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부코스키 장편소설 『우체국(Post Office)』
미국 소설가 찰스 부코스키(Henry Charles Bukowski, 1920 ~ 1994)의 장편소설로 1971년 발표되었다. 부코스키는 미국 주류 문단으로부터 외면당했던 이단아지만 전 세계 독자들의 열광적인 추종을 받는 작가로 『우체국』은 부코스키가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쓴 첫 장편소설이다. 하급 노동자로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다 우연히 취직한 우체국에서 10년간 근무하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이 소설에 처음 등장하는 헨리 치나스키는 작가의 분신과 같은 존재로 이후 발표된 일련의 소설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 된다.
『우체국』은 여태껏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캐릭터가 끊임없이 독자를 당황시키는 작품이다. 금기시되는 욕망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고백하지만 선의는 물론 악의조차 부재하기에 세상 모든 질서에서 자유로운 인간 헨리 치나스키가 그 주인공이다.
평론가 로버트 호윙턴은 ‘부코스키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경마광이 되거나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섹스광이 될 거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작가가 되었다.’라고 극찬을 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우체국'의 “복무 윤리 강령”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주인공 헨리 치나스키야말로 이 윤리 강령에 가장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헨리 치나스키는 술ㆍ경마ㆍ섹스에 빠져 살고, 직장 상사이든 초면이든 상관없이 거친 욕설 혹은 농담으로 응대하는 마초다. 이야기는 이 불량 인간이 임시직 집배원으로 취직했다가 17년 만에 안정된 우체국 정규직 자리를 내던질 때까지 일으킨 기행과 좌충우돌의 일화들을 짤막짤막하게 이어간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우편물을 배달하러 갔다가 그 집 여자와 질펀한 정사를 벌인다. 상사가 근무 태만을 꾸짖으며 발부한 경고장을 면전에서 휴지통에 던진다. 본능에 몸을 내맡기는 그의 언행은 독자에게 당혹감과 묘한 쾌감을 동시에 선사한다.
그러나 치나스키는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여자아이에게 사탕을 줬다가 성추행범으로 몰린 늙은 집배원을 위로하는 유일한 동료이고, 미친 듯이 헛소리를 지껄이는 젊은 집배원에게 적당히 대꾸해주는 아량을 지닌 선배다. 자기를 버리고 떠난 옛 애인의 장례식을 그녀의 아들과 함께 치르기도 한다. 물론,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경마장으로 달려가 돈을 따고서는 "장례식에는 뭔가 있다. 하루에 한 번씩 장례식이 있다면 부자가 될 텐데"라며 다시금 엇나간 행동을 보이지만 사물을 좀 더 똑똑히 보게 한다.
거칠 것 없다는 듯 살아도 치나스키는 결국 패배자다. 동거 생활은 늘 그가 여자에게 버림 받는 것으로 끝난다. 무수한 실연 끝에 나이 든 동거녀 마리나를 만나 딸을 얻는다. 그러나 어지럼증을 참고 일하며 성심껏 부양했건만 자유분방한 마리나가 젖먹이를 데리고 떠나면서 짧은 행복도 끝난다.
"일주일에 서너 번 마리나를 보러 갔다. 아이를 만날 수 있는 한 괜찮다고 생각했다"며 치나스키는 애써 담담하게 독백한다.
그를 가장 무력하게 하는 건 우체국으로 상징되는 노동 착취와 관료제다. 하루 두 번 허용된 휴식시간 10분을 조금이라도 어기면, 산더미 같은 우편물을 정해진 시간에 분류하지 못하면, 우편 배달구역의 긴 목록을 줄줄 외지 못하면 곧바로 경고장이 날아든다. 우는 소리는 절대 안 하는 치나스키는 한 동료에 대한 묘사로 숨막히는 현실을 고발한다.
"내가 처음 왔을 때 지미는 흰 티셔츠를 입은 건장한 사내였다. 이제 그 사람은 사라졌다. 너무 피곤해 이발도 못 했고 3년 동안 똑같은 바지를 입었다. 우체국이 그를 살해한 것이다. 그는 쉰다섯 살이었다. 퇴직까지는 7년이 남아 있었다."
「우체국」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반복적 노동에 대한 혐오와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작품 속 치나스키는 1952년부터 3년간 집배원으로 일하다가 우체국을 떠난다. 그러나 3년 후 다시 우체국으로 돌아와 그 후 10년간 우편물 분류 직원으로 일하며 우체국에 젊은 시절을 바친다. 이 노동에서는 어떤 의미도 찾아볼 수 없으며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요식과 절차만이 맹목적으로 강요된다. 개인의 개별성은 말살되고 인간적인 대접을 받을 권리는 무시된다. 표준 양식에 따른 반복적인 노동으로 주어진 시간 내에 임무를 완수하도록 강요받는 직원들은 잠깐 급수대에 물을 먹으러 다녀오는 것조차 금지당한다.
헨리 치나스키는 이러한 조직의 위계와 규칙에 저항하는 인물이다. 그는 개인차를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표준화한 작업 양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규칙의 억압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유일한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가 좇는 것은 노동을 대치할 노동이 아닌 노동하지 않는 삶, 산업 사회의 기준에서는 악이지만 개인에게는 축복일 수 있는 반노동이다.
세상에, 집배원들은 편지를 넣고 다니면서
여자들하고 같이 눕기도 하는구나.
이거 나한테 딱 맞는 일인데…… 오, 이거야, 이거. 이거라고.
♣
부코스키는 『우체국』에서 시작해 『여자들』을 거치며 기승전결의 부재, 운문처럼 압축한 문체, 태연하게 드러내는 불건전한 사상이라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한다. 노골적인 묘사로 「점잖은」 이들의 검열 기제를 파괴하고, 독자를 끊임없이 당황하게 하는 작품들은 술과 섹스, 경마나 권투 경기 관람으로 고단한 삶을 견뎌 내는 하층민들, 그리고 작가 자신의 삶을 거침없는 언어로 가감 없이 그려 낸다. 그는 거대 자본주의하에서의 부조리한 계급 구조, 허울뿐인 권위주의를 조롱하며, 주도권을 빼앗긴 부속품으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감정에 충실한 삶을 꿈꾼다.
'예술은 무엇보다 위장의 문제'라는 명제를 내세우며 주류 사회에 저항하는 부코스키의 반골 정신은 전 세계 아웃사이더 예술가들에게도 크나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U2의 보노는 부코스키에게 바치는 곡으로 <Dirty Day>를 발표했으며 본 조비, 너바나 등의 많은 밴드들이 그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작품은 맷 딜런 주연의 <삶의 가장자리Factotum>(2005) 등의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자전적 다큐멘터리 <이렇게 태어나Born Into This>와 미키 루크가 주인공 부코스키 역을 맡은 영화 <바플라이(Barfly)> 등을 포함해 그와 관련한 10여 편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기사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하는 책이라는 그의 작품들은 후배 작가들이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작가 장 주네는 그를 '미국 최고의 시인'으로 칭했으며, 국내에서도 한재호, 배수아, 유용주 등 많은 작가들이 부코스키의 팬임을 공공연하게 밝힌 바 있다.
☞찰스 부코스키 : 미국의 소설가. 1920년 독일 안더나흐에서 태어났고, 어릴 적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엔젤레스에서 평생을 살았다. 대학을 중퇴하고 스물네 살 때 잡지에 첫 단편을 발표하지만 꾸준히 창작을 하지 못하고 오랜 기간 하급 노동자로 창고와 공장을 전전한다. 그러다 우연히 취직한 우체국에서 우편 분류와 배달 직원으로 12년간 일하며 시를 쓴다. 잦은 지각과 결근으로 마침 해고 직전이었던 그가, 전업으로 글을 쓰면 평생 동안 매달 1백 달러를 지급하겠다는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들인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일을 그만둔 그는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장편 데뷔작 『우체국』(1971)을 펴낸다. 이 작품은 작가의 분신인 헨리 치나스키가 처음 등장하는 소설로 부코스키만의 스타일을 선보이며 자전적 소설의 시작점이 된다. 연대순으로 보면 치나스키가 소년이던 『햄 온 라이』(1982), 글쓰기를 포기하고 이 일 저 일을 전전하던 시기의 『팩토텀』(1975), 중년에 접어들어 일정한 직업을 가지게 된 『우체국』을 거쳐 50대가 되어 비로소 전업 작가로 이름을 알리게 된 『여자들』(1978)로 이어진다. 부코스키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 『헐리우드』(1989)를 포함해 평생 60권이 넘는 소설과 시집, 산문집을 펴냈으며, 마지막 장편소설 『펄프』(1994)를 완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94년 3월 백혈병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한다. 그의 묘비에는 <Don't Try>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의 전기 영화로서 부코스키 올드 뱅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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