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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문열 장편소설 『사람의 아들』

by 언덕에서 2014. 4. 10.

 

 

이문열 장편소설 『사람의 아들 

 

 

 

이문열(李文烈. 1948 ~ )의 장편소설로 무명의 작가를 일약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도약시킨 작품이다. 1979년 [세계의 문학]에서 중편으로 출간, 1987년 장편으로 개작, 1993년 다시 부분 손질하여 출간되었다.

  '사람의 아들’ 또는 ‘인자(人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유래한 근동 지방의 관용구로, “사람으로서” 또는 “나 자신”을 뜻한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앞서 말한 관용적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로 쓰였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예수 세미나에 따르면, 사람의 아들(예수 세미나는 “아담의 아들”로 번역한다) 때때로 하늘로부터 다시 올 사람을 이야기하며, 예수 자신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본다. 또 예수가 고난을 당하고, 죽음을 당하며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할 때는 그 자신을 말하며, 가령 “안식일의 주인”에서 나오는 '사람의 아들'은 단지 사람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은 아하스 페르츠의 이야기를 내부 이야기로, 민요섭과 조동팔의 이야기와 민요섭 피살 사건을 수사하는 남경사의 추적 과정을 외부 이야기로 하고 있다. 민요섭은 예수를 '거짓된 사람의 아들'이라 보고, 예수와 동시대 인물이면서 사탄으로 비난받았던 아하스 페르츠를 '진정한 사람의 아들'로 만들어 낸다. 그러나 끝내는 기독교로 회귀하며, 그것이 제자 조동팔의 분노를 사게 되어 살해된다.

 이 작품은 인간 예수의 내면세계를 '국보급'으로 불리는 작가 특유의 아름다운 시적 문체와 심리학적 상상력으로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근원적 회의를 품고 있는 주인공 민요섭을 통해 인간존재의 근원과 그 초월의 관계를 묻는 이 장편소설은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The Passion of the Christ> , 2004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D시 경찰서에 재직 중인 남경사는 민요섭의 살인 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사건을 위해 서울로 올라간 남 경사는, 민요섭이 기독교 집안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났으며, 신학교 학생이었다는 것과, 학업 중 이단에 빠져 기독교에 대한 회의를 품고 학교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뒤 남 경사는 민요섭의 행적을 쫓아 여러 도시로 다니면서 그의 노트를 발견한다. 그 내용은 기독교에 대한 회의를 품고 방황하는 인간상인 ‘아하스 페르츠’가 주인공으로 되어 있는데 그는 예수와 같은 시간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다. 남 경사는 민요섭의 행적을 쫓는 데마다 나타나는 새로운 자료의 내용에 흥미를 느끼며, 이 내용이 민요섭이 겪은 기독교에 대한 갈등과 체험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남 경사가 항도 B에 갔을 때는, 민요섭이 여인숙 집 아들 조동팔과 함께 사라졌고, 이후에는 같이 기거하면서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종교 교육을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민요섭의 사후에는 일명 김 씨로 통하던 조동팔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민요섭의 죽음이 조동팔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그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그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는 이미 집을 나간 지 오래되었으며, 그의 방에는 민요섭의 원본에 있는, 새로운 신이 바탕으로 된 새로운 성서가 완성되지 않은 채 있을 뿐이었다. 남경사는 민요섭의 원본을 가져와 읽어보는데, 거기에는 ‘아하스 페르츠’가 예수 그리스도와 일곱 번 만나 논쟁을 벌인 사건과, 예수가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 ‘아하스 페르츠’에게 닥쳐온 공허감 등이 적혀 있었다.

 이후 남경사는 조동팔이 김동욱이라는 사람으로 개명하고, 얼마 전에 복역을 마치고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 집을 다시 찾아가 본다. 남경사를 만난 조동팔은 민요섭이 자신들의 신을 배반하고 기독교로 돌아가고자 했기 때문에 그를 죽였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나서 그 역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 <사람의 아들 Son Of A Man> , 1980 제작

 

 아하스 페르츠는 성경에는 나오지 않고 외경으로 전해져 오는 인물로서, 작가는 이 전설상의 인물을 소설 속에서 재창조한다. 기독교 전설에 의하면 그는 이스라엘의 구두장이였는데,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는 도중에 그의 집 문 앞에서 쓰러졌을 때, 잠깐 쉬게 해 달라는 예수의 청을 거절했기 때문에 그 저주로 예수 재림 때까지 죽지 못하고 방황한다는 악마적 인물이다. 작가는 이러한 인물 속에서, 세계의 모순에 괴로워하며, 그것에 눈감고 있는 신의 침묵을 고발하는, 반신적(反神的)이며 이성을 존중하는 한 인간형을 살려낸다.

 아하스 페르츠는 '거짓 인자(人子)'인 예수에 대하여 온전하고 참된 '사람의 아들'로서 대립한다. 예수와의 대화에서 그는 "육신을 가진 인간의 비참함을 없애기 위해서, 인간들에게 죄지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도록 고통스러운 자유를 회수하라."라고 말하며, "인간은 주어진 모든 것을 누려야 하므로 그 무슨 이유로도 그들의 향유를 빼앗거나 금지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한다. 결국, 예수와 아하스 페르츠의 대립은 사랑으로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는 예수와 이성으로 사람을 하느님의 위치로 끌어들이려는 아하스 페르츠 사이의 대립이다. 예수의 하느님은 인간을 영원히 죄의식 속에 살게 하는 하느님이지만, 아하스 페르츠의 하느님은 인간을 신뢰하는 하느님이다.

 

 

 이 작품은 기독교의 본질적인 비극성을 표현하고 있다. 본문에서 인용된 ‘아하스 페르츠’의 일대기는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를 담고 있다. 세계에 대한 괴리에 괴로워하는 모습에서 '신은 침묵하고 있다'는 것을 고발하고 있는데, 이는 기독교에 대한 하나의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즉, 신화적 서술 분위기와 구도적인 열정의 허무 맹랑함이, 신에 대한 은밀하고 경멸에 찬 아이러니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참된 사람의 아들 ‘아하스 페르츠’가 예수에 대한 대립적인 존재라면, 이 ‘아하스 페르츠’는 인간적인 종교의 경전이라 말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일대기에서 민요섭이라는 인물을 통하여 인간의 고뇌를 설명하고 있으며, 이는 인간적인 보편성에 닿아 있다. 아울러, 이 작품은, 신화적인 구도를 지니고 있음으로 해서 플롯의 난점도 해결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기독교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과 관심을 불러 모으는 책이다. 선과 악의 대결, 하느님과 사탄이 주고받는 대립, 예수와 아하스 페르츠가 대화하는 장면은 긴장감을 높여 준다. 흔히들 ‘소설 속의 소설’이라고 부르는 <액자소설>의 구조로 긴박한 스토리의 재미를 이끌어 간다. 이 작품이 소설이 발표된 1979년의 대한민국 사회를 단숨에 느낄 수 있다.

 아울러 아하스 페르츠와 고대 근동 신앙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 주는 것은 이 작품의 큰 매력이다. 민요섭이 갑자기 기독교로 회귀하는 이유는 작가 자신이 지적한 것처럼 설득력이 약해 보였다. 결말을 알게 되면 납득하겠지만 열혈 기독교인들이 읽을 때는 굉장히 거슬리는 부분도 있어 보인다. 아하스 페르츠가 이집트와 바빌론, 인도, 로마 등을 떠돌며 신을 찾는 여정은 판타지 소설과도 같은 느낌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