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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집 감상

구상(具常) 시집 『나는 혼자서 알아낸다』

by 언덕에서 2015. 4. 8.

 

 

 

구상(具常) 시집 『나는 혼자서 알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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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동서양의 철학이나 종교에 조예가 깊어 존재론적·형이상학적 인식에 기반한 독보적인 시 세계를 이룩했다. 현대사의 고비마다 강렬한 역사의식으로 사회 현실에 문필로 대응, 남북에서 필화를 입고 옥고를 치르면서까지 지조를 지켜 온 현대 한국의 대표적인 전인적 지성이다.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추천된 바 있는 시인의 시들은 외국에서도 여럿 번역되어 있다.

 노벨문학상 본선 심사에 두 번씩이나 올랐던 구상(具常.1919∼2004)  시인의 시는 프랑스·영국·독일·스웨덴·일본·이탈리아어로 번역·출판돼 널리 읽히고 있다. 1997년에는 영국 옥스퍼드 출판부에서 펴낸 《신성한 영감-예수의 삶을 그린 세계의 시》에 그의 신앙시 4편이 실렸을 정도로 그는 가톨릭을 대표하는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시를 쓸 때 기어1綺語의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말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언령2言靈이 있으므로 참된 말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묘하게 꾸며 겉과 속이 다른, 진실이 없는 말을 결코 해서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이중섭 화백의 작품을 판 1억원을 이웃을 위해 스스럼없이 내놓은 것을 비롯해 투병 중에도 장애우 문학지 〈솟대문학3〉에 그동안 아껴 두었던 2억원을 쾌척하는 등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 늘 관심을 가져왔다. 이처럼 성자와도 같은 삶을 살았던 구상 시인은 지병인 폐질환이 악화된 데다 교통사고 후유증까지 겹치면서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오가며 힘들게 병마와 싸우다가 끝내 2004년 5월 11일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이 기다리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오늘 

 

오늘도 신비의 샘인 하루를 맞는다.

이 하루는 저 강물의 한 방울이

어느 산골짝 옹달샘에서 이어졌고

아득한 푸른 바다에 이어져 있듯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이다.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속에 이어져

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고나서부터가 아니라

오늘부터 영원히 살아야 하고

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을 비운 삶을 살아야 한다.

 

- 시집<영원 속의 오늘, 1976>

 

 


 

 

 

 

 

 

 

 기도

 

 땅이 꺼지는 이 요란 속에서도

 언제나 당신의 속사귐에

 귀 기울이게 하옵소서.

 

 내 눈을 스쳐가는 허깨비와 무지개가

 당신 빛으로 스러지게 하옵소서.

 

 부끄러운 이 알몸을 가리울

 풀잎 하나 주옵소서.

 

 나의 노래는 당신의 사랑입니다.

 당신의 이름이 내 혀를 닳게 하옵소서.

 

 이제 다가오는 불 장마 속에서

 '노아'의 배를 타게 하옵소서.

 

 그러나 저기 꽃잎 모양 스러져 가는

 어린 양들과 한 가지로 있게 하옵소서.

 


 

 

 

 

 

 

 

 

 초토4의 시 1

 

 하꼬방 유리 딱지에 애새끼들

 얼굴이 불타는 해바라기마냥 걸려 있다.

 

 내려쪼이던 햇발이 눈부시어 돌아선다.

 나도 돌아선다.

 

 울상이 된 그림자 나의 뒤를 따른다.

 어느 접어든 골목에서 걸음을 멈춰라.

 

 잿더미가 소복한 울타리에

 개나리가 망울졌다.

 

 저기 언덕을 내려 달리는

 체니(少女)의 미소엔 앞니가 빠져

 죄 하나도 없다.

 

 나는 술 취한 듯 흥그러워진다.

 그림자 웃으며 앞장을 선다.

 


 

 

 

 

 

 

 

 

 

초토의 시 14

 

 자네가 간 후에도 이승은 험하기만 하이. 나의 마음도 고약만 하여지고 첫째 덧정없어 이러다간 자네를 쉬이 따를것도 같네만 극악무도한 내가 간들 자네와 이승에서듯이 만나 즐길겐가 하구 곰곰중일세.

 

 깝짝추위에 요새 며칠 감기로 누웠는데 망우리 무덤속에 자네 뼈다귀들도 달달거리지나 않나 애가 달지만 이건 나의 괜스런 걱정이겠지. 어쩧든가 봄이 오면 잔디도 입히고 꽃이라도 가꾸어 줌세.

 

 밖에 나가면 만나는 친구들마다 어두운 얼굴들이고 利錫이만은 당(장)가를 들겠다고 벌쭉이지만 그도 너무나 억차서 그래보는 거겠지. 몸도 몸이려니와 마음이 추워서들 불대신 술로 난로를 삼자니 거진 매일도릴세.

 

 자네는 이제 모든 게 아무치도 않어 참 좋겠네. 어디 현몽이라도하여 저승소식 알려 줄수 없나. 자네랑 나랑 친하지 않었나. 왜.

 

 - <초토(焦土)의 시(詩)>(청구출판사.1956) -

 


 

 

 

 

 

 

 

 

 

 

홀로와 더불어

 

나는 홀로다.

너와는 넘지 못할 담벽이 있고

너와는 건너지 못할 강이 있고

너와는 헤아릴 바 없는 거리가 있다.

 

나는 더불어다.

나의 옷에 너희의 일손이 담겨 있고

나의 먹이에 너희의 땀이 배어 있고

나의 거처에 너희의 정성이 스며 있다.

 

이렇듯 나는 홀로서

또한 더불어서 산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의 삶에

그 평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 시집 <인류의 맹점에서, 1998>

 

 


 

 

 

 

 

 

 

 

 

 

 

구상(具常.1919.9.16∼2004.5.11)

 

 

시인. 함남 문천(文川) 출생. 1941년 일본 니혼대 종교과 졸업. 1946년 원산문학가동맹의 동인시집 [응향(凝香)]에 <길>, <여명도(黎明圖)>, <밤>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 그러나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으로부터 이 시들이 반동적이라 낙인찍혀 1947년 월남, 6ㆍ25때는 종군(從軍) 시인으로 활동, 서울에서 [백민(白民)] 등에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 연합신문 문화부장, 영남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 역임.

 1952년부터 1956년까지 효성여대, 청구대학의 교수를 거쳐 서강대학교, 서울대학교 강사를 역임. 1957년 서울시문화상 수상. 1958년 승리일보 주간, 1962년부터 1965년까지 경향신문 논설위원 겸 일본 동경지국장 등 역임. 이후 문총 중앙위원 등 문단의 중심적 존재로 활약하는 한편, 1970년부터 1973년까지 하와이대학교의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1. 교묘하게 꾸며 대는 말 [본문으로]
  2. 언어의 영혼 [본문으로]
  3.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 문학지로, 발행 형태는 계간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장애인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작품을 발표하고, 정당한 평가를 받기 위한 목적으로 창간하였다. 장애인문인협회가 발행하며, 창간 이후 2003년 봄호까지 결간 없이 통권 제51호를 발간하였다.그 동안 많은 장애인 문인들을 배출하였고, 장애인 문인들의 복지를 위해 원고료도 지급한다. 운문·산문·잡문·소설 등 전반적인 문학 장르를 다루며, 그림이 있는 시, 테마 특집, 명사 대담, 연재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단에서는 아직 제대로 된 대접을 못받고 있는 형편이지만, 한국문학에 장애인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등단은 3회 추천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솟대문학상을 제정해 본상·신인상을 수여한다. 그 밖에 장애인뿐 아니라 일반인의 문단 등단을 도와주고, 장애인과 일반인의 문학 교류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솟대문학 [─文學] (두산백과) [본문으로]
  4. 「1」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땅.「2」불에 탄 것처럼 황폐해지고 못 쓰게 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