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산토리니, 산복도로 정취 살린 ‘초량 이바구길’
<'이바구길'은 바로 부산역 바로 맞은편 '담장갤러리'에서부터 시작된다>
우울하기 짝이 없는 한 주였다. 나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다 그랬으리라. 어떻게 기분전환이라도 좀 해볼까 하여 집밖으로 나섰다. 지난 주말, 부산역 근처의 그 유명한 ‘초량 이바구길(부산역~망양로 : 700m)’을 구경했다. 근처에 있는 친구 사무실을 들렀다가 예상치 못한 제의에 쌍수를 들고 동참한 결과다. 작년에 만들어진 이 길을 진작부터 한번 들러봐야지 마음 먹었음에도 게으름 때문에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체통 전망대에서 바라본 초량동 전경>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임 오지 않고, 빨래소리 물레소리에 눈물 흘렸네∼.’
국민 애창곡인 장일남 작곡, 김민부 작사의 ‘기다리는 마음’이란 가곡이다.
<김민부 전망대>
이 노래를 작사한 *김민부(1941∼1972) 시인은 1941년 부산시 동구 수정동에서 태어났다. 그를 기리는 ‘김민부 전망대’가 부산시 동구 초량동에 세워졌다. 부산 앞바다를 보며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몰래 눈물을 훔칠 수 있는 곳이다.
<김민부 전망대>
부산시 동구는 김민부 시인 같은 사연이 널려 있는 ‘초량 이바구길’을 작년에 개통했다. ‘이바구’는 이야기의 경상도 사투리다. ‘이바구길’에 조성된 골목 갤러리의 사진과 그림을 적지 않은 사진 동호인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카메라를 들고 이 길 저 길을 살펴보고 있었다. 부산 관광을 위해 오시는 분들 대부분이 해운대나 자갈치, 을숙도, 태종대 등 정해진 몇 곳만 주마간산 식으로 구경하는 듯하다. 토박이로서 권유하건데 ‘이바구길’을 보지 않은 부산 관광은 무의미하다고 단언하고 싶다. 그리고 이 ‘이바구길’을 구경하신 분은 부산 속살의 반 이상을 제대로 접하신 것이라고 말씀드린다.
<동행한 내 친구도 이 동네 출신이다. 세월이 흘러 머리가 왕창 빠져 초로의 신사가 되어버렸다>
부산시 동구는 한국전쟁 때 산비탈에 형성된 판자촌을 바탕으로 형성된 부산에서 가장 낙후된 곳이다. 판자촌 사이 산길에 난 산복도로가 원형대로 보존돼 있고, 부산의 뿌리인 부산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우체통' 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항. 좌측의 못보던 큰 건물이 뭔가 궁금했는데 동문들의 기금으로 신축한 부산고등학교 건물이라고 했다. 평균화 이전에는 경남고와 더불어 한강 이남의 최고 명문학교였다. 지금은 1년에 한 명을 서울대에 진학시키는 일이 힘들다고 한다. 정치인 최병렬, 정의화, 안철수, 이해성, 기업인 황창규, 언론인 조갑제, 정규제, 과학자 오길남, 소설가 박영한, 야구 선수 마해영, 추신수, 손아섭 등이 생각난다>
초량 ‘이바구길’은 부산역∼망양로까지 700m 골목길이다. <아래 위치도 참조>
부산항이 한눈에 보이는 길을 걸으며 다양한 지역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건물을 만날 수 있다.
<김민부 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항>
‘이바구길’은 부산역 앞에서 시작된다. 조금 걸으면 국내 최초의 물류창고인 남선창고가 나온다. 부산항으로 들어온 물건들이 경부선을 타고 전국으로 흩어진 거점이었다. 함경도에서 온 명태를 보관했다고 ‘명태고방’이라고도 불렸다. 근처에는 옛 백제병원 건물이 있다. 부산 최초의 근대식 종합병원이 있던 곳으로 치안대 사무소와 중국 영사관이 한때 사용했던 시대의 흐름이 배어 있는 곳이다. 남선창고 터에서 백제병원 건물로 되돌아와 산쪽으로 큰길 따라 50~60m 올라가 오거리에서 11시 방향으로 20~30m 걸으면 '광복사'란 간판집이 나온다. 그 옆으로 폭 2m쯤 되는 골목이 나오며 꼬불꼬불한 '이바구길'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이곳부터 경사 급한 좁은 골목길을 지나며 '산복도로'로 올라간다. '산복도로'란 산허리쯤에 난 도로라는 의미다. 6·25 전쟁통에 피란민들이 산비탈에 모여 살자 자연스레 길이 생겼다.
<남선창고와 이어진 백제병원>
담장갤러리, 동구 인물사 담장, 168계단, 김민부 전망대, 당산, 이바구공작소…. 이바구공작소까진 대개 가파른 경사의 골목, 계단길이다. 길들이 꼬부라지고 꺾어지고 휘어진다. 편한 길로만 갈 수 없고, 같은 속도로도 걸을 수 없는 길들이다.
정치인 장건상·허정·박순천, 경제인 강석진·신덕균, 문화인 유치환·이윤택·박칼린, 가수 나훈아·코미디언 이경규 등이 이 지역에서 태어났거나 공부했다. 인물사 담장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김민부는 "일출봉에 달~뜨거든…"으로 시작하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의 가사를 지은 시인이다. 이곳에서 살았다.
<남선창고 터>
조금 오르면 만나는 초량초등학교는 나훈아·이윤택·이경규·박칼린을 배출한 학교다. 길 맞은편 초량교회는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로 부산 임시수도 시절 이승만 대통령이 예배를 봤던 곳이다. 바로 앞 골목길은 옛 풍경 사진과 그림을 전시해 놓은 골목길 갤러리가 있다. 여기서는 한국전쟁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린 168계단을 올라야 한다, 동구 주민들은 건강하다. 168계단 같은 가파른 길을 매일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168계단>
<동구 인물사 담장>
조금 더 오르면 ‘이바구길’을 안내하고 자료를 관리하는 ‘이바구 공작소’가 나온다. 이곳은 낙후된 산복도로 주변을 되살리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의 하나로 지어졌다.
<초량교회>
망양로 꼭대기에는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린 장기려(1911∼1995) 박사를 기리는 ‘더 나눔’기념관이 나온다. 의료보험의 시초인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동구에 세우고 가난한 환자를 진료한 그의 정신을 새겨볼 수 있는 곳이다. 청년 시절, 나는 장기려 박사를 직접 뵌 적이 있다. 친근한 표정이셨지만 매우 단아한 인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장기려 기념관 더나눔>
<장기려 박사님께서 친히 사용하시던 청진기와 가운을 보니 감회가 깊었다>
조금 더 가면 시인 유치환(1908∼1967)의 우체통이라는 기념관이 나온다. 그는 동구 관내 경남여고 교장을 두 번 지내면서 동구에서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나의 중학교, 고교 시절 은사님 중에는 청마의 제자였던 분이 몇 계셨다. 우체통 기념관은 그가 즐겨 보낸 편지의 추억을 되새겨볼 수 있다.
'우체통' 기념관은 부산에서 숨을 거둔 청마(靑馬)를 기리기 위한 공간으로 작년 5월 완공됐다. 3층 '하늘 전망대'에 청마의 시 ‘행복’에서 영감을 얻은 느린 우체통이 설치돼 있다. 유치환의 우체통은 사진 애호가들이 특히 좋아한다고 한다. 우체통 앞으로 부산항 앞바다와 북항대교가 보이고 뒤로는 산복도로의 비탈진 달동네가 보인다. 엽서는 발송비를 포함해 270원에 판다. 느린 우체통이 있는 2층 전시실, 3층 전망대와 1층 야외공연장은 항상 개방돼 있다. 해가 지고 '유치환의 우체통' 전망대에서 한 눈에 보는 부산 야경은 일품이다.
우체통에 편지를 넣은 뒤 까꼬막 게스트 하우스나 마을 카페에서 부산항 야경을 감상하면 이바구길은 끝난다. 이곳에서 ‘교통부’라고 불리는 곳으로 내려올 수 있다. 부산도시철도 좌천역 근처로 대한민국 임시수도 정부 교통부가 있던 곳이다.
<우체통 전망대에서 찍은 부산항 전경이다. 요즘 Dslr 카메라 작동법을 공부 중인데 다음 포스팅 때는 좋은 사진을 선보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청마 유치환 기념관 내부>
<청마 기념관 '우체통' 창을 통해 내려다 본 초량 산동네 풍경이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이바구길’이 위치한 이 지역은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근대사의 축소판인 곳이다. 어떻게 알겠는가? 혹시 내가 유명인사가 되면(그럴리야 전혀 없지만) 아무개가 태어난 곳이라는 안내표지가 ‘이바구길’ 근처에 한 장 더 붙을 지도 모르겠다.
<사진출처 : 부산일보>
바로 위의 사진 석 장은 '이바구길' 끝자락에 위치한 내가 태어난 자리에 세워진 수정 아파트이다. 1970년대 초, 부산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아파트로 알려져 있다. 세대 당 9평의 아파트이다. 어찌 알겠는가? 내가 죽은 후에 ○○○씨가 태어난 '생가터'로도 기억될지도?
아마 해당 지자체는 고유한 것들, 그러나 잊혀져 가고 사라져 가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살려 관광객을 모으고 지역을 되살리기 위한 시도로써 이런 아이디어를 냈을 것인데 신선하고 참신하게 느껴진다. 부산에서 ‘출사’를 계획하고 계신 분은 꼭 이곳을 방문하시라. 볼거리, 찍을 거리 많아서 후회 없는 기쁨을 한 가득 ~~ 감히 장담하는 바이다.
☞ 김민부(金敏夫.1941∼1972) : 시인. 부산시 수정동 출생. 1958년 부산고등학교 졸업, 1960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1962년 동국대학교 국문과 졸업. 1956년 고등학교 1학년 재학시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석류(石榴)>로 입선, 1957년 제1시집 <항아리> 발간. 195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균열>이 당선되었다. 서울 갈현동 자택의 화재로 3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62년 부산문화방송에 입사한 후 1972년 사망 직전까지 서울문화방송ㆍ동양방송ㆍ동아방송 등에서 방송작가로 활약하면서 제2시집 <나부(裸婦)와 새>를 발간하였고, 오페라 대본 <원효대사>를 썼다. 【시집】<항아리>(1957) <나부(裸婦)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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