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국 현대소설

솔로몬 노섭 장편소설 『노예 12년(12 Years A Slave)』

by 언덕에서 2014. 4. 23.

 

 

솔로몬 노섭 장편소설 『노예 12년(12 Years A Slave)』

 

 

미국 시민 솔로몬 노섭(Solomon Northup,1808~ ?)의 자서전으로 미국 뉴욕주에 살던 (흑인) 평범한 시민 솔로몬 노섭이 자유를 뺏기고 노예가 되어서 12년이 지나 다시 자유를 되찾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실화소설이다. 19세기 후반 미국 역사의 어두운 부분을 들추고 인간에게 인권과 자유란 무엇인지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다.

 이 실화소설은 1853년 출간 후 3년간 3만 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후 1968년 루이지애나의 역사학자인 수 아이킨과 조지프 로그즈던이 솔로몬 노섭의 행적을 추적해 거의 모든 장소와 인물들, 기록 등의 실재를 밝혀내는 고증 작업을 거치면서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4년에는 〈솔로몬 노섭의 오디세이〉라는 이름으로 PBS 텔레비전 영화로 만들어졌고, 1999년부터는 솔로몬 노섭이 살던 곳인 새러토가스프링스에서는 7월 셋째 주 토요일을 〈솔로몬 노섭의 날〉로 정해 기념해 오고 있다. 2013년에는 스티븐 매퀸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어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런던 비평가 협회에서 다수의 수상을 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를 넘어 노예 제도가 사라진 21세기까지 『노예 12년』이 주목받는 이유는 작품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시대를 관통해 현재까지 여전히 유효한 〈인간다움〉의 의미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노예 제도는 이미 폐지되었고 미국에서는 오바마라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지만 아직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인권 유린 문제는 잔존하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 시대에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서서 진정한 〈인간다움〉과 〈정의〉가 무엇인지 다시금 되돌아보게끔 한다.

 160여 년 전에 쓰인 작품 솔로몬 노섭의 《노예 12년》은 놀랍게도 현세대 노동자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 자유인인 한 흑인 남자가 노예가 되면서 겪는 처절한 고통과 탈출의 과정은 현실에서 차별받고 살아가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2014년 대한민국의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는 이주 노동자, 청소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 염전 노예 등 노동자의 삶을 들여다보면 차별받고 불합리한 대우를 경우가 다반사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아직 자유로운 삶을 누리지 못하고,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그들은 《노예 12년》의 주인공처럼 피폐하고 외로우며 몸과 마음이 병들어 있을 것이다.

 

 

영화 <노예 12년 > , 2013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솔로몬 노섭은 1808년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세 아이를 둔 가장이자 성실한 남편이었다.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로 일하는 자유인이었다. 솔로몬 부부는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지금은 가난하지만 언젠가는 풍족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1841년, 일거리를 소개해 주겠다는 두 노예 상인의 꾐에 속아 넘어가서 길을 떠났다가 납치를 당해 하루아침에 노예 신세로 전락했다. 제임스 버치라는 악명 높은 노예 상인에게 잡혀 있던 솔로몬은 배에 태워졌고 머나먼 남부의 뉴올리언스 주로 팔려 간다.

  플랫이란 노예 이름을 단 노섭은 처음에는 다행히도 루이지애나 주에 사는 사람 좋은 목사 윌리엄 포드에게 팔렸다. 그러나 주인의 재정 상태가 악화되자 존 티비츠라는 악인에게 넘겨지면서 끔찍한 고난이 시작된다. 이유 없이 채찍질을 당하고, 목에 올가미를 매게 되기도 하며 주인이 광분하여 휘두르는 도끼질을 피해서 달아나다가 살모사가 도사리는 죽음의 습지를 헤매기도 한다. 간신히 살아나지만 또다시 잔인한 술주정뱅이 에드윈 엡스에게 팔려 간다. 주인은 가축이나 먹을 법한 음식을 노섭에게 준다. 노섭은 거친 담요 한 장을 두른 채 자야 했고 동틀 무렵부터 자기 전까지 혹독한 노동을 했다. 그런 생활이 12년간이나 이어진다. 그러다가 1853년, 양심적인 한 백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그 끔찍한 생활에서 벗어난다.

영화 <노예 12년 > , 2013 제작

 

 이 작품은 일대기에 갇히지 않고 시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기술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노예 서사와 다르다. 태어날 때부터 자유를 갖고 있었으며 다양한 교육을 받고 자유인으로서 사고하던 흑인이 자유를 빼앗긴 뒤 노예의 삶을 경험했다는 측면에서 그가 옮겨간 미국 남부의 자연과 특성, 농법, 노예 제도에 관해 더욱 세밀히 관찰하고 객관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 책에는 단순히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노예의 수난만 다룬 게 아니다. 당시 미국 사회의 단면들을 보여 주는 풍부한 소재와 묘사들이 넘친다. 솔로몬 노섭 스스로 백인의 정신을 가지고 살았다고 인정할 정도로, 그는 항상 자신이 자유인임을 의식하고 늘 깨어 있었고, 자신의 과거를 숨겨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21세기인 지금 노예 제도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예 12년》은 우리가 꼭 되짚고 넘어가야 할 ‘자유’와 ‘정의’,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묻고 있다. 여전히 전 세계에 부당한 대우를 받는 노동자들이 존재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수많은 이들이 존재하는 현시점에도 여전히 유효한 ‘노동자 소설’ ‘자유를 말한 소설’일 것이다.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이 아름다운 나라에 사람에 의해 사람이 억압받는 일이 결코, 결코, 결코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자유가 흘러넘치도록 하자.”라고 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자유 선구자 넬슨 만델라의 말이 떠오른다. 마치 넬슨 만델라가 부르짖었던 자유에 대한 염원을 압축하여 담은 듯 주인공 노섭의 거짓말 같은 실화가 생생하게 전개된다.

 이 작품은 노예들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한편, 노예 제도가 백인 주인들의 인간성과 도덕성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주노동자, 청소노동자, 일용노동자를 함부로 대하는 우리들의 인간성과 도덕성은 어떤 상태일까? 노예 제도를 그린 자전적 작품 중에서 노섭 만큼 독특한 시각과 유려한 문장을 보여준 작품은 드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유인의 삶과 노예의 삶, 모두를 겪었던 그는, 흑인 노예들의 삶을 여실하게 그려냄으로써 흑인들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재현했을 뿐 아니라, 노예 제도가 지닌 야만성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 솔로몬 노섭 (Solomon Northup : 1808 ~ ?) 1808년 노예 제도가 폐지된 뉴욕 주 미네르바에서 태어났다. 세 아이의 아버지이며, 바이올린 연주자로 살아가던 노섭은 1841년 일자리를 찾으러 워싱턴에 갔다가 노예 상인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팔린다. 당시 노예를 학대하기로 악명 높았던 루이지애나 주 농장에서 노예 생활을 했다. 끔찍한 노예 생활 12년 동안 자유를 향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탈출을 계획하다 우연한 기회를 맞아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구조된 그해 발표한 「노예 12년」(1853)은 저자가 직접 겪은 노예 생활이야기라는 점에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고 발표와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자유를 되찾은 후 노섭은 자신을 팔아넘긴 노예 상인들을 고소했다. 그러나 당시 워싱턴 D. C.의 법에 따르면 흑인이 백인에게 반하는 증언을 할 수 없었고, 솔로몬의 증언 없이는 민사상 고소가 불가능했다. 나중에 뉴욕 주에서 두 상인은 납치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2년 후 기소가 중지되었다. 노섭은 강연과 연설을 통해 노예 제도의 야만성을 알리는 데 열중했다. 틈틈이 탈주 노예를 캐나다로 도피시키는 비밀 조직 ‘지하철도’에서 활동했다는 증언도 있다.

 1857년 이후 노섭의 행방은 묘연하다. 일설에는 노예 상인들에게 납치되어 살해되었다고 하지만 확실치 않다. 20세기 들어 「노예 12년」은 흑인문학의 선구자적 작품으로 재평가되었으며 1984년에는 <솔로몬 노섭의 오디세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2014년에는 스티브 맥퀸 감독이 「노예 12년」이란 동명의 영화를 만들어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수상했다. 노섭이 자유인의 삶을 누렸던 뉴욕 주 사라토가에서는 매년 7월 셋째 주 토요일을 ‘솔로몬 노섭의 날’로 지정해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