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 장편소설 『방황하는 칼날(さまよう刃)』
일본 미스터리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 1958~ )가 쓴 본격적인 사회문제소설로 2004년 일본의 주간지 [주간 아시히]에서 연재되었고 2004년 12월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현재까지 15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이다. 2009년 마시코 쇼이치 감독, 데라오 아키라 주연으로 영화화되었고, 2014년에는 대한민국에서 이정호 감독, 정재영 주연으로 영화화되었다.
어리다는 이유 하나로 잔혹한 범죄를 저질러도 ‘갱생’이라는 이름 아래 가벼운 처벌을 받고 풀려나는 미성년자들이 있다. 이 소설은 그 상황을 지켜보며 다시 한 번 상처받고 복수를 생각하게 되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장편 소설은 소년범죄에 대한 다양한 다양한 시선을 여러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방황하는 칼날』에서 그가 주목한 것은 소년범죄다. 소년범죄의 심각성은 비단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도 <소년법> 아래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 예로 얼마 전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한 여학생을 집단으로 성폭행한 소년 10여 명이 훈방으로 풀려나 사회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피해자의 아픔이 너무 소홀히 여겨지고 있다 ……. 복수가 좋은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지금의 사회 시스템에는 큰 결함이 있어 그것을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이 책의 집필 이유를 밝혔다.
그는 이 작품『방황하는 칼날』에서 ‘미스터리의 거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좀 더 깊고 날카로운 시선을 가지고 세상으로 파고 들어가 독자에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소년범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는가?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2명의 미성년자가 어린 소녀 에마를 성폭행을 하다 예기치 않게 에마가 죽어버리자 범인들은 시체를 강에 버린다. 나가미네는 경찰이 발견한 시체로 딸의 죽음을 확인한다. 수수께끼의 남자가 그에게 딸을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그가 사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메시지를 남긴다. 범인의 집에 찾아간 그는 그곳에서 딸이 마약에 취한 채 성폭행당하는 장면이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보게 되고, 분노가 절정에 달한 순간 집에 들어온 범인을 순간적으로 처참히 죽여 버린다. 이때부터 나가미네는 피해자 가족이 아닌 용의자가 되고, 경찰은 도망친 또 다른 범인을 쫓고 있는 그를 막기 위해 지명수배령을 내린다.
이때부터 형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갈등한다. 성년이라면 무거운 형벌을 받을 것이 분명한 죄를 저지른 범인, 하지만 미성년자라서 가벼운 형벌을 받게 될 범인을 지키기 위해 정말 나가미네를 추적해야 하는가? 정말 경찰은 미성년의 범인을 지켜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나가미네가 복수하도록 놓아두어야 하는가? 세상 속에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정의’가 방황하게 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의 제목 『방황하는 칼날』의 숨은 의미가 드러난다.
여자를 납치해 강간하고 비디오를 찍는 게 취미인 동네 불량배들이 한 여자아이를 납치한다. 그러나 마약을 잘못 투여해 약물중독으로 그 여자아이는 죽어버리게 되고……. 그 여자아이의 아버지는 범인을 찾아내 복수하려 한다.
이러한 줄거리는 흔한 복수물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작품의 밑바닥에는 "소년법"과 '일본의 청소년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미성년자인 청소년은 어떠한 (살인, 강간, 폭행 등등) 죄를 저지른다고 해도 청소년은 아직 자아가 확립되지 않아 '선도'될 수 있으므로 '죄'에 대해 처벌하기보다 '선도'에 중점을 둔다.’라는 것이 "소년법"이다.
이에 대하여 작가는 관점을 작중 "피해자의 아버지" 시점에서 실감나게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 국가와 마찬가지로 현대 일본법은 '복수'를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법'은 피의자에게 솜방망이 같은 처벌만을 내릴 뿐이다. 작중 주인공은 그렇다면 내 손으로 '처벌'하고 나도 죽겠다." 며 소년법에 대하여 한 번 더 생각해주도록 하고 있다. 1988년에 있었던 실제 사건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에서 많은 영감을 얻은 걸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의 피의자인 소년A도 극형 대신 17년형을 받았으며 현재 출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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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년이라면 무거운 형벌을 받을 것이 분명한 죄를 저지른 범인, 하지만 미성년자라서 가벼운 형벌을 받게 될 범인을 지키기 위해 정말 나가미네를 추적해야 하는가? 과연 법의 집행자인 경찰은 미성년의 범인을 지켜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나가미네가 복수하도록 놓아두어야 하는가? 세상 속에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정의’가 방황하게 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는 우리가 이제껏 아무 의심 없이 정의의 칼날이라 믿어온 ‘법’의 존재와 그 역할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나가미네의 복수에 내심 동조하면서도 ‘심정은 이해하나 경찰에 맡겨야 한다’고 세상은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자기의 생활만 보장되면 다른 사람의 일은 아무래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나가미네는 자신도 딸을 잃기 전까지는 그런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다른 사람의 일에는 무관심한 세상의 일부였음을 고백한다. “왜 그런 녀석들이 태어나고 방치된 것일까? 세상은 왜 그런 녀석들이 일을 벌이도록 놓아둔 것일까? 아니, 놓아둔 것이 아니다. 다만 무관심할 따름이다. …….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자기 역시 세상을 이렇게 만든 공범자라는 사실이다. 공범자에게는 죗값을 치러야 할 책임이 똑같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번에 선택된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러한 세상을 만든 또 하나의 공범자로 ‘법’을 지목한다. 사람들이 정의의 칼날이라고 믿는 법이란 것이 절대적으로 옳을까? 절대적으로 옳다면 왜 끊임없이 개정되고 있을까? 그 완벽하지 않은 법을 지키기 위해 왜 경찰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걸까? 그 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선량한 사람들의 생활을 마구 짓밟아도 되는 걸까? 게다가 범인을 체포하고 격리하는 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죄를 저질러도 보복당하지 않도록 국가가 자신들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을까? 저자는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라는 조직에 몸담고 있는 형사반장 히사쓰카와 오리베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이제껏 아무 의심 없이 정의의 칼날이라 믿어온 ‘법’의 존재와 그 역할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히가시노 게이고 : 1958년 2월 4일 오사카에서 태어나 오사카 부립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곧바로 일본 전자회사인 '덴소사'에 입사해 엔지니어로 활동하며 틈틈이 소설을 쓴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1985년 『방과후』로 제31회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했고 이를 계기로 전업작가가 되었다. 『비밀』로 1999년 제52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06년 초에는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제134회 나오키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제까지 나오키 상에 《비밀》, 《백야행》, 《짝사랑》(片想い), 《편지》(手紙), 《환야》(幻夜)등 다섯 작품이 후보로 추천받은 바 있으나 전부 낙선하여, 나오키 상과는 인연이 없는 남자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여섯 번째 추천작 『용의자 X의 헌신』으로 결국 상을 거머쥐게 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방황하는 칼날』『흑소소설』『독소소설』『괴소소설』『레몬』『환야』『11문자 살인사건』『브루투스의 심장』『한여름의 방정식』 등이 있다. 그의 작품중 『방과 후』, 『쿄코의 꿈』, 『거울의 안』, 『기묘한 이야기』, 『숙명』, 『백야행』, 『갈릴레오』등 지금까지 20편이 넘는 작품들이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며 『비밀』, 『변신』, 『편지』,『용의자 X의 헌신』, 『더 시크릿』등 10여편이 영화로 제작되는 등,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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