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지독한 오해

by 언덕에서 2014. 4. 25.

 

 

 

지독한 오해 

 

 

 

 

 

 

어느 유명 사회학자는 결혼을 대략 다섯 가지 측면을 가진 제도로 간주했다. 흔히 알고 있는 대로 성(性)과 종족보존 외에 경제적 협력과 정서 및 보험의 기능이 그 내용이다. 다섯 가지 내용 중 어느 것이 먼저냐 하는 우선순위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다만 결혼은 정서의 제도라는 표현은 결혼 적령기가 되었을 때 가장 실감이 나게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위로와 격려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이성한테서 오는 위로와 격려이다. 결혼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삶의 비참함과 고독을 이겨내기 위한 상설(常設)의 상담 역, 위로 역, 격려 역을 갖게 만들어주는 제도가 아닐까 한다. 인간인 이상 누구나 외로움과 고통을 달고 살아간다. 예술이나 스포츠, 각종 SNS가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의 역할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서른이 되어가던 즈음 과연 결혼해야 하느냐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던 시절이 있었다. 험난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내 한 몸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주제에 남의 집 귀한 따님을 위하며 아끼고 간수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점점 더해갔다. K 후배에게 '결혼을 하게 되면 너랑 하겠다'는 약속을 한 건 맞지만 3년 이상 사귄 사이니 안 보면 멀어지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지도 몰랐다. 그러는 사이에 내 삶은 황폐해져만 갔다. 혼자서 빨래하고 밥해 먹고 출근하고 퇴근하여 거의 매일 술자리에 어울리는 생활은 삶의 의미조차 찾지 못하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형태였다. 어느 여름날, 출근하다 같은 그룹 계열사에 다니는 큰형을 회사 본관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나게 되었다. 형은 창원에서 보일러와 프레스를 만드는 중공업 계열 회사의 초임 과장이었는데 서울에 갑자기 출장 온 모양이었다. 전날 회식 때문에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터라 나의 얼굴은 푸석푸석했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으며 갈아입지 않은 와이셔츠는 구겨져 있었다. 형은 몹시 심각한 표정으로 아래위로 나를 훑어보더니 언제 부산에 내려와서 이야기를 좀 하자고 청했다.

 어머니와 두 형, 나 그리고 형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큰형은 해가 가기 전에 결혼하는 게 어떠냐고 의견을 개진했다. 하고 다니는 몰골이 한심하니 결혼을 하면 어떻게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지 않겠냐는 나름의 판단을 한 것 같았다. 형수들도 이왕 사람이 있는데 삼촌이 결혼 안 하고 있는 건 이해가 안 된다고 한 술씩 거들었다. 그날 밤 K 후배에게 전화를 했더니 자신도 가족들로부터 비슷한 압박을 당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던 며칠 후 마산에 계신 K 후배 어머니가 부산으로 왕림하여 내 어머니를 만나서 두 분은 한 달 후의 날짜로 결혼 일정을 잡으셨다.

 

 청첩장을 만들고 예식장을 예약하는 등 이리저리 준비하다 보니 금방 시간이 흘러 결혼식을 일주일 남겨둔 어느 날이었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회사 사업부의 옆 사무실에는 B 건설이라는 유명 건설회사가 입주해 있었다. 그 회사의 경리 여사원으로 이 아무개라는 아가씨가 있었다. 같은 층에 근무하다 보니 서로 안면이 있어서 주로 복도에서 만나면 인사하는 사이였는데 어떨 때는 찻잔을 쟁반에 담아가다가 나를 만나면 반갑게 한 잔을 건네주기도 했다. 그리고 퇴근길에 우연히 만나서 술을 한잔 하자는 제의에 함께 포장마차에도 간 적이 있었다. 우리 사무실의 여사원들과도 꽤 친하게 지내는 모양이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어느 날 내 자리에 그녀로부터의 전화가 걸려왔다. 안 바쁘면 퇴근길에 한 번 만날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퇴근이 늦은 관계로 그래도 괜찮겠냐고 물으니 상관없다고 해서 밤 열 시 경 회사 뒤편에서 한참 떨어진 서소문동 중앙일보 근처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만나게 되었다.

 포장마차에 들어가니 그녀는 이미 혼자서 소주 한 병을 거의 다 마시는 중이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약간 망설이더니 말문을 열었다.

“결혼하신다는 소문이 들리던데요. 사실인가요?”

“하하, 혼자 살고 싶은데 가족들 성화가 워낙 심해서리…….”

“결혼하실 분과 사귄 지는 오래되었나요?”

“학교 후배인데 3년 정도 되었지요.”

“아……. 사실이었군요. 모든 것이 헛소문이길 바랐는데…….”

 소주를 한 병 더 시킨 그녀는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붓더니 단숨에 원샷 마셔버리고는 가볍게 눈인사를 하더니 계산을 하고 포장마차를 나가버렸다.

 왜 저럴까?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가 남긴 술과 안주에다 소주를 한 병 추가해서 홀로 마시며 뭐가 문제였는지에 대한 복기(復碁)에 들어가게 되었다. 악의 없이 베푼 친절이 오해를 만들 수 있고, 필요 이상의 예의가 때로는 상대방에게 행여 상처를 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혼인 적령기의 남자는 특히 처신에 신경을 써야겠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 날이기도 했다.

 작년인가 여름휴가 때 아내와 대만의 타이베이에 여행 가서 그곳 야시장의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40대 이후에는 포장마차에 간 기억이 없으니 매우 오랜만에 포장마차에 앉게 된 것이다. 갑자기 결혼 전, 포장마차에서 있었던 그 일이 생각이 나서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아내에게 쭉 이야기했다. 그녀가 나를 짝사랑했는지 아니면 나의 착각인지 알 길이 없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시점에도 마음에 계속 걸렸기 때문이다.

 아내는 내 얼굴을 보면서

 “당신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구나…….”

라며 놀라워했다.

 “어, ‘당신에게도’라니?”

 아내의 이야기는 이랬다.

 나와 같은 해 대학을 졸업한 아내는 종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사회조사기관에 취직하여 1년가량을 근무하던 중 더 안정적인 직장을 찾다 주경야독한 끝에 국가 공무원에 합격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내는 매사 입이 무겁고 지나치게 신중한 편이기도 하다.

 아내와 관공서의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던 얌전한 노총각이 한 명 있었는데 유달리 아내에게 친절하고 어려운 일도 제 일처럼 도와주곤 해서 항상 고마운 마음이었다고 했다.

 드디어 결혼 날짜가 잡히자 부서원들에게 청첩장을 돌려야 했고 당연히 그 수줍은 노총각에게도 청첩장을 건넸는데 왠지 표정이 평소와는 달리 느껴졌다고 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부서를 복귀했을 때는 그는 이미 사표를 제출하고 직장을 그만둔 상태였다고 한다.

 “그 이유가 뭔지 어쩐 건지 잘 모르겠어요. 갑자기 직장을 그만둘 이유가 없었고 부서에서 이유를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더라네요. ……. 그런데 묻지도 않는데 내가 결혼할 사람 있다고 먼저 말할 수도 없잖아요. 프러포즈를 받은 것도 아니었고. 청첩장을 건넬 때 표정이 밝았으면 지금까지 이렇게 찝찝한 느낌은 아닐 텐데 말예요…….”

 그런 것 같다. 아내와 나는 비슷한 경험을 한 건데 그게 상대방이 나를 좋아할 거라는 과대망상에 의한 착각인지 실제로 그들에게 본의 아닌 상처를 준 건지 알 길 없다. 인생 별거 아니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는 사람들 참 많지만 항상 신중해야 맞는 것이 세상살이다.

 


- 월간 소식지 『맑고 향기롭게』 2016. 3월호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