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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최창학 장편소설 『아우슈비츠』

by 언덕에서 2014. 5. 15.

 

 

 

최창학 장편소설『아우슈비츠』

 

최창학(崔昌學. 1942~ )의 장편소설로 1997년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존경받는 한 신학대학 교수가 아버지를 권총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가 아버지를 죽인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역사적 진실의 은폐 위에 구축된 현실의 허구성을 원숙한 사유와 필치로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다.

 신을 믿는 사람은 신의 뜻을 어긴 자를 죽여도 되는가, 신의 뜻에 따라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도 되는가? 예컨대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진 유대인 학살이나 우리 남녘땅에서 일어난 광주학살이 신의 주관에 따른 역사적 사건이라고 믿는다면, 그 학살자를 처단하는 일은 용서받지 못할 살인인가 아니면 신의 섭리인가? 또 예를 들면 수백 명의 학생들을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죽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였음에도 뻔뻔하게도 '신' 타령을 하며 법망을 우롱하는 자를 방관해야 하는가?

 1968년 등단이후 30년 동안 자신의 문체마저 다시 사용하지 않는 문학적 모험을 감행해온 소설가 최창학이「신과 인간의 관계」라는 주제를 탐구한 「아우슈비츠」(문학동네)는  한국문학이 버거워하는 문제인 신과 인간, 죄와 벌, 심판과 구원이라는 화두와 대결한다. 작가가 보기에 김은국의 「순교자」나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은 결국 신의 섭리를 인정하는 「전도용 소설」에 머물렀다. 작가는 「작가로서의 오만」을 견지, 끝까지 불가지론의 입장에서 화두를 대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중년의 신학교수가 재산을 노리고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경찰 발표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건의 진실을 캐기 위해 소설가와 시나리오 작가가 뛰어든다.

 이들은 살해된 인물이 광주학살을 주도한 장성 중의 한 명이며 과거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가 온갖 성적 비행까지 저질렀음을 밝혀낸다.

 또 교수의 아내인 살해당한 이의 며느리가 자신을 성폭행한 시아버지를 살해했으며, 이를 안 아들인 신학 교수가 범행을 스스로 뒤집어 쓴 것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 작품은 참기독교 정신이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있다. 남의 죄를 뒤집어쓰는 것만이 참기독교정신인가, 또는 이유가 타당하기만 하다면 자기가 아버지까지도 죽일 수 있는 것이 참기독교정신인가. 과연 참기독교정신은 어느 쪽인가.

 자기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처럼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해온 화두가 또 있을까? 신을 믿든 믿지 않던 인간의 무의식 저편 어디쯤 절대자에 대한 외경이 떡하니 버티고 있음을 그 누구도 쉽게 부정하지 못한다. 인간은 죽음과 같은 절대적 상황에 부닥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2차대전 당시 존재했던 유태인 수용소는 1980년 광주학살과 함께 인간이 신을 찾게 되는 비극적 계기로 설정되어 있다.  

 이 소설은 기라성 같은 소설가에게 소설을 가르쳤던 문예창작과 교수가 15년 만에 발표했던 장편소설이다. 아버지를 살해한 신학교수 박광렬에게 돌을 던질 자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신과 인간, 죄와 벌, 심판과 구원이란 주제를 형상화한 추리소설 기법의 전개로 현대사의 인간성 마멸 현장을 드러냈다.

 

 

 병든 사회 속에서의 개인은 한없이 무력하고 허탈과 절망에 빠져 있다. 결국 사회의 일부분일 수밖에 없는 개인은 산업사회의 급격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오늘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어쩌면 사회의 그늘 밑에서 앙상한 가지만을 움켜진 채 비틀거리고 있는, 결국은 공해와 도시 미화정책으로 쓰러질 운명인 한없이 가녀린 한 그루의 나무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러한 그의 독특한 작품 세계는, 상식적 내용에 안주하거나 관념적 전개에 의존하지 않고, 판단정지와 본질환원을 통해 대상 자체에로 나아가는 현상학적 방법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 소설은 생존을 위해 인간 이하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과 광기의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얼핏 여겨왔던 이들의 삶이 그 실제에 있어서 광기에 가득한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최창학(1941 ~ ).소설가. 전직 대학교수. 194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68년 《창작과 비평》에 중편 <창(槍)>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8년부터 2007년까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30년 가까이 교수로 재직하면서 작품 쓰는 일보다 가르치는 일에 더 몰두했다. 그래서 신경숙, 조경란, 천운영, 윤성희, 편혜영, 심상대, 강영숙, 김미월 등 현재 문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뛰어난 젊은 소설가들을 제자로 두는 행복을 누렸다. 주요 작품집으로《물을 수 없었던 물음들》, 《바다 위를 나는 목》, 《몇 개의 낙서를 통한 회상》 등이 있고, 장편소설에 《가사자의꿈》, 《긴 꿈속의 불》, 《아우슈비츠》 등이 있으며, 2007년에 퇴임기념선집 《최후의 만찬》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