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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나쓰메 소세키 장편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

by 언덕에서 2014. 1. 21.

 

나쓰메 소세키 장편소설『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의 처녀 장편소설로 1905년 1월부터 1906년 8월까지 잡지 [호토토기즈(ホトトギス)]에 연재하였고, 1905년 10월부터 1907년 8월까지 전3권으로 간행하였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吾輩は猫である。名前はまだ無い。どこで生れたかとんと見当がつかぬ。)로 시작하는 이 작품의 첫 문구는 유명하다.

 발표 당시 소세키는 도쿄대학 제1고등학교에서 영문학 강의를 하였으며, 매우 분주한 나날을 보내면서도 문학적으로는 하이쿠(俳句) 잡지 [호토토기스]의 기고가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작품에 의해 크게 문명을 날렸고, 이어서 <나그네>를 발표하여 확고부동한 지위를 차지하였다.

 이 작품은 중학교 교사인 치노 쿠샤미의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그 집의 서재에 모여드는 메이테이, 칸게츠, 도후 등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관찰, 보고하는 글로 인간의 우열, 골계(滑稽), 추악상을 통렬히 비난하고 조소하는 내용의 소설이다. 쿠샤미는 희화화한 나쓰메 소세키 자신이며, 고양이를 탐정과 같은 역할로 설정하여 고양이의 눈을 통해 인간사회와 자기 자신을 마음껏 조롱하는 통로로 사용한다. 금권주의의 실업가에 대한 천벌 등 나쓰메 소세키의 정의감을 유감없이 토로하고 있으며 여성에 대한 혐오감도 담겨 있다. 여권의 개념이 없었던 당시 시대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만담체의 문체, 영국 클럽의 분위기를 전달하면서 일상생활을 도입하여 독특한 골계의 분위기를 내고 있다. 영문학을 배경으로 하면서, 문명 비판도 충분히 도입하였으며, 형식을 파괴하는 소설로서 지식인 계급의 인기를 모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버려진 고양이가 된 나는 간신히 어느 집에 정착하게 된다. 그곳의 주인인 친노 쿠샤미(狆野苦沙弥)는 중학교 영어교사이고 미학자 메에테에(迷亭) 등 친구가 찾아와서는 지적인 수다를 떨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그들을 '태평시대의 일민(太平の逸民)'이라고 단정한다. 한편 근처에는 부자실업가인 카네다와 두 줄 거문고의 스승이 살고 있고 그들과 쿠샤미 등은 대단히 사이가 나쁘다. 〈나〉는 그들의 대립이나, 〈일민〉들의 수다나, 카네다의 딸 토미코(富子)와 쿠샤미의 예전의 제자 캉게츠(寒月)의 연애나, 인간들의 기묘함 등을 남몰래 집중하여 관찰한다. 마지막 장의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말로를 동정한 나는 세상사의 허무함을 통감하고 냉정한 관찰자의 역할을 포기하고 인간들이 남긴 맥주를 마신 후 술 취한 팔자걸음으로 마당에 나간다. 취해서 물독에 빠진 나는 '태평은 죽지 않으면 얻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염불과 함께 죽어간다.

 

 

 

 이 소설은 ‘나’라고 하는 한 마리의 고양이의 제1인칭 서술에 의해 그 집 바깥주인인 쿠사미(苦沙彌) 선생과 그 가정 및 몇 사람의 친구․제자를 중심으로 하여 도처에 고양이의 관찰에 의탁해 작자의 사회관과 문명비평을 가한 작품으로 줄거리다운 줄거리가 없는 이른바 저회취미(低徊趣味)의 소설이다.

 당시 작자는 개인 생활면에 있어서는 후년의 <노방초(道草)>에 있는 것과 같은 몰취미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 자기 자신도 포함한 모든 인간의 허영심․에고이즘을 조소함으로써 현실로부터의 탈주 해방을 시도하고, 잠시 동안의 안식을 얻은 듯하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오만한 제목이 붙은 이 책의 주인공은 무례하기 짝이 없는 고양이다. 이름도 없이 길에 버려졌다가 오로지 살아보겠다고 병약한 선생 집에 얹혀사는 주제에 각종 책의 구절을 인용해가며 인간 세상만사에 대해 끊임없는 불평불만을 쏟아낸다. 아니, 그건 불평불만이라기보다 인간이란 한심한 족속을 향해 내뱉는 고상한 존재의 한숨 섞인 한탄에 가깝다.

 이 고상한 고양이가 쓸 데 없는 사치를 부리는 인간에 대해 쏟아내는 한탄은 다음과 같다. 음식이란 "날로 먹어도 되는 것을 일부러 삶아보기도 하고, 구워보기도 하고, 식초에 담가보기도 하고, 된장을 찍어보기도 하"며 발에 대해서는 "발이 네 개가 있는데도 두 개밖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부터가 사치다. 네 발로 걸으면 그만큼 빨리 갈 수 있을 텐데 언제나 두 발로만 걷고, 나머지 두 발은 선물 받은 말린 대구포처럼 하릴없이 드리우고 있는 건 우습기만 하다."고 말한다. 인간이란 족속에 대해 거침없이 이어가는 고양이의 요설은 500페이지에 달하는 이 두꺼운 책 속에서 종횡무진 내달린다.

 

 

 고양이의 주인과 그를 둘러싼 친구들의 모습 또한 걸작이다. 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그 자신을 모델로 한 것이 분명한 고양이의 주인 '구샤미' 선생과 그 주위의 인간들은 소위 말하는 유약하고 우울하며 위선에 찬 당시 지식인의 모습을 대표한다. 이 먹물들은 모이기만 하면 무식한 속세인을 비웃으며 고대 희랍 철학부터 현대 유럽 철학에 이르는 각종 이론과 라틴어를 들먹거리며 설전을 벌인다. 하지만 조금 들쳐보면 그들은 기껏 '개구리 눈알의 전동 작용에 대한 자외선의 영향'이라는 박사 논문을 준비하면서 개구리 눈알 같은 유리알을 만들어야한다고 하루 종일 실험실에서 유리알이나 가는 족속이다.

 약 100년 전인 1905년에 쓰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머리 꼭대기에 앉은 고양이군의 청산유수 요설과 지식인 사회에 대한 풍자어린 묘사는 새롭고 신선한 에너지가 가득 차 있다. 이런 에너지의 근원은 이 작품이 나쓰메 소세키의 처녀작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