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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한 발 떨어져 나 자신을 보자

by 언덕에서 2013. 12. 18.

 

 

 

 

한 발 떨어져 나 자신을 보자

 

 

 

<제주생활의 중도>, 2011, 207X297cm, 장지 위에 혼합

  



제주도에 사는 동양화가 이왈종 화백의 그림을 보면 어느 서양화가 못지않게 화려합니다. 동양화가가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풍경이나 이상향을 그의 그림 속에서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다만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일상의 삶을 화폭에 담아 낼 뿐입니다. 그의 대표작은 <제주 생활의 중도(中道)>시리즈입니다. 그가 표현하고 있는 중도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평등의 세계이며 쾌락과 고통, 사랑과 증오, 탐욕과 이기심, 선과 악에 대한 구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나누는 분별 등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갈등을 치유하여 화합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주체와 객체가 따로 없고, 호불호에 대한 일체의 편견이 없는 절대 자유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는 결국 평상심이라는 말과도 통합니다. 따라서 그의 그림을 감상하는 모든 사람들은 선입감 없이 누구나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중’이란 바로 이런 겁니다.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 전체를 취하고 아우르는 것이 바로 ‘중’입니다. 기쁠 때는 슬픔을, 건강할 때는 질병을, 명예를 누릴 때는 모욕을, 부귀를 누릴 때는 가난을 바라보며 그 전체를 취한다는 말입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똑 같습니다. 어느 한 쪽만 취하고 다른 한 쪽은 버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한 쪽에만 집착하면 온전한 ‘중’을 잡을 수 없고 결국 참된 힘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고요를 유지하려면 반드시 ‘중’을 붙들어야 합니다. ‘중’을 붙들고 있으면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명예를 누리면 그런대로, 모욕을 받으면 또 그런 대로 모든 상황과 감정에 충실하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 처하더라도 치우침 없이 마음껏 기뻐하고 마음껏 슬퍼하며 마음껏 의기양양하고 마음껏 우울함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감정이 전부인 양 빠져들거나 휘둘리지 않고 균형과 중심을 잡게 됩니다. 감정의 격렬한 기운과 움직임에 충실하면서도 그 감정으로부터 초연히 떠나 있는, 바로 거기에 진정한 의미의 ‘중’이 있고, 마음의 고요가 있으며, 그곳으로부터 참된 에너지가 솟아나옵니다.‘내’ 마음 전체가, 존재 전체가 ‘중’을 잡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중’을 붙들고 마음의 고요를 유지하며 힘을 길어 올린다는 것이 얼마나 만만찮은 일인가요? 한두 번 생각에 집중한다고, 한두 차례로 움직여본다고 간단히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오랜 수련이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겁먹지는 마세요. 무슨 일이든 오랜 연습과 수련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내’ 존재를 휘감는 기운을 제대로 끌어올리고 삶을 온전한 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마음수련이 어떻게 간단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모두 용기를 내어 이 길을 한번 걸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유시찬 신부의 인생공감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p71 ~74