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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박완서 서간문집 『한 말씀만 하소서』

by 언덕에서 2015. 1. 6.

 

 

 

 

박완서 서간문집 『한 말씀만 하소서』

 

 

 

 

 

소설가 박완서(朴婉緖. 1931∼2011)의 수필집으로 가톨릭 잡지 <생활성서>에 1990년 9월부터 1년간 연재되었다. 아들의 죽음을 겪으면서 기록한 일기문이다. 박완서 문학을 논하는 자리에 자주 거론되는 중요한 작품으로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꿈엔들 잊힐리야(원제:미망)>를 연재하던 1988년, 넉 달 상간으로 연이어 남편과 아들을 잃어야 했던 그 해, 고통과 슬픔에 찬 몸부림이 날것으로 드러나 있는 이 글은 한 개인이자 어머니로서의 상처의 기록이다.

 그러나 작가는 과거를 반추시키는 동시대인이자,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으로 그저 가고 또 갈 뿐인 ‘시간’이 남긴 흔적, 그 모든 희로애락을 기꺼이 끌어안고 간다. 그리하여 작가는 개인적인 상처마저도 공유해야만 하는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자이다. 고통과 절망에 맞서 나아가 어떤 성찰의 지경에까지 이르는 이 기록이 일차적으로는 박완서 문학의 원천이며 나아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 그 중에서도 슬픔과 절망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이자 위로가 되는 이유일 것이다.

 

 

소설가 박완서( 朴婉緖. 1931&sim;2011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나’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4녀 1남을 슬하에 키우던 중 1988년 어느 여름,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교통사고로 떠나 보내게 된다. 유달리 아들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나는 가슴에 아들을 묻고 그 이유와 고통의 근원에 대해 신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신은 대답이 없었다. 그녀가 믿고 있던 카톨릭의 신, 하느님은 그렇게 쉽게 대답하는 신이 아니기 때문일까. 그녀의 고통과 번민, 악의에 찬 분노가 엉크러진 표독스런 독설에도 끝내 신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아들을 잃기 전보다 더 신과의 독대가 잦아지면서, 아침에 신을 죽였다가 다시 저녁에 살리는 끊임없는 반복이 그녀의 일상을 괴롭혀간다. 고통을 끊을 수 없다면 그 이유라도 알고 싶기에 신에게 매달려 보지만, 결국 부산에 있는 분도 수도원에서 만난 한 수녀의 지난 과거를 통해 나지막한 실마리가 주어진다.

 그전까지 고통을 거부하려는 강한 의지와 현실을 부정하려는 그녀의 노력이 한 수녀를 만남으로써, 그 수녀의 고백을 통해서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이며, 현실을 인정하게 된다.

 

소설가 박완서( 朴婉緖. 1931&sim;2011 )

 

 

 하느님의 주관에 대한 문제는 이 땅을 살아가는 신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넘어가야 할 높은 산이 아닐 수 없다. 천국 같은 미소로 기억되는 가녀린 모습의 작가 고(故) 박완서 선생은 1988년에 남편을 폐암으로, 석 달 후에는 26세의 아들을 잃어야 했다. 장래가 촉망되던 마취과 레지던트 아들의 돌연사는 그녀가 홀로 방문을 걸어 잠근 채 하늘을 향하여 처절한 울음을 울어가며 일기를 기록하게 했다. 그 일기는 15년이 지난 후에야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인간은 되도록이면 고통을 피하려 하고, 어쩔 수 없는 고통이 주어지면 그 고통의 원인부터 찾으려 한다. 원인을 찾아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원인이 없는 고통, 자세하게 말하면 원인이 자신의 범위를 벗어나서 시작된 고통이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다. 인생은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선생의 다른 작품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이라는 제목은 김현승 시인의 시'눈물'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그 역시 어린 아들을 잃은 후 절대자에 귀의하여 슬픔을 극복하면서 쓴 시이다. 그는 아들의 주검을 지켜본 아버지가 무력감을 절감하고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그가 절대자 앞에 드릴 수 있는 전부이며 가장 소중한 것은 오직 눈물이라고 했다. 박완서 선생 역시 그 눈물을 통해 '나'를 찾고, 문학으로 돌아온 듯싶다.

 전설의 기타리스트 에릭 클리튼이 부른 명곡 ‘천국의 눈물(Tears In Heaven)'은 1991년 뉴욕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은 어린 아들을 기리며 만들고 부른 노래이다. 그러나 그는 얼마 후 이 노래를 부르지도 연주하지도 않겠다고 공언했다. 아들을 잃었을 때 애끊는 심정으로 만들었던 곡을 행복할 때도 불러야 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톨릭의 제사인 미사에서 영성체를 행하기 전 다음과 같은 기도문이 등장한다.

 “주여, 내 안에 주여 모시기에 당치 못하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내 영혼이 나오리다.”

 '한 말씀만 하소서' 작품의 제목에 나타나있듯이, 작가는 자신의 고통이 무엇 때문에 생겨났는지 그 이유를 하느님으로부터 '한 말씀'만 듣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하느님은 '한 말씀'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의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의 영역에 속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느님은 직접적인 계시보다는 환경과 사람을 통해 작가에게 계시한다.

 결국, 선생은 자기 아들만을 사랑했던 편협한 사랑과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은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의 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랑의 방법을 찾아내며, 동시에 고통이 '왜 내 아들에게 주어져야 했는가'의 질문에서 벗어나 '왜 내 아들이라고 해서 고통 받지 말라는 이유가 있는가'로 인식의 전환을 이루게 된다. 고인이 된 선생은 사고의 전환, 발상의 전환이 고통의 원인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한 말씀만 하소서'를 통해 지금도 살아 우리에게 '한 말씀'하고 있다.

 

  1.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