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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고골(리) 단편소설 『외투(Николай Васильевич)』

by 언덕에서 2014. 4. 3.

 

 

 

고골(리) 단편소설 『외투(Николай Васильевич)』

  

우크라이나 출신 러시아 소설가 고골리(Gogoli, Nikolai Vasil'evich.1809∼1852)의 단편소설로 1842년 발표되었다. 단편소설 『외투』는 그의 다른 작품 <검찰관>과 더불어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틀을 확립하는데 본보기가 됐던 작품이다.도스토예프스키가 “우리는 모두 고골리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했을 정도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민과 배고프고 힘없는 자들만의 가슴 찡한 휴머니즘, 권력자들의 위선과 인정 없음에 대한 풍자가 알알이 밴 작품이다.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리는 러시아 문학사에서 중˙단편소설의 시대를 연 작가로 평가받는다. 이전까지의 러시아 문학이 주콥스키, 푸시킨 등이 주도하는 ‘시의 시대’였다면 고골리는 ‘산문의 시대’라는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고골리의 작품 중에서도 1842년 발표한 『외투』는 이후 대부분의 러시아 단편소설의 모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러시아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러시아의 문학 비평가 벨린스키는 이전까지 러시아 작가들에게 주목받지 못한 현실의 어두운 측면, 사회 최하층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고골리을 높이 평가했다.

 건강한 사회, 체제란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이 인정받고 보호받는 곳일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그런 사람이 멸시와 조롱을 당하고 짓밟힌다. 작가는 주인공을 조롱하고 괴롭히는 수위, 말단 관리들의 모습을 통하여 그러한 비인간적이고 야비한 관료 체제의 속성이 고위층 인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고, 나아가 그것이 관료 체제를 넘어 인간의 근본적인 속성에 근거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출신 러시아 소설가 고골리(Gogoli, Nikolai Vasil'evich.1809-1852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페테르부르크의 한 관청에서 말단 서기로 일하고 있는 아카키예비치는 서류 정서하는 일을 맡았다. 그는 적은 봉급에도 불평할 줄 모르고 자신의 업무에 만족하며 늘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인물이었다. 초라하고 볼품없는 외모와 유순한 성격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무시를 당했지만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일에 충실할 뿐이었다.

 그렇게 그날그날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에게 심각한 고민거리가 생긴다. 그것은 혹한이 닥쳐오는데 외투가 수선이 불가능할 정도로 낡아서 새 외투를 장만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새 외투를 마련하는 데에는 그의 봉급을 넉 달 동안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하는 거금이 필요했다.

 아카키예비치는 이삼 개월 동안 밤에 촛불도 켜지 않고, 저녁까지 굶는 내핍 생활을 한 끝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새 외투를 장만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새 외투 산 것을 축하한다면서 관청 부과장이 초대한 저녁 식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강도들에게 외투를 강탈당한다. 그는 절망하여 외투를 찾아 달라고 경찰서장이나 유력한 인사를 찾아가지만 오히려 호통만 당한다. 결국 그는 그 일로 충격을 받아 병이 나서 죽고 만다.

 그가 죽은 후 페테르부르크에는 밤마다 그가 유령이 되어 나타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외투를 빼앗는다는 소문이 떠돈다. 그러한 소문은 아카키예비치가 외투를 찾아달라고 청원하러 갔을 때 호통을 쳐서 돌려보냈던 고관이 밤길에 외투를 빼앗기는 사고를 당한 뒤 잠잠해진다.  

 

 소설의 내용이 다소 현실적이진 않지만 교훈적 결말을 유도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우직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잘 보여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기에 처세술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하지만 주인공처럼 선량하고 내성적인 사람들도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정말로 성숙한 사회가 아닌가 한다. 다양성이 있고 사람을 신분으로써가 아닌 인격이나 인간 그 자체로 존중하는 사회가 진정으로 존경받는 선진국이다. 그렇다면 우리사회는 이 작가의 풍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외투』의 주인공 아카키예비치는 그야말로 ‘작은 인간’의 전형이다. 딱히 내세울 만한 능력도 없고, 여가를 함께 보낼 가족이나 친구도 없다. 그의 인생에 유일한 낙은 서류를 베껴 적는 것이며, 그외의 일은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거창한 인생의 목표나 희망도 없이 고작 외투에서 즐거움을 찾는 쓸쓸한 인간이 바로 아카키예비치다. 그는 동료들에게 일상적으로 멸시를 받는 것은 물론, 도움을 청하러 간 고관에게도 매서운 질책만을 당하며 관료 제도, 더 나아가 러시아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무시되고 소외당한다. 

 

 

 고골리는 이러한 아카키예비치의 모습을 이중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한편으로는 억압받는 아카키예비치의 모습을 동정과 연민으로 그려내며 부조리하고 비인간적인 관료 제도를 비판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삶의 목표가 외투에 지나지 않는 보잘것없는 인간을 멸시하고 비웃으며 희극적으로 풍자하기도 한다. 『외투』를 읽는 독자는 아카키예비치의 비극을 보며 울 수도, 웃을 수도 없게 된다. 이처럼 고골리는 ‘눈물 속의 웃음’이라는 특유의 시선으로 당시 러시아 사회와 그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을 놀라우리만치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고골리의 생각이나 삶은 기이했지만 그가 러시아 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하다. 무엇보다 벨린스키가 '수사학파' 또는 '낭만주의 학파'와는 대조적으로 앞으로 러시아 소설의 방향에 큰 영향을 줄 '자연주의 학파'의 강령을 이끌어 낸 것은 바로 고골리의 <검찰관><죽은 혼><외투> 같은 작품에서이다.

 고골리는 처음으로 러시아의 참모습을 그려낸 작가였으며 보잘것없는 '작은 사람'을 문학의 주인공으로 형상화시킨 작가였다. 레프 톨스토이와 이반 곤차로프, 이반 투르게네프로 이어진 푸슈킨의 고전적·사실주의적 산문과는 대조적으로, 고골리의 화려하고 격앙된 문체는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를 거쳐 상징주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안드레이 벨리에게 이어졌으며 공산 혁명 이후의 몇몇 소비에트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중략) 그리하여 주인공이 우리 의식에서 한 번 실재성을 획득하자 고골리가 사용한 과장과 변형의 수법은 오히려 작품 속의 모든 인물과 사건에 생생함을 더한다. 그의 외양이 그토록 비틀어지고 그의 무능과 소심과 불운이 그토록 심하게 부풀려져 있지 않았더라면 아까끼 아까끼예비치 같은 인물이 지금처럼 강렬한 인상으로 우리에게 다가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따지고 들면 사실주의와 유령의 활용은 얼핏 걸맞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그 실재가 증명되지 않은 유령이라 할지라도 과장과 변용의 기법으로는 얼마든지 사실주의와 양립될 수 있다. 그토록 소중한 외투를 잃어버리고 끝내 충격으로 죽어버린 영혼이라면 설령 그가 죽음에서 빠져 나와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비정했던 산 사람들의 세상에 약간의 간섭을 했다 한들 안될 게 무어겠는가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6권 234쪽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