 있다. ‘바닷바람에 불리우면서’.  나는 왠지 이 구절이 각별하다. 세상 사는 일 중에, 기다리거나 의도하거나 나서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그 구절에 다 있는 듯 들린다.


 「씨 인사이드」라는 영화를 보면, 신체 불능자가 자신의 결단으로 안락사당하고 싶어 여러 사람에게 부탁하지만, 그의 안락사를 이해한다고 했던 그의 사랑은 그를 끝내 죽여주지 못하고 그와의 약속을 배반한다. 그런데 자신의 이유로 함부로 그를 사랑한(하지만 그가 사랑하지 않는) 다른 여자가 그를 죽여준다.

 세상에는 제 식의 사랑으로 나를 죽여줄 사람은 많아도, 내가 죽임을 당하고픈 그런 사람은 흔치 않다. 후자는 아무래도 내 허공 위에 떠 있는 구름 같은 타자이기 때문이다.



-- 유성용 저 <생활여행자> p 271 ~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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