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H.로렌스 장편소설『사랑하는 여인들(Women in Love)』
영국의 소설가 D.H.로렌스의 대표작으로 1917년 집필하여 1920년 출판되었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인 20세기 초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과학의 발달이 인간의 행복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가 완전히 무너졌으며, 과학과 지식의 급격한 발달, 신에 대한 불신 등으로 가치관의 혼란이 가중된 시대였다.
로렌스는 이 작품 속의 두 쌍의 연인들에서 각각 대립적으로 존재했던 당시의 가치관을 대변하면서, 내면묘사와 상징적 수법을 구사하여 이상적인 남녀관계, 현대인의 정신적 황폐성을 파헤친 소설을 만들었다.
로렌스의 글은 언제나 인간의 존재란 무엇이며 근대 세계에서 온전한 존재와 삶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 물음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로렌스가 쓴 숱한 저술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그 형식적 다양성이라면, 이를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 존재에 대한 문제의식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듯하다. 그런데 위기에 처한 전통적 인간관을 극복할 실마리이자 온전한 인간상을 모색하는 로렌스의 사유에서 늘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타자성의 문제이다.
분석적이고 파괴적인 현대문명을 근본적으로 부정하지 않는 제럴드와 구드런은 서로의 자아의 투쟁에서 파국을 맞는다. 한편, 생명의 본원(本源)으로 되돌아가 문명의 재생을 지향하는 버킨과 어슐러는 독립된 자유로운 자아의 균형을 구하여 조화에 이른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사회적 창조를 성취하는가는 분명하지 않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영국 중부의 베르도바에 사는 브랭크벤 가(家의)의 자매 어슐러와 구드런은 결혼 적령기에 달한 현대적 아가씨들이다. 서로 대조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두 자매는 크라이치 가의 결혼식에 갔다가 각각 마음에 드는 청년을 만나게 된다. 공립 중학교 교사인 언니는 런던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는 화가 버킨에게, 동생은 탄광주 제럴드 크라이치에게 이끌린 것이다.
버킨은 옛 애인 로레스와의 과거를 청산하고 어슐러와 ‘동등한 위치에서 각자 자신을 잃지 않는 균형 관계에 의한, 사랑을 넘어선 결합’을 실현하려고 한다. 어슐러는 처음에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갈등하다가, 어느 순간 그의 이상과 그녀의 꿈이 현실화되는 것을 경험하고 곧 그와 결혼하여 이상향을 향해 떠난다.
한편, 제럴드는 ‘순수한 기계와 문명의 원리’를 신봉하는 사람으로, 사랑이나 결혼을 단순한 관능의 차원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히 둘의 관계에는 지배ㆍ정복하려는 서로의 처절한 투쟁만 있을 뿐 발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둘 사이의 투쟁은 레루케라는 조각가의 출현으로 절정에 달하고, 자신이 구드런을 목 졸라 죽였다고 생각한 제럴드는 자살하고 만다.
무엇보다도 로렌스는 상상의 문구들로 자신의 능력을 상당부분 실현시킨 독창적인 천재였다. 로렌스의 모든 소설이 그의 천재성을 충분히 발휘한 것은 아니다. 가장 뛰어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무지개>와 <사랑하는 여인들>이 꼽힌다. 이 작품을 보면 마치 커다란 도화지 위에 세부묘사의 상당한 부분이 얼룩졌거나 급히 그려진 듯하지만 전체로서는 대담한 상상력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그림을 연상하게 된다. 여기에서의 주제는 결혼한 남녀 관계이다. 그의 뛰어난 작품들은 성관계를 깊이 있게 보여주며 그것의 실재를 조명하고 그 의미를 대담하게 해석했다.
이 작품 『사랑하는 여인들(Women in Love)』은 두 쌍의 연인들의 사랑의 방식을 통해 투쟁적인 것과 평화적인 것, 야성과 지성,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등이 서로 적당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행복이 깃든다는 작가의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언니 어슐러는 정적인 면과 동적인 면을 겸비한 여성으로, 강한 여자의 본성을 지니고 있다. 일과 과거를 버리고, 연인을 따라 신세계로 떠나는 용기와 정열도 가지고 있다.
♣
반면, 여동생 구드런은 부드러움과 섬세함, 아름다운 몸의 선이 남자의 눈을 끄는 ‘창부형’ 여성이다. 사람에 대해 배타적인 면과 타인을 향한 신랄함도 갖고 있으며, 강한 자의식으로 인해 쉽게 타인을 사랑하지 못한다.
버킨은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인물로, 내부에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 강직하고 익살스럽기도 하며, 예언적인 말도 잘한다. 버킨과 대조적인 성격의 제럴드는 탄광주로서, 기계의 위력을 신봉하고 ‘숙명을 등에 짊어진 듯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는’ 남자이다. 남성적인 체력과 매력적인 용모, 활발한 사교성 뒤에 항상 타인의 눈빛을 두려워하는 약함도 지니고 있다. 분석적이고 파괴적인 현대문명을 근본적으로 부정하지 않는 제럴드와 구드런은 서로의 자아의 투쟁에서 파국을 맞는다.
한편, 생명의 본원으로 되돌아가 문명의 재생을 지향하는 버킨과 어슐러는 독립된 자아의 균형을 통해 조화로운 관계로 발전한다. 결국, 이 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연인들의 관계를 통해 그 해결책을 진단한 작품이다.
'외국 현대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쓰메 소세키 장편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 (0) | 2014.01.21 |
---|---|
플로베르 장편소설 『감정 교육( L'Éducation sentimentale)』 (0) | 2014.01.14 |
생텍쥐페리 장편소설 『야간비행(Vol de Nuit)』 (0) | 2013.12.10 |
토마스 만 중편소설 『토니오 크뢰거(Tonio Kröger)』 (0) | 2013.11.26 |
루이스 캐럴 동화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 (0) | 2013.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