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국 현대소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장편소설 『행인(行人)』

by 언덕에서 2016. 5. 26.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장편소설 『행인(行人)』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의 소설로 1912년∼1913년 [아사히신문(朝日新聞)]에 연재되었다. 작자가 위궤양을 앓았으므로 4개월간 휴재(休載)한 적도 있었다. ‘친구’, ‘형(兄)’, ‘돌아와서’, ‘진로(塵勞)’의 4부로 되어 있다. '2014년 서울대 선정도서 100권'에 선정되었다.

 소세키는 일본에서 가장 많이, 가장 널리 읽히는 작가라는 평가가 여전하고, 모리 오가이(森鷗外, 1862~1922)와 더불어 일본 근대문학의 두 거봉이다. 「행인」은 경쾌하고 유머 감각이 돋보이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심연에 자리잡은 어두운 인간 심리를 세밀화로 그려내 그의 후기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설은 형이 자신의 아내와 동생의 관계를 의심하여 아내의 정조를 시험한다는 흔치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소세키의 작품은 후기로 접어들면서 고독, 이기심, 죄의식 등 인간 내면의 심리 묘사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행인』은 그 절정에 이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인간관계의 갈등구조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소세키 소설 특유의 장치, 즉 ‘남-남-여’ 삼각구도가 『행인』 속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음을 눈여겨 볼만하다.

 나가노 지로(長野二郎)와 그의 형인 이치로(一郞), 형수인 오나오(お直) 사이의 미묘한 심리가 작가 특유의 예리하고 심도 있는 묘사로 펼쳐진다. 이 소설은 한 지식인의 삶 속에서 지옥과 같은 고독의 고통과 회의의 두려움 속에 작자는 근대 지식인의 생의 고뇌를 표현하고 있다. ‘행인(行人)’이란 ‘생자(生者)’를 의미하는 말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이치로는 주로 서재에 머무르는 도덕적이고 학구적인 학자이다. 그의 최대 관심사는 자신을 대하는 아내의 진심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아내 오나오는 남편은 물론 남에게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성격이다.

 어쩔 수 없이 형 이치로는 동생 지로를 자신들의 부부 사이에 개입시킨다. 어느 날 이치로는 지로를 불러 앉히고는 형수의 정조를 시험해 달라고 부탁한다. 단둘이 와카야마(和歌山)로 가서 하룻밤만 묵고 오라는 것이다. 지로는 형이 자기와 형수 사이에 육체관계가 있었다고 믿고 이 같은 어려운 숙제를 들고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지로는 윤리상의 큰 문제라며 단호히 거절한다. 어머니도 극구 반대했지만 형의 성화에 못 이겨 지로는 형수와 둘만의 여행을 감행한다. 물론 형수의 동의는 얻은 상태였다. 해 지기 전까지 돌아오기로 하였지만 공교롭게도 폭풍우가 몰아쳐 형의 의도대로 하룻밤을 묵어가게 되었다.

 며칠 후 형은 다시 지로를 별실로 불러들여서는 “넌 나오의 성격을 알겠더냐”며 질문을 던진다. “형수님의 인격에는 의심하실 만한 구석이 전혀 없습니다”라는 지로의 보고에도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그 후로도 지로는 형 부부에게 계속 신경이 쓰인다. 둘의 관계가 악화되는 한 지로의 마음도 편하지 못할 것이다. 지로는 지로대로 형에 대한 형수의 마음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고 싶어 형수를 찾지만 좀처럼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은 모두 그림자처럼 어두웠다. 지로는 그런 형수의 모습에 근래 짜증이 치솟은 형이 혹시라도 난폭한 행동이라도 한 건 아닌가 하고 염려한다.

 한편 형의 속내를 속 시원히 들여다보고 싶었던 지로는 형의 지인 H씨를 찾아 형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다. 그러나 H씨와 형은 주로 학문이라든가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며 집안일에 대해선 서로 알지 못하는 듯했다. H씨는 지로의 고민을 풀어주고자 형과 둘만의 여행을 감행한다. 누마즈에서 슈젠지로 나가 산을 넘어 이토 쪽으로 내려오는 여행 코스를 잡은 뒤 도카이도행 기차에 오르며 둘의 여행이 시작되고, H씨는 여행지에서 일어난 일들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지로에게 보낸다.

 그의 편지에 드러난 형의 심리상태는 지로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형은 책을 읽거나, 사색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산책을 하거나 24시간 무얼 하거나, 그 일에 안주할 수 없으며 늘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듯한 기분이라 고백했다고 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가정사에 대한 아픈 고백도 털어놓았는데, 특히 집안 식구들에 대한 의심이 커 보였다고 전했다. 형은 아내를 비롯한 아버지, 어머니 등 집안 식구들을 의심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특히 아내에 대한 의심은 심각한 상태로 얼마 전엔 폭력도 가했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지로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입에 담지 않았다고 쓰여 있다. 형이 잠든 사이 H씨가 지로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작품은 끝을 맺는다.

 

「행인」의 주인공은 지식인이며 학자인 이치로로서, 이 작품의 비극적 결말은 그의 극단적인 에고이즘에 원인이 있다. 그는 자신의 아내와 남동생과의 관계를 의심한 나머지 아내의 정절(貞節)을 시험해보기도 한다. 결국 아내에 대한 불신이 부모와 형제, 가족 전체에 대한 불신감으로 확대되고 자신을 스스로 고립된 상황으로 몰고 간다. 그의 고독감은 정신적 이상을 초래하게 되는데 이치로의 비극을 통해 작가는 인간 심리의 어두운 심연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이치로는 자기중심적, 자기 긍정적인 반면 타인의 말이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회의하는 내향적인 인물이다. 타인에 대한 의혹은 진정한 인간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당연한 결과로서 그는 철저히 고독 속에 갇히게 된다.

 한편 타자와의 관계의 단절로 자아에 갇힌 고독한 사람―이치로의 입을 빌어 작가는 과학의 발전이 인간을 불안케 하는 요인이라 함으로써 메이지 근대사회의 ‘외발적 개화(外發的 開化)’에 대한 문명 비평을 가하고 있다. 이치로가 직면한 실존적 불안과 고뇌는 그대로 현대인들의 초상에 다름 아니다.  

 

 

 주인공 나가노 지로의 형 이치로가 자신의 아내와 남동생 지로와의 관계를 의심하며, 결국 아내의 정조를 시험하는 일을 동생에게 제안하는 것이 이야기의 축이자, 긴장의 핵이다. "당장 내 눈앞에 있고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 그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지 않고선 도저히 안절부절못할 정도의 필요에 맞닥뜨린 적이 있느냐고 묻는" 이치로는, 자기 자신에 함몰된 고독한 지식인이다. 타인의 몸은 물론 정신까지 소유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가 "내겐 도무지 연애 사건이 생기지 않는다"고 토로할 때는, 고독한 실존의 모습이라기보다 스스로 고립을 자처한 암울한 에고이스트로 보일 따름이다. 아내에 대한 불신은 마침내 가족 전체에게로 옮겨가고, 아내에게 느닷없는 손찌검까지 감행하면서도 끊임없이 아내의 태도에 의혹을 품는 그를 볼 때면 광기에 사로잡힌 미친 왕을 마주대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행인』은 사랑과 배반, 신의와 불신, 애정과 집착이라는 모순들, 그것이 공존하는 인간의 내면을 집요하게 묘파한 작품으로서,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특히 인물들 심리의 양면성, 그 내면의 미묘한 추이를 날카롭게 포착해내는 문체는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다. 『행인』은 그 시종일관 서늘하고도 예리한 언어로, 우리가 타인의 마음을 얼마만큼 공감하고 이해하는가, 관계를 엮어가는 데 필요한 마음가짐이란 어떤 것인가를 묻고 있다. 또한 이미 작가 자신 예언한 바 있듯이 소세키의 문학은 또 하나의 세기말을 겪고 있는 오늘 날, 삶의 의미와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문제를 내포한 채, 전혀 새롭고 절실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